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조의 맛과 멋 ㉕] ‘청강에 비 듣는 소리’와 ‘깨진 벼루의 명’
[우리 시조의 맛과 멋 ㉕] ‘청강에 비 듣는 소리’와 ‘깨진 벼루의 명’
  • 유준호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 승인 2023.01.20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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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조의 맛과 멋을 소개하고 창작을 북돋우기 위해 연재물로 소개한다. 고시조와 현대시조 각기 한편씩이다. 한국시조협회 협찬이다.[편집자주]

* 고시조

청강(淸江)에 비 듣는 소리
- 효종

청강(淸江)에 비 듣는 소리 긔 무엇이 우습관데
만산(滿山) 홍록(紅綠)이 휘두르며 웃는고야
두어라 춘풍(春風)이 몇날이리 웃을 대로 웃어라

효종(孝宗1619~1659)은 조선 후기 제17대 왕으로 이름은 호(淏), 호는 죽오(竹梧)이다. 이 시조는 ‘맑은 강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그 무엇이 우습다고 산에 가득한 꽃과 풀들이 휘두르면서 웃는구나. 두어라, 봄바람이 이제 며칠이나 남았으리. 웃고 싶은 대로 웃어라’는 뜻을 가진 작품으로 병자국치 후 소현세자와 함께 청(淸)에 볼모로 잡혀가던 봉림대군(鳳林大君)이 당시에 심경을 읊은 것으로 추정된다. 자기가 청나라에 끌려가는 것은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는 정도의 소란스러움인데 그것을 보며 온산의 꽃과 풀들이 몸을 휘두르며 비웃는다. 만산홍록은 청군의 비유이고, 춘풍은 청의 위세이다. 이것이 얼마나 가겠는가, 웃을 대로 웃어보라고 하여 청에 대한 강한 복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 현대시조

깨진 벼루의 명(銘)
- 최남선

다 부서지는 때에 혼자 성키 바랄소냐
금이야 갔을망정 벼루는 벼루로다
무른 듯 단단한 속은 알 이 알까 하노라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은 최초의 종합월간지 <소년>을 창간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했다. 1919년 기미독립선언서 기초하였으나 후에 친일의 길을 걸었다. 깨진 벼루를 보며 다 부서지는데 ‘어떻게 혼자 성키를’ 바라겠느냐, 금이 가도 ‘벼루는 벼루’라고 하며, 무른 듯 단단한 속은 알 이가 있을 것이라는 위로를 하고 있다. 이는 훗날 자신이 걸었던 친일의 길을 정확하게 예언하고 있는 듯하다. 이 친일의 길로 들어선 육당을 만해는 멀쩡하게 산 육당을 죽었다고 부고를 내고 장례를 치렀다 한다. 이 작품은 다 일제에 넘어가는데 혼자 어찌 온전하게 삶을 누리랴 지금은 친일하지만, 조선 민족의 민족성을 지니고 있다는 지식인의 지난한 삶의 여정을 표현해 보여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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