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어로 이룬 성공
[해외기고]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어로 이룬 성공
  • 아크바로프 아자마트(우즈벡 국립동방대 한국어강사, 우즈벡 국립교육방송 진행자)
  • 승인 2022.04.26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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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오른쪽이 필자인 아크바로프 아자마트 씨. 우즈베키스탄 국립교육방송에서 한국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이 필자인 아크바로프 아자마트 씨. 우즈베키스탄 국립교육방송에서 한국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필자는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국경의 작은 마을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몇 가지 일들이 아직도 떠 오른다. 1991년 우즈베키스탄 국민 모두는 소련의 붕괴에 기뻐하고, 앞으로 우즈베키스탄 경제가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 꿈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과 같았다. 소련 붕괴 후 소련 연방국과 우즈베키스탄의 모든 공장과 산업은 멈췄고, 농업과 축산업 외에 가족을 먹여 살릴 방법이 없었다. 새벽마다 온 가족은 밭에 나가야 했고, 여섯 살 된 나도 목장에 가서 소와 양에게 여물을 먹였다. 여름 태양이 몸을 태우든, 겨울 추위가 온몸을 뻣뻣하게 하든 상관없이 모든 식구가 힘을 합쳐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는 시골 생활이 싫었고 계속 농사짓고, 목축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내 인생을 분명히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은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나와 가족들의 삶을 바꾸겠다고 마음먹었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됐지만,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구소련 서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교과서가 부족했고, 상점에서도 책이나 학용품을 보기 어려웠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알파벳 책 1권을 들고 우리 교실에 들어왔다. 가장 열심히 하는 아이에게 이 책을 주겠다는 선생님이 “30명 학생 중 누가 책을 받을까?”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숨죽인 채 자신이 받기를 기대했다. 이후 선생님으로부터 이 책을 ‘아자마트 학생에게 주겠다’는 소리를 들었고 올림픽 금메달을 딴 선수만큼 행복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첫 번째 상이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고향 마을에 있는 일반 학교에서 마치고, 외국어 공부에 관심이 많아 수도 타슈켄트에 있는 동방대학교 부속고등학교로 가 한국어를 배웠다. 사실은 처음에 아랍어반에 지원했는데, 아랍어반이 꽉 차서 어쩔 수 없이 한국어반으로 갔다. 솔직히 전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한국어는 이상하게 느껴졌고, 한국어를 포기하고 다른 언어로 바꾸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한국어에 대한 흥미가 생긴 건 어느 날 새 교사로 오신 타슈켄트 국립동방대학교 안드레 선생님이 덕분이다. 그는 한국어뿐만 아니라 한국문화, 역사와 한국인들의 일상생활에 대해서도 재밌게 알려주셨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우즈베키스탄 국립 세계언어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해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선택했다. 2학년을 마치고는 한국 중앙대학교에서 유학을 하게 됐고, 한국어뿐만 아니라 한국문화, 역사 등도 배우고 돌아왔다. 4학년 때는 ‘우즈베키스탄 대학생들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참가해 우수상을 받았다.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온 나는 이곳에 있는 한국여행사에서 일했다. 여행하는 동안 여행객들과 기쁨과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좋았고, 여행을 나의 평생 직업으로 삼아야 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대기업인 대한항공 타슈켄트지점에서 2년간 재직하기도 했지만, 제 전공을 살리고 싶고 젊은이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열망이 남아 있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모교 대학에서 교사로 일하는 길을 선택했다.

한국어를 잘하는 덕분에 2022년 1월 1일에 우즈베키스탄 최초의 교육방송사에 취직해 우즈베키스탄의 유일한 한국어 진행자가 됐다. 나는 대학교와 방송국에서 한국과 한국어를 홍보하는 일도 함께 하고 있다. 나처럼 젊은 우즈베키스탄 친구들이 한국어로 성공하는 것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대한민국과 우즈베키스탄은 수교를 맺은 지 30주년이 되었고 한국어가 우즈베키스탄에 들어온 지도 30년이 됐다. 처음에는 대한민국 대사관 부속 기관인 타슈켄트한국교육원과 동방대학교에서만 한국어를 배울 수 있었지만 점점 한국어를 배울 기회가 확대되고 있다. 한국어는 이제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외국어 중 하나다. 10개 이상의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한국어가 우즈베키스탄에서 주요 외국어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우선, 대한민국 정부가 한국어와 한국문화 인기를 높이기 위해서 체계적으로 노력해 왔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 드라마가 크게 인기를 끈 것이 두 번째 이유다. 셋째는 고려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과 한국이 역사적으로 깊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한국어는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줬다. 하지만 오늘까지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 내 아이들도 한국을 사랑하고 또 다른 고향으로 생각하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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