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210] 고려인 강제이주
[아! 대한민국-210] 고려인 강제이주
  •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 승인 2022.07.23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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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1937년 9월 9일 밤, 옛 소련지역에 살던 우리 동포들, ‘고려인’을 강제로 태운 첫 수송열차가 러시아 동쪽, 연해주의 라즈돌노예역을 출발했다. 길어야 1주일전, 보통은 2-3일전, 심지어 바로 전날 짐을 싸고 역에 모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너무나 갑작스럽고 충격스러운 일이었다.

열차가 기적을 울리자 살던 지역을 떠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슬픔과 눈물이 가득했다. 고려인들은 재산은 물론 가재도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화물차와 가축 운반차에 짐짝처럼 실려 시베리아를 횡단해야 했다. 열차 안에서 3-4주 동안 무려 6천 km를 이동했다. 숱한 동포가 굶주림과 추위, 질병과 사고로 죽어갔다. 강제이주 전후에 숙청당한 사람까지를 합치면 고려인 사망자는 2만여 명에 이르렀다.

소련 당국은 강제이주 직전 고려인 지도급 인사 2,500명을 일본의 간첩, 또는 반혁명분자로 몰아 체포, 총살했는데 이때 김단야, 박진순 등 소련에서 활동하던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희생되었다.

고려인 강제이주는 특정 민족을 철저히 탄압하는 ‘국가 테러리즘의 극치’였는데 이런 만행을 단행한 것은 스탈린(1879~1953)이었다. 일본이 연해주로 쳐들어올 수 있는 상황에서 고려인이 일본의 첩자가 될 수 있고, 고려인의 독립운동이 오히려 일본을 자극할 수 있다고 보고 이러한 고려인 강제이주를 단행한 것이다.

중앙아시아로 간 고려인은 우즈베키스탄에 7만여 명, 카자흐스탄에 9만여 명이 배치되었고, 이후 다른 지역으로도 분산되었다. 생전 처음 겪는 열악한 환경에 던져진 이들은 땅굴을 파고 거주하거나 움막에서 살기도 했다.

넓이가 한반도의 18배인 중앙아시아에서 이들은 조금씩 적응해 가면서 벼와 목화 농사를 시작해 경작지를 크게 늘렸다. 1983년에 이르면 소련 전역의 쌀 생산량 가운데 카자흐스탄에서 90만 톤, 우즈베키스탄에서 50만 톤을 생산했다.

이들이 거주지를 떠나 다른 지역에서 땅을 빌려 농사짓는 임차농업 방식을 개발했다. 고려인들은 1년 중 7-8개월을 가족과 떨어져 황량한 들판에서 땀을 흘려 임차료 말고도 상당한 자기 몫을 챙길 수 있었다. 이러한 근면함 때문에 고려인은 다른 소수민족보다 빨리 경제적 안정을 이룰 수 있었다. 교육열도 대단했고 전통문화를 지키려는 노력도 지속했다.

강제이주 전, 대다수의 고려인은 연해주(프리모르스키)에 살았다. 러시아 동쪽 영토 중에서도 두만강을 경계로 한반도와 맞닿아 있는 16만 5900㎢에 이르는 지역이다. 한때는 발해의 영토였고, 1860년 청나라와 러시아의 베이징 조약 이후 러시아 영토가 된 땅이었다. 이 무렵부터 조선의 농민들은 경작지를 찾아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로 이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1882년 연해주에는 조선인 이주자가 1만 명을 넘어서 8천 명의 러시아인보다 더 많았다. 20세기 들어서는 당연히 항일 독립운동의 기지가 됐다. 연해주의 조선인들 수 만명이 의병운동에 참여했고, 최재형, 이범윤, 홍범도 등이 이곳을 기반으로 활동했다.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고려인은 스탈린이 죽은 1956년에야 비로소 이전의 자유를 얻었다. 1989년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스탈린의 강제이주가 ‘불법적 범죄행위’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1991년 소련이 해체되자 토착민들에 의한 고려인에 대한 차별대우가 생겨났다. 이들 중 일부는 다시 연해주로 이주했다. 현재 러시아와 옛 소련지역의 고려인은 약 50만 명이다. 이들이야말로 유라시아 중심부 지역인 중앙아시아를 한민족의 활동무대로 만든 선구적 개척자였다. 고려인이 자랑스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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