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성 칼럼] 한일관계 개선, ‘신의 한수’는?
[정대성 칼럼] 한일관계 개선, ‘신의 한수’는?
  •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 승인 2022.10.11 15: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외교 참사’라는 말이 종종 매스컴을 오르내린다.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수완이 미흡하다고 성토하는 유튜버들도 있는데, 도를 지나친 모습도 있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기 한일관계는 대체로 좋았다. 그것은 주고받는 외교를 했기 때문이다. 노태우 대통령이 일본 방문할 때 일본 우익들이 떠들썩 하자, 밀사를 통해 그들에게 돈을 뿌렸다. 그랬더니 우익들이 가두선전 차에다가 “한일우호친선”, “노태우 대통령 환영”이라고 써 붙이고 다녔다. 김대중 대통령도 미국, 일본에 상당한 보은을 했다. 이로 인해 한국도 큰 이익을 얻었다.

반면,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 때는 일본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시발점이었다. 그날부로 일본의 한국에 대한 투자들이 끊겼다. 한일 정부 간의 통화스와프 조약도 깨져, 국가적 손실이 컸다. 문 대통령은 중국, 북한으로 만회하려 했지만, 한미일 관계를 경시한 행보는 무모했다. 지금 윤 대통령 시대의 한국 외교는 어떨까?

필자가 정치사상 공부를 위해 동경을 떠나 서울로 유학 가겠다고 말했을 때, 한 일본인 교수가 “한국에도 정치사상이란 것이 있느냐?”고 비아냥거린 기억이 있다. 짐작건대, 당시 한국 같은 약소국은 살아남기 바빠 아득바득 허우적거릴 뿐, 차분히 정치철학에 입각하여 전략전술을 세우고 펼쳐나갈 처지에 놓여있지 아니함을 지적한 것이리라.

그 직언도 당돌하지만, 경제나 국방 지표에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격상되었다며 이제 한국은 정치, 외교를 선진국형으로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성급하지 않나 싶다. 광복 후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돼 사상이 갈라졌고, 북한에서는 유일사상체계, 남한에서는 군사독재가 지속돼, 고질적인 모순이 생겼다.

북한은 진보진영에서 말하는 이른바 ‘지상 천국’으로 시작됐으나, 숙청의 소용돌이에 사상적 자유가 말살되었고, 소련, 러시아의 그늘을 못 벗어나는 점에서 모순을 안고 있다. 남한은 자유진영의 이른바 약육강식 사회로 시작됐으나, 한강의 기적을 거쳐 문민 시대로 전환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노벨과학상을 단 한 사람도 배출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아직 기술 수준은 미흡하다고 하겠다.

세계사는 이른바 대항해시대 제국주의 시대 신식민주의 시대로 변천해 현재에 이르렀다. 쉽게 말하면, 대항해시대는 불법으로 선주민을 살륙하여 토지, 재물을 약탈하는 만행의 시대였고, 제국주의 시대는 강대국들이 문명화, 계몽주의를 내세워 약소국을 노골적으로 침략해 지배한 시대였고, 신식민주의시대는 국제자본의 금융적 지배, 다국적 기업, 기술개발의 위계질서화 등의 방법으로 약소국을 피지배국으로 유지시키는 시대였다.

세계 과학기술사를 보면 대항해시대 때까지만 해도 한국의 과학기술이 그리 뒤쳐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선의 왕정은 유능한 과학자, 기술자들을 중용하지 않았다. 과학기술이 왕권에 도전하는 반란세력의 무력으로 쓰이는 일을 꺼려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조선왕조는 임진왜란을 겪은 후에도 과학기술 증진에 힘쓰지 않았다.

필자는 조선 실학을 한때 연구한 적이 있다. 하지만 실학은 영·정조 때 어떤 사고의 틀 안에서 활성화되었을 뿐, 당시 조선 지식인들은 여전히 북벌 따위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 시대는 서양에서는 증기선이나 기관차, 기관총 같은 새 문명을 개발해나가는 시기였다. 일본에서도 문명문화의 꽃을 피우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실력을 기르고 있었을 때였다. 그래서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당했을 때 일본보다 300년 이상은 뒤쳐졌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해방 후 한국은 중국, 소련의 공산주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한일국교정상화하여 자본주의의 쇼윈도 역할을 하는 일을 떠맡았다. 한일회담 때 배상금 문제가 논의되었는데, 일본 측에서는 ‘독립축하금’ 따위의 언사를 농하기도 했다. 즉, 식민지 통치는 뒤떨어진 조선을 문명화시킨 것이었고, 일본이 원래 언젠가는 독립시켜주겠다고 약속한 대로 한국이 독립한 것에 불과하다는 논리였다.

이에 대해 한국은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지배는 원천적으로 불법으로 이루어진 ‘강점’이었고, 그것에 대한 배상금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보상과 배상의 용어차이는 분명하다. 그런데, 한국 지식인들 가운데서도 일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보상 등의 용어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한일간의 역사 인식의 차이가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일제의 조선통치가 불법인가 합법인가, 해방 후 한국이 받아낼 돈(북한이 아직 받지 않았다)이 보상금인가, 배상금인가? 그 배경에는 식민지 수탈론과 근대화론이 도사리고 있다. 지금 여기서 수탈론과 근대화론을 논의하지 않겠다. 하지만, 세계사의 흐름에서 유독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통치만이 불법이었다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일까?

이 문제를 둘러싸고 필자의 일본 메이지 대학 대학원의 지도교수인 운노 교수와 서울대의 이태진 교수가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 이태진 교수는 식민지화 과정의 강제적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는 논지였는데, 제국주의라는 당시 시대적 배경을 감안할 때 본질적으로 일본 제국주의만을 불법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일본 제국주의의 불법성을 논증하려면, 서양제국주의 전체의 불법성을 증명해야 하는데, 서양세계는 제국주의를 합법화해놓은 상태다.

그래서 절충적인 논의로, 카지무라 히데키 교수가 일본의 조선통치는 “불법은 아니었지만 강제성이 있어 무한히 불법에 가까운 것”이라는 취지의 논리를 전개한 것으로 여겨진다. 필자 또한 그의 논지에 가깝다. 그래서 앞으로 북한이 일본에서 받을 돈의 성격은 “보상금이기도 하지만 무한히 배상금에 가까운 돈”이라고 규정해야 옳다고 본다.

1965년 한일회담에서 박정희 정부는 5억 불의 배상금과 함께 일본으로부터 기술이전을 받았다. 그 기술에는 국가기간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다양한 기술들이 포함되었고, 이는 한강의 기적으로 이어졌다. 앞으로 북한이 일본과 국교가 정상화되면 100억 불의 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일제강점기 징용공의 미지급 월급 문제가 지금 논란이 돼 있다. 국가에 대한 배상과 개인에 대한 배상이 법리적으로 다를 수 있지만, 보상, 배상의 차이, 그 판결을 내리는 재판소가 국가 기관이라는 것 등 문제가 복잡하다. 위안부 문제 또한 비슷한 이치이다.

일본 우익들은 한국이 국제조약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고 비하하고 있다. 그들의 논리도 모순 투성이다. 하지만 이를 가라앉히려면 한국 외교에 신의 한 수가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 담당관들이 필사적으로 분발해야 할 시점이다.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한신잠실코아오피스텔)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