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성 칼럼] ‘포퓰리즘’과 김지하, 이어령, 윤석열
[정대성 칼럼] ‘포퓰리즘’과 김지하, 이어령, 윤석열
  •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 승인 2022.06.1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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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을 미국 ‘타임스’ 지가 ‘2022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했다. 당선 직후의 국정운영 설문결과에 그리 높지 않은 기대치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다. 그래서인지 윤 대통령에 대해 ‘포퓰리스트 지도자’라는 평가도 덧붙여졌다.

포퓰리즘이란 무엇인가? 윤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지성’을 강조했다. 지성주의는 포퓰리즘에 상반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한국민들 사이에 만연해있는 ‘반일’감정을 이용하는 것이 포퓰리즘이다. 필자에게는 윤 대통령의 ‘지성’ 발언이 그런 감정적 조작을 이용하는 오류를 시정하겠다는 정당한 선언으로 들렸다. 그래서 기대가 크다.

그런데 왜 ‘타임스’ 지는 포퓰리즘을 들먹였을까? 그 이유 하나는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다. 이 대표 책임론이 나왔고, 그의 우크라이나 행보에 대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지만, 필자는 그를 너무 과하게 비판할 생각은 지금은 없다. 그보다 필자가 유심히 보는 것은 이 대표나 윤 대통령이 다 진보 측에서 키워주고 현재 보수당의 고위에 올라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정치에는 진정한 진보도 보수도 없는가? 교과서적인 잣대로도 그런 정치풍토를 한탄하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현실에서 정치를 진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

포퓰리즘은 쉽게 말하면, 대중의 불만이나 편애적 감정에 영합한 문화정치 전략이다. 그것은 아담 스미스적 우파도 아니고, 마르크스적 좌파도 아니다. 칼빈적 유신론도 아니고, 니체적 무신론도 아니다.

‘대중적 인기’라는 것이 민주제 사회에서는 큰 힘이다. 대중은 개혁주의 황제처럼 좋은 방향으로 갈 때도 있거니와, 폭군적인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서 판단하고 있는 경우보다 누군가에게 유도되어 자기도 모르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른바 대중(의식)조작이라는 것이다.

대중조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교육과 문화이다. 교육, 문화 정책을 수립하는 사람들 위에 더 큰 권력이 있고, 교육자, 문화사업 종사자는 결국 그 하수인인 꼴이다. 하지만, 그 명령체계가 빈틈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균열이 있다. 그 속에서 다름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하는 것이다. 그것을 전문용어로 문화리테러시(문화를 읽어내는 힘)라고 한다.

필자가 고교 때 세계사 과목을 좋아했다. 당시 필자의 즐거움은 아버지의 서재에 들어가, 평범사의 백과사전으로 세계사적 사건들을 조사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서재에서 머리를 망치로 두들겨 맞는 것과 같은 사건이 있었다. 김사량 전집이나 계간 삼천리도 있어서 그것들이 필자에게 큰 영향을 미쳤지만, ‘망치’ 정도는 아니었다. 망치를 맞았다는 것은 김대중 옥중 서간, 광주민주항쟁의 팸플릿 등을 접한 일이다.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혁명 같은 것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안 순간이다.

필자는 ‘국어’(일본어) 시간에 배운 고바야시 히데오의 영향으로, 프랑스 혁명 시기의 시인들, 보들레르, 랭보 등을 읽었다. 고바야시가 서점에서 랭보를 발견한 후 머리를 두들겨 맞았다고 표현한 것처럼, 필자도 시골 큰 서점에서 김지하를 발견해서 머리를 두들겨 맞았다. 김지하 옥중 서간집인 <고행> 일본어판이었다. 일본어로 출간된 김지하 시집도 읽었다. 이처럼 동시대 한국 문인과의 첫 만남은 김지하였다.

필자는 한국에 가서 김지하 시인을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필자가 동경대 대학원을 다니고 있을 때 사건이 터졌다. 그가 죽음의 잔치를 그만두라며 학생운동권의 투신(자살)을 비판한 글을 썼고, 그것에 대해 이른바 좌파들이 일제히 공격을 퍼부었다. 김지하는 그때부터 생명 사상을 부르짖었는데, 아무도 호응하지 않았다. 필자의 동경대 지도교수였던 오가와 교수는 조선 실학사상으로부터 생명 사상을 추출하고 있던 터라, 김지하를 이해했다. 필자 또한 그랬다. 되레, 김지하를 비판하는 언설과 담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 세간에는 문화론 붐이 일었다. 때마침, 이어령 교수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출판돼 선풍을 일으켰다. 1980년대에 이미 나온 책이나 90년대 2000년대에도 계속 팔렸다. 고전적 명저 『국화와 칼』, 당시 인구에 회자되던 <재팬 애즈 넘버원(Japan as No. 1)>과도 비견된다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오오무라 교수 영향으로 읽던 김윤식 교수 다음으로, 필자에게 영향을 준 동시대 한국 지성인이 이어령 교수였다.

필자는 사정이 있어 이화여대 대학원으로 유학을 와서, 마루야마 마사오 제자인 박충석 교수의 훈도를 받았다. 그러면서 국문과도 끼웃거리며 이어령 교수 수업도 들었다. 그 뒤, 외국인, 재외국민 전형으로 서울대 대학원 국문과를 들어가, 김윤식 교수 특강도 들었다. 그때 서울대 교수들이 이어령 교수를 서울대 국문과로 모시지 못한 게 아깝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이어령 교수가 서울대 시절에 이상론을 가지고 찬란하게 데뷔한 사실도 알게 됐다.

필자는 습작으로 써놓은 시를 이어령 교수한테 여러 번 보냈다. 하지만 그때마다 무시당했다. 이 교수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연구 등을 끝으로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기독교적 고백 속으로 똬리를 틀었다.

당시 필자는 김지하의 생명 사상을 일본어로 번역해 일본 이와나미 서점의 진보적 월간지 <세계>에 게재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김석범 작가로 인해 성사시킬 수 없었다. 편집장이 조선학 관련 유식자에게 자문받아 게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는데, 그 유식자라는 분이 김석범 작가였다. 그는 김지하 시인이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 시인이라고 혹평했다고 한다.

한번은 필자의 자작시를 어떤 한국 신문 관계자께 보였더니 출판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 필자가 “김지하 시인에게 내 시를 바친다”는 식의 헌사를 표지에 넣고 싶다고 말했더니, 그는 극구 반대했다. 시인을 만나러 가야겠다고도 했더니, 만나지도 말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김지하 시인과 인연을 맺을 수 없었다.

김지하 시인과 이어령 교수는 공교롭게 최근 비슷한 시기에 타계했다. 그들은 천재이나, 현실 세계에 살다간 인간인 이상, 시대적 상황이나 포퓰리즘과 무관할 수 없다. 이어령 교수는 이승만 독재, 제2공화국, 고도성장 같은 한국의 민주혁명, 산업혁명의 시대정신, 에토스를 반영했고, 김지하 시인은 반군부 민주화운동의 정신들을 반영했다. 말하자면, 전자는 우파적 포퓰리즘을, 후자는 좌파적 포퓰리즘을 반영한 셈이다.

이 두 가지 포퓰리즘을 잇는 커다란 고리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와세다대 근처 조그만 하숙집에 숨어 살았던 망명객이 세계적 대업을 이뤘고, 한국의 좌우 포퓰리즘을 아울렀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이 대표, 윤 대통령이 좌파에서 키워줬다가 우파에서 득세할 수 있었던 비밀이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다시 주목되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도 일본 측에서 보자면 자민당이 좌우 포퓰리즘을 잘 아울렀던 시기의 산물이다.

문제는 이어령, 김지하 다시 읽기, 다르게 읽기이다. 한국 포퓰리즘에 얼버무려진 듯 보이는 그들의 행보에 매끄럽지 않은 탈선이 있다. 그것이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예컨대, 이어령 교수는 88올림픽 때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그때 잘 안 알려진 사실이나, 민족종교 중흥을 겨냥한 단체의 결성을 허락한 바 있다.(소설 <단> 인기와 관련이 있었으리라.)

또한 김지하 시인은 판소리적 운율에서 율려적 소리로 탈피하다가 실패했다고 평가되고 있지만, 그의 생명 사상이 연구될 날이 오리라 믿는다. 참고로, 필자의 서울대 석사 논문 주제에는 김우진의 생명 사상이 포함됐다.

필자가 공부하고 교편 잡은 뒤, 지금 졸문을 긁적거리고 있는 이 시대는 포스트모던, 세계화(네오 식민주의)의 혼돈적 과도기, 과도기적인 모호성이 지속하는 시대다. 공업화 신화가 무너지면서도 지속 가능한 공업화를 하자는 혼돈된 ‘지속 가능’의 세계다. 이에 따라 새로운 포퓰리즘의 풍파, 홍수가 일 것이다. 따라서 ‘지성’ 있는 자들은 그에 대비해서 부지런히 방주를 건설해야 한다. 또 좌우 포퓰리즘을 둘 다 삼켜서 소화하는 지혜와, 둘 다 삶아서 아우르는 담력도 필요한 때다.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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