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 다시 볼 수 없는 위챗 모멘트
[대림칼럼] 다시 볼 수 없는 위챗 모멘트
  • 류경자 중국 서남민족대학교 강사
  • 승인 2022.10.20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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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영원히 펼칠 수 없는 책 속의 어느 한 페이지처럼 도저히 확인할 수 없는 위챗 친구 한 명이 있다. 그 친구의 위챗 정보뿐 아니라, 그 친구와의 과거 대화와 모멘트도 열어볼 수 없다. 이 위챗 친구는 학부생 때 내가 논문을 지도했던 학생이다. 학부 졸업논문을 잘 써서 우수논문으로 평가받았고 성적도 좋은 관계로 추천을 받아 대학원 진학까지 했다. 무엇보다 평소에 무슨 일이든 적극이었고 항상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학생이었다. 그러나 대학원에 진학하고 1년도 지나지 않아 나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지금도 도저히 믿을 수 없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이 세상에 충격만 남겨둔 채 스스로 떠난 것이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선택에 대해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위챗 모멘트에 글을 남겼다. 그동안 우울증이 있는 자신에게 도움을 준 대학원 선생님과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한밤중이라는 시간을 선택한 이유와 옷을 꽁꽁 동여맨 원인 등 준비하는 과정을 자세히 적었다. 유언과도 같은 이 모멘트에는 지난날의 힘겨움보다는 미래의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글자 하나하나에 가득 담겨 있었다. 이 위챗 모멘트는 내 머릿속의 어느 한 공간에 박제된 채로 존재하며 그것을 떠올릴 때마다 숨을 쉴 수조차 없을 정도로 나에게는 정지된 시간으로 다가온다.

이 일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도 못했는데 내가 무척이나 아꼈던 조카가 학교에 나가지 않는다는 소식이 또 전해졌다. 이제 중학교 2학년인 조카는 그동안 말썽도 부리지 않았고 공부도 잘하는 편이었다. 그런 조카가 갑자기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소식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스마트폰 중독에 중증 우울증까지 걸렸다는 사실이다. 공부하기 싫어서 이미 한 학기 동안 학교에 나가지 않았는데 부모는 휴학 신청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대로 3학년에 가면 공부를 따라갈 수가 없어서 2학년을 다시 다녀야 그나마 고등학교 진학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규정상 특별한 이유가 없이는 휴학 신청을 할 수 없다. 건강하게 잘 사는 아이라 휴학 신청하려면 우울증 진단이 필요하다고 한다. 부모들은 그렇게 할 수 없어 한 학기의 수업을 하지 않았는데요 3학년에 그대로 보낼 예정이다. 우울증으로 기록되면 대학교 진학도 어려워지고 나중에 취직도 어려워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울증이라는 딱지가 붙으면 인생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듯 요즘은 우울증에 걸린 청소년들을 쉽게 만날 수 있으며 우울증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도 자주 들을 수 있다. 청소년 우울증은 성인들보다 간접적으로 표현되고 숨기는 경우도 많아서 발견했을 때는 이미 치료가 늦어진 경우가 많다. 이는 한편으로 우울증에 대한 부모들의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청소년 우울증의 원인으로는 부모의 관심 부족,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 친구들과의 비교 심리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현재 청소년 우울증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만큼 도시마다 심리상담센터가 많이 생겨났다. 그렇지만 심리상담센터 상담사의 자질 검증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고액의 상담비용은 사람들에게 치료는 아예 꿈도 꿀 수 없게 만든다. 현재 중국 심리상담센터의 비교적 싼 상담비용이라고 해도 시간당 20만원 정도는 하며 또 우울증은 심리상담 한 번으로 절대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어서 일반 가정에서는 부담하기도 어려운 금액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다. 흔히 사람들은 우울증을 마음의 문제로만 보고 가볍게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기분 전환을 하거나 생각을 바꾸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 생각은 우울증을 환자 본인의 잘못으로 보는 관점이다. 이러한 시선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의 상태를 더 심각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 조카 같은 경우, 친구들에게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했을 때 그들은 잘 먹고 잘살고 있으면서 무슨 우울증이냐며 믿지 않았고 비웃기까지 했다. 친구들의 불신에 그는 우울증이 더 심해졌고 결국 학교 나가기를 거부하기에 이른다.

또 하나는 위의 편견과는 정반대의 것으로, 우울증을 자살과 연결해 우울증에 걸렸던 과거가 있거나 우울증을 앓고 있는 환자를 아예 거부하는 경향이다. 이러한 경향은 취업과 같은 그들의 여러 가지 기회를 박탈해 버릴 수 있다. 이것은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자살할 위험이 있다는 인식으로 인한 우울증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어이없었던 것은 중증 우울증 진단을 받은 조카에게 담임 선생님이 우울증이 아니라는 증명을 의사에게서 받아와야 학교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아예 학교에 다니지 말라는 소리 아닌가?

지금 내가 몸 담고 있는 학교에서는 2년 전부터 담임 선생님 제도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제도의 시행에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학생들의 심리 건강에 대한 관심이다. 1대1로 가까이에서 관심을 가지고 학생들을 도와주며 우울증이 있는 학생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학생들에게 따뜻하게 다가가기 위한 것이다. 그나마 우리 학교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셈이다.

심리상담센터에 대한 홍보도 지속으로 하고 있고 심리 건강을 신체 건강과 같이 중요한 것으로 취급하며 무엇보다 여러 가지 재미있는 기획이나 행사를 통해 심리 건강을 우리 일상의 한 부분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우울증에 대해 특별한 시선을 보내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우울증을 가볍게 보는 것과 두려워하면서 거부하는 것 모두 바람직한 자세는 아닐 것이다.

필자소개
류경자 중국 서남민족대학교 강사, 연변대학교 중문과 학사·석사, 서울대학교 국문과 박사, 재한동포문학연구회 회원, 역서 『디지털기술과 신사회질서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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