[탐방] 네브래스카 헤이스팅스의 소년병학교, “한인차세대 포럼 개최지로 적합”
[탐방] 네브래스카 헤이스팅스의 소년병학교, “한인차세대 포럼 개최지로 적합”
  • 오마하=이종환 기자
  • 승인 2022.04.11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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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최용구 회장이 동행… 오마하에서 왕복 5시간 거리
헤이스팅스대학 교정, 한인소년병학교가 제식훈련을 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헤이스팅스대학 교정, 한인소년병학교가 제식훈련을 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오마하=월드코리안신문) 이종환 기자= 오마하는 네브래스카주 최대의 도시다. 미시시피강과 합쳐지는 미주리강에 연해 있다. 한인수도 3천명에 이르며, 1967년에 창립된 유서깊은 한인회는 지금 47대 회장(회장 송남미)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마하에서 서쪽으로 뻗은 80번 고속도로를 타고 네브래스카 주도인 링컨을 지나 자동차로 2시간 반을 달리면 헤이스팅스가 나온다.

미국에서는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은 작은 도시지만. 한국사람들에게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일제치하에서 조국 독립을 꿈꾸며, 한인 소년들이 군사훈련을 한 한인소년병학교가 있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을 찾은 것은 3월 초였다. 시카고에서 출발해 오마하로 와서 하룻밤을 머물고, 헤이스팅스의 한인소년병학교 유적을 찾아 나섰다.

이 방문에는 40년 전 네브래스카한인회장을 지낸 최부제(최용구) 회장과 2014-2015년 한인회장을 지내고 지금은 한인회 부설 박용만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경수 회장이 동행했다.

한인소년병들이 점호를 했던 곳이다.
한인소년병들이 점호를 했던 곳이다.

헤이스팅스로 가는 80번 도로 위에서 김경수 회장이 두툼한 바인더북 한권을 건네줬다. 한인소년병학교 관련 자료였다. 그 속에는 다음과 같은 당시의 기사도 실려있었다.
   
“헤이스팅스 대학의 한인 여름학교가 오늘 끝났다. 42명의 어린 한인 학생들이 참석했다. 수업과정은 책공부나 군사훈련 모두 철저했다. 교수들은 한인학생들이 똑똑하고 기민한 학생임을 증명했다면서 큰 진전을 보였다고 말했다. 오늘은 마지막 시험날이었다. 저녁에는 대중들을 초대한 프로그램도 준비됐다. 국기하강식은 군대식으로 명예롭게 진행된다. 7시30분 마지막 활동이 학교 채플에서 진행되고, 책임자인 어린 한인 박용만이 수료증을 준다. 특별 음악프로그램도 있다. 두 사람은 한국말로, 두 사람은 영어로 발표한다.”

1911년 8월19일 ‘헤이스팅스 데일리’에 실린 기사였다. 오전의 행사 소개 이어 저녁 음악행사 예고까지 담은 것으로 미루어 석간신문인 듯했다.

“군사훈련은 여기서 했어요. 저 앞 건물이 기숙사입니다. 아침에 기상해서 숙소 앞에서 점호를 하고, 이곳으로 행진해 와서 군사훈련을 했어요. 당시 찍었던 사진을 보면, 훈련 장소를 짐작할 수 있어요.”

헤이스팅스대학 교정에서 차를 세운 뒤 김경수 회장이 숲 한켠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캠퍼스 안의 작은 공원이었다. 

한인소년병 자료 전시관. 교실을 사용하면서 벽면을 전시관으로 쓰고 있다. 왼쪽이 김경수 박사, 오른쪽이 최부제 회장이다.
한인소년병 자료 전시관. 교실을 사용하면서 벽면을 전시관으로 쓰고 있다. 왼쪽이 김경수 박사, 오른쪽이 최부제 회장이다.

한인소년병학교가 만들어진 것은 1909년이다. 네브래스카 헤이스팅스(Hasting)대학에 유학 중이던 박용만(朴容萬)이 정한경(鄭翰景) 등과 독립군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했다. 처음에는 네브래스카의 커니농장에 학교를 설립해 군사교육을 실시하다가, 1910년 6월 헤이스팅스대학 학장의 후원을 얻어 이 대학의 교실과 운동장을 사용했다. 학생들은 여름방학 때 와서, 농장에서 일도 하면서 군사훈련도 받았다. 수업은 군사교련 이외에 국어 영어 수학 역사 지리 군사학 등 다양했다.

김경수 박사가 한인소년병학교에 깊이 빠져든 것은 2014년과 2015년 한인회장을 맡고 나서였다. 호주 멜번 메디컬 스쿨에서 호흡기 질환을 전공하면서 분자바이러스학으로 박사를 받은 김 박사는 1999년 안식년을 받아 오마하로 왔다가 네브래스카 보훈병원에서 병원 근무를 제안받고 눌러앉은 게 지금까지 머물게 됐다고 한다.

“보훈병원에 근무하다 보니,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연로해서 병원을 찾아오는데, 개중에는 장진호 전투에 참전한 분도 있었습니다.”

그는 “2014년 미주리 스프링필드에서 열린 장진호전투 참전용사 모임에도 갔다”면서 “이같은 인연으로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가지면서 박용만 기념사업회 일을 맡아 자료를 찾는 일에 빠져들었다”고 설명했다.

헤이스팅스대학
헤이스팅스대학

“한번은 무작정 헤이스팅스 대학으로 가서 도서관을 뒤졌어요. 뭔가 있을까 해서 뒤적이고 있는데 누가 말을 걸어왔어요. 무엇을 찾느냐고 물어온 겁니다. 박용만과 한인소년병학교 자료를 찾는다니까 그 사람이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아일랜드 독립운동사를 전공한 로버트 밥콕 교수인데, 이분의 도움으로 많은 자료를 찾았습니다.”

김경수 박사는 로버트 밥콕 교수가 학생 한두명한테 아르바이트 비용을 대서 소년병학교 자료를 전문으로 찾는 작업을 3-4년 해왔다는 소개도 덧붙였다.

이날 우리 일행은 소년병학교 기숙사가 있었던 곳과 소년병들이 참여했던 채플, 헤이스팅스 대학이 소년병학교 관련 자료 전시를 위해 내준 교실도 참관했다. 자료 전시 교실은 평소 수업을 하면서, 벽면을 전시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아직 전시장에 갖춰야 할 자료들이 많습니다. 헤이스팅스 대학 학생들한테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공간으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김 박사는 “하지만 이곳을 찾는 한국여행객들은 정말 드물다”고 덧붙였다. 박용만 선생이나 한인소년병학교에 관심이 있는 역사학자나 언론매체들이 어쩌다 찾을 뿐이라는 것이다.

유학생으로 온 국가들의 국기가 게양돼 있다.
유학생으로 온 국가들의 국기가 게양돼 있다.

“네브래스카한인회가 헤이스팅스에 소년병학교 기념비를 세운 것은 2002년입니다. 그 후 작은 규모의 기념식을 해오다가 재외동포재단 지원으로 2019년 8월 차세대 포럼을 했습니다. 네브래스카한인회가 주최한 1박2일의 워크샵으로, 미 중서부 13개주 청소년 45명이 참가했어요. 한국의 유한고등학교 학생 3명도 참여했어요. 이곳 소년병학교 출신인 유일한 박사가 세운 학교지요.”

김 박사는 미주 한인회장들의 친목단체인 한백회도 이곳을 찾은 적이 있다고 한다. 2019년 네브래스카에서 열린 한백회 모임을 얼떨결에 떠맡은 최부제 회장이 헤이스팅스 방문을 성사시켰다는 것이다. 45명이 참여한 이 방문단의 안내도 김경수 박사가 맡았다고 한다. 

“과거 한인소년병학교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헤이스팅스대학에는 한국 유학생이 없어요. 저기 보이는 국기 게양대에 여러 나라 국기가 보이지요. 유학생이 와 있는 나라들의 국기들입니다. 하지만 태극기는 없었어요. 그래서 여기에 한인회에서 장학금을 주고라도 한국유학생을 유치하자는 방안까지 나오고 있어요.”

최부제 회장이 학교를 빠져나오는 길에 국기 게양대를 가리키며 말을 꺼냈다. 최부제 회장은 1981년 제12대 네브래스카한인회장을 맡았고, 이어 제13대, 그리고 제27대 한인회장으로도 봉사했다. 2002년 소년병학교 기념비를 세우고, 또 한인회 소속으로 박용만기념사업회를 만드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네브래스카에서 세탁업체를 경영하고 있는 최부제 회장은 한인회장을 지내고 1997년 천주교 신학대학에 들어갔다. 사제를 양성하는 이 학교에서 사모 최안나님과 함께 5년을 공부한 끝에 2002년 졸업해 ‘부제’ 서품을 받고 미국 성당에서 사목활동을 하고 있다. 그후 최용구라는 본명보다는 최부제라는 직명으로 통하고 있다.

천주교에 귀의하면서 그는 자선사업에도 적극 나서 매년 크리스마스 때는 홈리스 450-500명한테 식사를 제공하는 일을 20년째 빠짐없이 해오고 있다. 최부제 회장의 가족들이 참여해 봉사하는 이 행사 때면 네브래스카 TV와 언론들도 대거 현장취재를 나오는 등 큰 화제가 되는 이벤트라고 한다.

최부제 회장과 김경수 박사 등 우리 일행은 학교를 빠져나와서는 헤이스팅스 박물관과 헤이스팅스 장로교회, 당시 한인 무덤이 있는 묘지를 찾았다.

마침 박물관은 휴관일이어서 들어가지를 못했고, 소년병들이 졸업 때 특별음악회를 했던 장로교회에서는 이승만 박사가 이 지역을 방문했을 때 머물렀던 집의 생존자를 만나기도 했다.

돌아가는 길에 당시 한인들이 묻힌 묘지도 찾았다. ‘윤왕선’이라고 영문으로 쓴 묘지에는 ‘1904-1921’이라는 생몰연대도 들어있었다. 조선, 대한제국의 개혁, 민권운동가이자 외교관 언론인 교육자인 윤치호(尹致昊, 1865-1945년)의 아들로, 헤이스팅스대학 유학 중 폐렴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윤보선 대통령은 윤치호의 5촌 조카다.

헤이스팅스는 차로 왕복하는 시간만 5시간이 걸렸다. 한인소년병학교가 있는 헤이스팅스대학과 소년병학교 운영을 적극 도운 북장로교회, 현지 박물관, 당시 한인들이 묻힌 묘지 등을 당일치기로 찾아보려면 서둘러서 돌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김경수 박사처럼 훈련된 안내자가 없으면, 찾아볼 장소를 가늠할 수 없다는 점이다.

돌아오는 길에 “누구나 혼자서도 찾을 수 있는 가이드북이라도 하나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방문 소회를 밝히자, 김 박사와 최부제 회장은 “좋은 아이디어”라면서 “스폰서도 찾아달라”고 덧붙였다.

한인소년병들을 도운 헤이스팅스 북장로교회
한인소년병들을 도운 헤이스팅스 북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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