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㉝] 현장 경험을 통해 아프리카 사업을 이끌다 – 이현정 한국수출입은행 아프리카부장
[아프로㉝] 현장 경험을 통해 아프리카 사업을 이끌다 – 이현정 한국수출입은행 아프리카부장
  • 이현정 한국수출입은행 아프리카부장
  • 승인 2022.06.2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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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RO’는 국내 아프리카 전문가들의 모임이다. 외교부 한·아프리카재단에서는 이들의 활동을 소개한 책을 두 권 펴냈다. ‘Af-PRO, 한국과 아프리카를 잇다’는 제목의 단행본들이다. 한·아프리카재단의 허락을 받아, 이 책의 내용을 연재한다.[편집자주]

한국수출입은행은 2021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Economic Development Cooperation Fund) 사업본부에 아프리카부를 신설했다. 그리고 개발협력에 대한 강한 의지와 아프리카 국가에서의 성공적인 커리어가 반영되어 최초의 아프리카부 부장에 이현정 팀장이 임명됐다. 이현정 부장은 1995년 한국수출입은행에 입사한 이래 20년 넘게 수출금융업무에 종사하며 국제개발협력 업무에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그래서 2017년 탄자니아 다레살람(Dar es Salaam) 사무소장을 모집한다는 사내 공고를 본 이현정 부장은 미지의 아프리카 현장에서 국제개발협력 업무를 익힐 수 있는 자리에 매력을 느꼈다.

다레살람 사무소장으로 부임한 이현정 부장은 탄자니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우리나라처럼 경제 성장을 이루는 데 작게나마 기여한다는 보람을 느꼈다. 물론 현장에서 일하며 어려움도 겪었지만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주어진 여러 프로젝트를 카리스마있게 이끌어 진행시켰다. 탄자니아 최초의 해상 교량인 ‘뉴 샐린더 교량(New Selander Bridge)’ 사업은 이현정 부장이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사업이다. 올해 완공을 앞둔 뉴 샐린더 교량을 통해 EDCF가 지원하는 사업이 현지 사람들에게 실제로 어떠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레살람 시민들은 뉴 샐린더 교량이 심각한 교통 체증을 해소할 뿐만 아니라 전체 도시의 인상을 현대적으로 바꾸는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리라 기대한다. 현재 이현정 부장은 탄자니아에서 사업을 관리했던 경험을 토대로 EDCF의 효과적인 개발협력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다레살람 사무소장으로 부임하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을 이끄는 공적수출신용기관으로 대부분의 인력이 수출금융에 종사하며 지원부서도 수출금융 위주로 편성되어 있다. 나 또한 1995년 입사한 이래 줄곧 수출금융 업무에 대부분 종사했다. 그런데 한국수출입은행에는 수출금융 외 기획재정부가 위탁한 EDCF를 운용하는 부서와 통일부가 위탁한 남북협력기금을 운용하는 부서도 있다. 나는 그중 EDCF를 운용하는 국제개발협력 업무에 큰 매력을 느꼈다. 국제개발협력을 통해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강화하고 미래 수출입시장을 육성하는 일이 EDCF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년이 될 때까지 좀처럼 기회가 잘 닿지 않았다.

그러던 중 탄자니아 다레살람 사무소의 소장을 새로 모집한다는 공고가 올라왔다. 한국수출은행은 수출금융을 전문으로 하는 만큼 세계 주요 도시마다 사무소가 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도쿄, 파리, 워싱턴 D.C. 등의 대도시에 소재한 사무소에서 근무하기를 희망했지만 나는 예측가능한 업무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파견 근무라는 모험을 선택한다면 좀 더 용기를 내 아예 낯선 곳에서 낯선 일을 해보고 싶었다. 다레살람 사무소에 부임하여 EDCF 업무에 종사한다면 그동안의 익숙함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경력을 쌓고 새로운 인생을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더욱이 탄자니아가 경제 성장을 이루는 데 작게나마 힘을 보탤 수 있다면 개인적으로 멋진 경험이 될 거라 믿었다. 때마침 첫째 딸은 입시를 끝냈고 대학 진학을 목전에 두고 있었으며, 둘째 딸은 중학교를 졸업한 상황이었다. 나는 새로운 도전이라는 절실한 마음을 담아 다레살람 사무소장직에 지원했다. 그리고 2:1의 경쟁률을 뚫고 마침내 다레살람 사무소장으로 임명됐다.

공항에 내려 마주한 다레살람의 첫인상은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발전된 모습이었다. 공항에는 전임 소장이 직접 나와 반겨주었다. 나는 눈 앞에 펼쳐진 우리나라 1960~70년대 모습 같은 풍경이 생경하여 호기심에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예상하지 않았던 도시의 모습, 특히 마천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물론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로 사람들이 가축을 몰고 가는 등 상반된 분위기의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아스팔트 위를 가축과 함께 느릿느릿 걷는 사람들 너머로 30년 이상 된 듯한 색바랜 중고자동차가 내달리고 그 너머로 고층건물이 숲을 이룬 풍경이 자아내는 대비감이 흥미로웠다.

내가 그동안 바라 왔던 낯선 땅에 불시착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우리가 머물 곳은 해외에서 온 주재원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으로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시설을 갖추고 있어 불편함은 없었다. 함께 온 둘째 아이도 학교생활에 무척 만족했다.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학습 과정과 분위기에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학교생활을 즐겼다. 일례로 다레살람에서는 필수 교육 과정에 수영이 있다. 그런데 이때 우리가 흔히 아는 자유형, 배형, 평형 등의 영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바닷물에 뜨는 법, 높은 곳에서 안전하게 다이빙하는 법 등 실생활에서 필요한 기술 위주로 가르쳤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 아닌 삶에 꼭 필요한 기술 위주로 가르치는 탄자니아의 교육법이 새롭고 합리적으로 여겨졌다.

국토부 세미나 후
국토부 세미나 후

탄자니아에서 마주한 EDCF 현장

EDCF 사무소가 위치한 다레살람은 탄자니아의 경제수도다. 공식 수도인 도도마(Dodoma)가 아닌 다레살람에 사무소를 둔 이유는 이곳이 탄자니아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이자 나아가 동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무역 거점 도시이기 때문이다. 탄자니아와 국경을 맞댄 여덟 국가 중 우간다, 르완다, 부룬디, 콩고민주공화국, 잠비아, 말라위 등 여섯 국가가 사면이 육지로 둘러싸여 있다. 그만큼 동아프리카에서 바닷길을 통한 수출입 산업에 있어 다레살람의 역할이 중요하다. 도도마가 행정 수도라면 다레살람은 경제수도인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도로 체계가 도시화로 인한 인구과밀화와 항구에서 육로로 이어지는 물류의 이동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점이다. 다레살람의 고질적인 교통체증으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은 물론 시민들의 피로감이 더해졌다.

특히 제1 경제산업 중심지인 음사사니(Msasani) 지역과 중심상업지구(CBD: Central Business District)간의 교통 정체가 심각한 수준이다. 탄자니아 정부는 음사사니와 CBD 간의 정체를 해소하고자 인도양을 가로질러 이 둘을 연결하는 대규모 해상 교량을 건설하고 있다. 그리고 탄자니아 최초의 해상 교량에 해당하는 이 ‘뉴 샐린더 교량(New Selander Bridge)’ 건설사업을 EDCF가 지원한다. 내가 다레살람 사무소장으로 부임한 시기는 2013년 구상한 뉴 샐린더 교량의 공사 입찰 준비작업이 한창일 때였다. 뉴 샐린더 교량 건설사업은 EDCF가 아프리카대륙에서 지원한 사업 중 가장 큰 규모이자 고인이 된 존 마구풀리(John Magufuli) 前대통령의 공약으로 우리나라와 탄자니아 양국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EDCF 같은 경우 지원할 사업을 우리가 주체가 되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먼저 수원국의 재무부가 우선순위에 둔 사업이어야 하며, 그 사업을 관할할 부처가 해당 사업을 추진할 의지와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동시에 우리나라 기획재정부가 사업의 필요성과 우리에게 그 사업을 해낼 역량이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사업을 승인한다. 우리가 개발도상국에 주로 지원하는 사업은 지역 인프라 구축이다. 그런데 지역 사회의 불편을 혁신적으로 해소하더라도 사업의 형태가 생소하다 보니 사람들은 정작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을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 탄자니아 아루샤(Arusha) 공항에서 도심으로 향하는 길에 큰 변전소 하나가 있다.

탄자니아한국대사, 마구풀리 前 대통령과 함께
조태익 주탄자니아한국대사, 잔지바르 대통령 알리 모하메드 쉐인과 함께

참고로 아루샤는 킬리만자로산과 세렝게티 국립공원으로 가는 관문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잦으며 관광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거주한다. 관광 시설과 사람들이 밀집하자 아루샤에서 정전이 잦아졌다. EDCF는 킬리만자로산에서 아루샤까지 송전망을 구축하고 변전소를 건설하여 일대에 원활한 전기 공급이 가능하도록 지원했다. 그러나 송전망 구축과 변전소 건설은 지역의 고질적 정전 문제를 해소하는 핵심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누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는지에 대해서는 무심했다. 나는 변전소를 지날 때마다 반가운 마음에 송변전 공사를 EDCF가 지원하고 우리나라 기업이 완공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현지인들 대답의 온도는 미적지근했다.

탄자니아 최초의 해상 교량

그런데 뉴 샐린더 교량 사업을 대하는 현지 사람들의 반응은 자못 달랐다. 다레살람에서 택시를 타고 이동하다 보면 기사들이 먼저 뉴 샐린더 교량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우리가 관계자라는 걸 모른 채 타지인에게 자랑스럽게 “우리 지금 저 바다에 무척 예쁜 다리를 짓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그 순간마다 다레살람 시민들이 이 사업을 정확히 알고 있고 사업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확신이 들었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가 사업의 주체는 아니었으나 현지인들이 완공된 다리를 기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뿌듯했다. 한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통상적으로 교량을 짓기 전에 교량 건설에 필요한 물자를 나르기 위해 철근으로 가교를 우선 짓는다.

홍보대사 박찬호 선수 방문
홍보대사 박찬호 선수 방문

그리고 실제 교량을 지으면 가교는 철거한다. 그런데 그 가교를 가리키며 한 택시 기사가 “벌써 다 지었다”고 감탄하며 “저렇게 빨리 지을 수 있냐”고 신기해했다. 그래서 나는 저것은 가교여서 곧 철거할 예정이고 더 근사한 다리가 그 자리에 생길 것이라고 귀띔했다. 택시 기사는 화들짝 놀라며 “저렇게 좋은 다리를 왜 없애냐”며 “그냥 두라”고 신신당부했다. 뉴 샐린더 교량 사업 하나를 두고도 하루 종일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얽히고설킨 사연이 많다. 뉴 샐린더 교량 건설사업 2013년 처음 구상한 사업으로, 2019년 착공에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의아해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공사에 들어가기 전 풀어야 할 난제가 있었다.

단순히 해상 교량 하나를 짓는다고 교통 체증이 해소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교량과 이어지는 육로가 지금처럼 좁을 경우 병목 현상이 재발하고 교통 체증이 반복될 수 있었다. 따라서 다리와 연결된 도로를 동시에 확장해야 했으며 그 부지를 확보하는 일은 탄자니아 정부의 몫이었다. 여기서 문제는 확장할 도로가 특정 국가들의 대사관 앞을 지나간다는 사실이었다. 대사관 부지를 침범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해당 국가들의 반발이 거셌고 노선을 변경하라는 압박을 가했다. 우리에게 노선을 변경할 권한이 없음을 알면서도 우리나라 대사관을 압박하자 우리 정부는 이 사업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한때 지원 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그런데 다행히 이후 새로 부임한 대사가 해당 국가의 대사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면서 타국 대사관들의 반발은 시간이 지날수록 누그러졌다.

놀랍게도 뉴 샐린더 교량 건설 아이디어를 최초로 제공한 사람은 우리 교민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우리나라가 큰 다리를 지은 경험이 많다 보니 이런 아이디어가 나온 것 같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만 해도 대체 몇 개인가. 예부터 강이나 바다를 가로지르는 교량을 봐온 우리 교민이 탄자니아 도로청 관계자에게 교통 체증을 해소할 방안으로 해상 교량 건설을 제안했다고 한다. 만약 해상 교량이 아니라 도로확장 사업을 펼쳤다면 어마어마한 비용은 물론 주민이나 상가를 대규모로 이주시키느라 30년 이상의 장기 국토개발계획을 세워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뉴 샐린더 교량은 1억 달러 규모로 교통체증을 완화하고 높은 경제적 효과를 낼 수 있었다. 나는 이렇듯 들이는 비용이나 기간 대비 효과가 높은 해법을 발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 교민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된 뉴 샐린더 교량 사업에 나와 EDCF가 특히 애정을 느끼는 이유다.

한국출장단과 EDCF 병원사업 현장방문
한국출장단과 EDCF 병원사업 현장방문

현지 조직문화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

하지만 애정이 커서였을까. 서둘러 뉴 샐린더 교량 사업을 추진하고 싶었지만 탄자니아 공무원들은 내 마음처럼 따라와 주지 않았다. 업무는 지체되고 사업은 좀처럼 진전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이 납득이 가지 않고 답답했지만 그들의 조직구조와 문화를 이해하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탄자니아 공공기관인 사업시행처 담당자가 공문 한 장을 써서 차관에게 서명만 받아주면 일의 진척 속도를 당길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담당자는 공문을 써주지도 않고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다레살람에서 탄자니아의 발전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섭섭하기도 했다.

한국이었다면 이메일 한 통에 처리될 일을 한 달 넘게 전화하고 여러 차례 찾아가며 요청해야만 했다. 나는 이렇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 알아보았고 탄자니아의 업무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탄자니아 공무원은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무척 엄격하였고 위에서 지시한 내용은 무조건 따르는 대신 아래에서 위로 의견을 내는 일은 경험이 없을뿐더러 조심하는 눈치였다. 우리나라처럼 성과 평가 제도가 도입되지 않은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고착화하는 데 일정 부분 작용했을 듯하다.

개발협력사업은 현지 국회의원과 장·차관급 인사들이 거의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실무진 선에서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나 조직문화를 잘 알지 못한 채 빨리 처리해달라고만 했기에 사업이 진행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70, 80년대 우리나라의 고속성장을 직접 눈으로 지켜보았고 그것이 머릿속에 기준이 되어버려 조바심을 냈던 것이다. 내가 조금 더 개입하고 노력하면 더 빨리 바뀔 수 있다는 마음이 앞서 실수를 했던 것 같다. 이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었고 사업을 추진할 때는 한국의 유명한 “빨리빨리” 조급증을 내려놓고 현지 조직문화부터 먼저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다고 수시로 되뇌었다.

지상사협회 환송식
지상사협회 환송식

탄자니아에서 EDCF의 위상

마구풀리 前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전에는 건설부장관이었다. 당시 EDCF는 건설부 사업으로서 키고마(Kigoma)에 말라가라시(Malagarasi) 교량을 짓는 사업을 지원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기를 고려했을 때 완공까지 27개월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았는데 실제 완공까지는 몇 개월 지연되었다. 그런데 탄자니아가 시공하기로 했던 연결 도로 부분을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게 되자 탄자니아 정부는 연결 도로 건설을 위해 EDCF 앞 보충융자를 요청했다.

국내 시공사는 이미 본 교량을 지으며 현지 상황에 적응한 터라 추가 공사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됐다. 그리하여 연결 도로 공사의 경우 예상한 기간보다 2개월 당겨 끝냈다. 마구풀리 前 대통령은 “탄자니아 내에서 모든 건설사업은 완공이 지연되었는데, 조기 완공하는 경우는 생애 처음 봤다”며 “한국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거듭 감탄했다. 그 이후로 장관은 주탄자니아 한국대사를 만날 때마다 그 이야기를 꺼내며 우리나라 사람들을 칭찬했고 진심으로 한국의 적기 혹은 조기 완공 역량에 경의를 표했다. 덕분에 대통령에 선출된 후로도 마구풀리 前 대통령은 우리 정부와 EDCF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탄자니아 재무부가 자국에서 시행되는 국제개발사업들이 다들 너무 지연된다며 그 원인을 파악하여 개선하기 위해 TF팀을 만들었다. 탄자니아에서 활동하는 국제적인 수준의 원조기구는 총 17개였으나 그 중 EDCF는 규모나 기여도 면에서 핵심 기구에 해당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탄자니아 TF 측에서는 EDCF에도 개별 면담을 요청했기에 우리는 TF팀이 모든 원조기구들과 개별 면담을 진행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원조기구의 대표를 맡고 있는 노르웨이가 원조기구 전체에 메일을 보내 TF팀이 세계은행(World Bank)에 개별 면담을 요청했다는데 다른 기관들도 요청을 받았는지를 물어왔다.

앙골라 치안강화사업 완공 후
앙골라 치안강화사업 완공 후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그렇다고 답을 했더니 다른 기구들이 깜짝 놀란 눈치였다. 알고 보니 TF팀이 세계은행과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Japan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그리고 한국의 EDCF에만 면담을 요청한 것이었다. 재무부의 결정에 사실 우리도 많이 놀랐다. 우리나라는 탄자니아에서 규모는 작아도 굉장히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EDCF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대사관, 그리고 한국국제협력단(KOICA: 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Korea Trade-Investment Promotion Agency),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 Korea Foundation for International Healthcare) 등 진출 공공기관들, KOICA나 EDCF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현지 진출한 지상사들, NGO, 교민, 자원활동가, 선교사 모두 전력을 다해 먼 열대의 나라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각자 열심이다. 나는 EDCF가 개별 면담 명단에 속했다는 사실에 한국인으로서 강한 자부심을 느꼈다.

현지 사무소의 경험을 안고 아프리카부장으로

EDCF 입장에서도 탄자니아는 중점협력국이다. 다레살람 사무소는 EDCF가 아프리카대륙에 2007년 처음 개소한 사무소다. 탄자니아 다레살람에서 근무하며 현지 사무소의 유무가 양국이 협업하는 데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다. 현지 문화와 업무 스타일을 직접 부닥치며 경험해야 비로소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종종 탄자니아 사람들이 약속 시간에 1~2시간 늦거나 아예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처음에는 무시당한다는 생각에 모욕감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을 이해하게 됐다. 우선 다레살람의 교통 체증은 앞서 언급했듯이 심각한 수준이다. 그래서 약속장소까지 이동시간을 예측하기 어려웠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약속에 늦거나 불참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위계질서가 강하다 보니 상사가 내부회의를 급하게 잡으면 이미 예정된 면담이라도 취소하는 경우가 있었다. 나는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며 그런 문화를 받아들였지만 만약 그러한 기회가 없다면 작은 오해로 일이 크게 틀어질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프리카대륙에는 대면 중심의 문화가 발달했다.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일에 익숙하며 이를 선호한다. 이런 까닭에 본사에서 현지 정부에 직접 연락해 공문을 받으면 반년이 걸리겠지만 현지에 사무소가 있다면 소요 기간을 한 달로 줄일 수 있다. 탄자니아의 경우 EDCF가 사무소를 일찍이 개소하여 오랫동안 신뢰관계를 쌓았기 때문에 일이 속도를 낼 수 있었고 성과도 더 빨리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현지 사무소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파견 근무 경험을 통해 새삼 깨달았다.

나는 올해 초 아프리카부장으로 부임했다. 그동안 EDCF는 아시아 지역 위주로 편성돼 있었다. 아시아에는 거의 1국 1사무소 체제를 갖춘 반면, 아프리카대륙에는 54개국 중 사무소를 둔 국가가 세 곳밖에 되지 않았다. 이러한 지역 불균형 속에서 올해 아프리카부가 신설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적극적으로 아프리카부에서 일하고 싶은 의사를 표명했다. 현장에서 직접 부딪혀 좌절과 갈등을 겪은 끝에 현지 문화를 잘 이해하게 된 만큼 EDCF의 규정, 절차 등을 좀 더 아프리카 현실에 맞게 개선하는데 누구보다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탄자니아에 있으며 우리나라 사람들과 기관들이 다양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함에도 불구하고 그 노력들이 분절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비유하자면 NGO는 코끼리 코를, 교민들은 다리, EDCF는 몸통, 한국국제협력단(KOICA: 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은 꼬리 정도를 만지고 있는 셈이다. 이들이 다 모여 그간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고 협업해야 코끼리의 전체 형상을 겨우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긴밀한 공유체계가 부족한 상황이다. 나는 아프리카부장으로서 이들의 경험을 모아 서로 연계하는 방안을 찾고 아프리카대륙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만한 사업을 만들어 가보고 싶다. 각자 열심이었던 개발협력에서 이제 연대의 힘을 보여주는 개발협력을, Team Korea의 힘을 보여주고 싶다는 갈망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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