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 생각하는 사람
[대림칼럼] 생각하는 사람
  • 엄정자 재일본조선족작가협회장(문학평론가)
  • 승인 2022.05.30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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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은 단테의 시 <신곡>에 영감을 받아 ‘지옥의 문’을 제작했다고 한다. 작품 안에는 단테의 모습을 형상화한 ‘생각하는 사람’을 비롯해 ‘추락하는 사람’, ‘세 망령’, ‘웅크린 여인’, ‘입맞춤(Kiss)’, ‘아담’, ‘이브’ 등 190여 명이 등장한다.

“로댕은 수백 점의 인물 군상에 인간의 정념, 쾌락의 절정과 여러 가지 악의 무거운 짐을 표현했다. 다닥다닥 붙어서 동물처럼 이빨을 드러내고 서로의 몸을 깨물면서 뒤엉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육체들을 만들었다. 지옥의 문에선 육체의 사슬이 화환과 덩굴손처럼 뻗어 나가고, 무언가에 귀 기울이는 얼굴, 무언가를 집어 던지려는 팔들과 군상들은 악의 즙에서 솟아나는 고통의 뿌리를 보여준다.(라이너 마리아 릴케)

‘생각하는 사람’은 이런 지옥을 내려다보면서 ‘지옥’에 대해서 생각했을 것이다. 본능적인 욕구와 쾌락에 빠진 인간이 어떤 형벌을 받게 될지, 인간은 왜 지옥이라는 무서운 형벌이 기다리는데도 타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에 대해서… 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자신이 ‘지옥의 문’ 앞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생각하는 사람’이 ‘지옥문’에서 떨어져 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이 세계의 의미에 대해서, 이 세계에서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내 추측이고 사람에 따라서 다 다를 것이다. 먹고 사는 것이 힘든 사람은 로댕이 어떻게 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했을 것이고, 사랑이 고픈 사람은 왜 사랑이 이렇게 어려운지,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했을 것이다. 취직을 못 해서 힘든 사람에게는 이 세상은 왜 약자에게 공평하지 못한가에 대해서 생각했을 것이다.

무엇을 생각하고 고민한다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이 무엇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것에 관해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우리의 삶을 위협하게 되면서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코로나를 이기고 우리의 삶을 지키는가 하는 문제였다. 자연히 뉴스에서도 매일 코로나 감염자 수와 병실점유율, 사망자 수가 고지되고 정부의 대책과 결정에 대해서 방송하고 있다. 정부는 물론 각 단체, 회사, 개인들마저 모두 코로나에 대해서 생각하고 코로나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찾으려고 모색하고 있다.

당장 코로나를 소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생활과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과 고민을 거쳐서 사람들은 마스크 쓰기, 손 씻기 양치질이 코로나감염을 막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이제는 마스크와 소독수가 필수품이 됐다.

거리 두기가 사회활동의 조건이 되면서 일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리모트 회의와 리모트 미팅이 전 사회에 정착되어 우리 학교도 줌(Zoom)으로 온라인수업을 했다. 이제는 학술회의도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그뿐인가? 온라인 콘서트 온라인 팬 미팅이란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형식이 문화사업의 주류를 이루었다.

며칠 전에도 학생들이 BTS의 온라인 콘서트를 보았다고 흥분해서 자랑했다. 한국으로 직접 여행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온라인으로 만으로도 좋아하는 아이돌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니 위안이 됐다. BTS 측에서도 딱 한 번의 콘서트를 영상으로 전 세계 몇백만의 팬들에게 동시에 발송했으니 투자와 비교하면 거액의 이윤이 창출됐을 것이다.

현대의학으로도 공제할 수 없는 코로나 사태에 인류는 거기에 대응하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새로운 생존방식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여 백신이 나왔고 치료방법이 나왔다. 이제는 당황하지 않고 코로나 사태에 대처할 줄 알게 됐다. 물론 나라에 따라서, 지방에 따라서, 개인에 따라서 생각이 다르고 그래서 대처하는 방식이 다르며 결과도 다르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생각이 자기와 다르다고 하여 대방을 비방하고 부정할 필요는 없다.

존. 롤스는 개인은 무지의 베일에 가려진 원초적 상황에 있지만, 나름 합리적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개개인은 각자 선(좋음, the good)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며, 자기중심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 존재라고 보았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생각을 하고 대처를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한국 대통령선거가 일본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일본은 한일관계가 좀 더 유연히 가게 해줄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랐지만 한국 사람들은 누가 구경 국민의 삶을 더욱더 잘 책임질 수 있는지를 고려했을 것이다. 일본보다 투표율이 높다는 것, 더구나 젊은 층의 투표율이 높았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에 대해서, 정치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를 선거할지, 왜 그 사람이어야 하는지, 투표한다는 것은 곧 ‘생각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래서 ‘나’의 한 표는 작지만, 그 한 표 한 표가 모아서 민심이 되고 대통령을 만드는 것이다. 이제 투표는 남의 일이 아니다. 투표는 ‘나’의 권리이며 그래서 반드시 신중하게 생각하고 투표해야 할 것이다.

요즘 텔레비전을 켜면 온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관한 뉴스 일색이다. 일본의 매체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주장을 따르고 있지만 전쟁이 지연되면 인명피해와 경제적 피해가 커질 것이니 우선 전쟁을 중지시키기 위해서 힘써야 한다는 의견들도 나오고 있다.

예전의 나라면 아마 이런 국제정세나 사회적 문제를 취급하는 프로그램은 보지 않았을 것이다. 나 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문제이고 내가 생각한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열심히 뉴스를 청취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가를 생각한다. 먼 우크라이나의 문제가 우크라이나만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전쟁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삶의 터전이 폐허가 돼버렸다.

무고한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외국으로 떠돌고 피난민이 내가 사는 나고야(名古屋)에까지 들어왔다. 석윳값이 오르고 에너지자원이 부족해지며 물가가 오르고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이 일어나고 있다. ‘우크라이나 문제’가 무시할 수 없는 ‘나’의 문제가 됐다. 물론 ‘나’ 한 사람의 생각은 미미한 것이겠지만 많은 사람이 생각하고 무언가를 한다면 그것은 하루빨리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한 큰 힘이 되지 않겠는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부조리하다. 코로나 때문에 일상이 무너지고 여행도 할 수 없다. 전쟁이 사람들의 평화로운 삶을 무너뜨린다. 세계 1%의 부자들이 점유하고 있는 자산은 나머지 99% 사람들의 모든 자산을 합한 것보다도 많아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경제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고 물가는 오르기만 한다. 젊은 세대 중 직업이 없고 집도 없는 사람이 많다. 현실은 이같이 암울한데 현실을 바꿀 힘이 나에게는 없다. 너에게도 없다.

그렇다고 현실을 외면하고 무시한다면 세상은 정체된 상태에서 변하지 못할 것이다. 세계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의식하고 끊임없이 함께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세상이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왜 고전을 좋아하는가? 그것은 그들이야말로 세상의 문제를 직시하고 삶의 본질에 대해서, 인류의 운명에 대해서 깊이 사색하고 탐색하고 그들의 책은 그 사색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정의인지, 무엇이 정의롭지 않은지에 대해서 사람들은 일치한 의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무슨 생각을 하는가 하는 것도 그 사람의 자유일 것이다. 그리고 개개인은 ‘무지의 베일’(존. 롤스)에 가려진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때문에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래서 인간은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말에 ‘생각이 없는 사람’이란 말이 있는데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고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가 모두 ‘생각하는 사람’이 된다면 하나하나의 생각이 모여서 흐름을 이루고 그렇게 세상은 변할 것이다.

우리 개개인은 개인이면서도 사회에 속해 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지옥의 문’ 안에 있을 때 ‘지옥’에 대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내일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로댕은 ‘지옥의 문’을 제작하기 위해 30년 넘게 구상하고 많은 고뇌를 했다고 한다. 그 자신이 ‘생각하는 사람’이 됐기 때문에 백 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고 사색하게 만드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은 것이다.

오른손으로 턱을 받치고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앉아 진지한 고민에 빠진 ‘생각하는 사람’, 이것이야말로 우리 현대인들이 취해야 할 가장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필자소개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연길시 10중 국어교사, 길림시조선족중학교 국어교사, 길림신문사 기자로 활동.
1997년부터 일본에 거주. 현재 일본 ECC외국어학원 한국어강사. 연변작가협회회원, 일본조선학회회원, 일본조선족연구학회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 해외이사.
수필 <화산 우에서 사는 사람들>, 제9회 <도라지> 장락주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수필 <감나무에 담긴 정> 제1회 同胞文學 安民賞 수필부문 우수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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