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찐 사랑 손녀의 첫 돌맞이
[해외기고] 찐 사랑 손녀의 첫 돌맞이
  • 황현숙(칼럼니스트, 호주 퀸즐랜드)
  • 승인 2022.08.29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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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지인들이나 직장 동료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화제의 인물이 자연스레 손녀 이야기로 흘러간다. 이 변화는 세월이 흐르면서 팔불출 엄마가 어느새 곱빼기 팔불출 할머니가 되었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사람 꽂(人花: 아기)은 보고 또 보아도 지겹지 않으며 사랑이 더 깊어만 간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외손녀가 예정일보다 조금 일찍 세상 속에 들어와서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았는데 어느새 첫 돌을 맞게 되었다.

첫 돌잔치는 아이의 평생을 통해서 부모에게는 잊지 못할 가장 아름다운 추억거리로 남는다. 서투른 부모 노릇을 하는 딸과 사위를 지켜보면서 나 또한 어설픈 할머니 역할에 힘이 들지만, 아기를 통해서 얻는 행복은 그 무엇에도 비길 수가 없다. 그래서 첫돌 잔치는 한국전통 방식으로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진 멋진 교자상 앞에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귀여운 손녀를 앉히고 싶었다.

한국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예전처럼 다시 한번 느끼며 할머니의 찐 사랑을 선물로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이곳은 서양문화를 접하고 사는 사회라서 할머니의 마음을 다 담아내기에는 부족할 뿐이다.

한국사회에서 돌잔치에 대한 기록이 『국조보감』과 『지봉유설』에 나오는 것을 보면 조선 시대부터 했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돌상에는 백반, 미역국, 푸른 나물, 백설기, 송편, 생실과 구이, 자반 등을 차리고, 쌀, 국수, 대추, 흰색타래실, 청홍색타래실, 붓, 먹, 벼루, 책, 활, 돈, 자 등을 상 위에 놓는다고 적혀있다. 백설기는 깨끗하고 순수한 정신을 뜻하며 세상사에 물들지 않은 한 살 아기에게 하얀 떡의 깊은 의미를 부여해준 선조들의 지혜가 더 놀랍다.

조선 시대에 돌잔치를 했던 풍습이 화원 김홍도의 ‘돌잔치’라는 그림에서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돌잔치의 가장 큰 하이라이트는 ‘돌잡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사내아이냐 여자아이냐에 따라 돌상에 올려지는 물건이 조금씩은 차이가 났다. 책, 붓, 벼루, 먹, 흰 실타래, 대추 등은 함께 오르지만, 활과 칼은 사내아이 돌상에 놓고, 바늘이나 가위 그리고 다림질하는 인두는 여자아이의 돌상에 올렸다. 사내아이가 활과 칼을 먼저 잡으면 무관이 되리라 예측하고, 여자아이가 바늘이나 가위를 먼저 잡으면 바느질 솜씨가 좋으리라 여겼으니 현대사회에서라면 패션디자이너를 꿈꿀 수 있지 않았을까. 첫돌의식은 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오복을 누리며 사회적인 출세와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음이다. 나는 손녀가 그저 튼튼하고 지혜롭게 자라주기만을 기도하고 있다.

지난 주말 오전, 웨스트엔드( West End) 지역의 강변에 자리한 올리파크에는 특별한 풍경을 담은 생일잔치가 열렸다. 덩치가 매우 큰 곰돌이 여러 마리가 다리를 쭉 뻗은 채 휴식을 취하며 나무에 기대어 앉아있는 모습은 절로 웃음이 배어 나온다. 그 옆으로는 사이사이에 작은 곰돌이 수십 마리가 마치 뛰어노는 듯이 놓여있다. 풀밭에는 각가지 색의 담요가 깔려있고 낡은 여행 가방, 그리고 청동 램프가 역시 한 자리를 장식해주고 있다. 나뭇가지들은 하얀색 작은 레이스로 연결되어서 마치 구름 조각들이 흘러가듯 인상적으로 걸려있다.

손녀의 아기 친구들, 엄마 아빠들, 친구들, 친지들, 초대받은 사람들은 손녀의 첫 돌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며 즐거움을 한껏 누린다. 한편에 놓인 긴 테이블에는 서양식의 잔칫상이 차려져 있고, 얼음으로 채운 양동이에는 다양한 음료들이 시원스레 담겨있다. 봄의 날갯짓 속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세계’로 이끌려 드는듯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따스한 햇살, 풍성한 음식이 있는 잔치에 유흥은 빠질 수가 없다. 초청한 노래진행자는 기타연주로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며 셀러브레이션을 목청껏 부른다. 호주 엄마들은 한복이 신기하듯 손녀의 조바위를 자기 아이들의 머리에 씌워보면서 즐거워하는 표정이 더 재미나게 보인다.

이런 자리에도 한국적인 풍습 하나가 빠지지 않고 짠~ 하듯이 나타난다. 딸은 자신의 결혼식 날 폐백을 드릴 정도로 한국문화를 사랑하며 호주인들에게 한국문화를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잘하고 있다. 그런 딸이 준비한 이벤트는 ‘돌잡이’였다. 돌잡이를 설명한 프린터를 큰 액자에 넣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종이 밑부분에는 컵 모양을 새겨넣고 각 컵에는 아기가 무엇을 먼저 집을지 물건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라플을 손님들에게 나눠주며 아기의 미래의 직업을 예측해보는 게임을 진행했다. 나무 밑에는 돌잡이를 위한 물건들이 상에 놓여서 오늘의 주인공이 무엇을 먼저 집을 것인지를 기다리는 모양새다.

처음 경험해보는 신기한 구경거리에 사람들은 호기심이 가득한 시선을 아기의 손으로 보낸다. 아기가 칫솔을 집어서 자기 입으로 가져가니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요란하다. “와~~ 치과의사다.”

앞날의 삶을 알 수는 없겠지만 한껏 축복받은 날에 아기의 웃음이 바람에 실려 날아가는 듯 보였다. 나무 아래에 있던 곰돌이 들은 새로운 주인의 품 안에 안겨 가며 환한 미소와 함께 첫돌 잔치를 잘 마무리해주었다.

황현숙(칼럼니스트, 호주)
황현숙(칼럼니스트,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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