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칼럼] 미국의 나이 문화
[김재동칼럼] 미국의 나이 문화
  • 김재동(재미칼럼니스트)
  • 승인 2023.01.20 1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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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癸卯年), 설날이 코앞이다. 2022년 한 해를 무사히 넘겼으니 한 살을 더 먹은 것이다. 한국에서는 해가 바뀌면 세는 나이로 한 살 더 먹는다. 미국과는 사뭇 다르다. 미국에서의 한 살 더 먹는다는 개념은, 매년 개개인의 생일이 지나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한국에서는 엄마 자궁 안에서의 열 달을 인격체로 보기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한 살을 먹는다. 반면 미국에서는 태어나서 1년을 살아내야 비로소 나이가 한 살 더 주어진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국 나이의 개념이다. 한국에서는 그것을 만 나이라고 일컫는다. 해가 바뀌면 나이를 먹는 한국식 나이 계산법에, 미국인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한국에서도 정부나 관공서에서는 만 나이를 적용한다며, “1962년 1월 1일 송요찬 당시 내각 수반은 담화를 통해 정부 기관과 국영기업에, 만 나이 사용을 지시하고 국민에게도 협조를 당부했다.” 이후, 만 나이가 법적으로 유일한 표준이며, 세는나이는 비법정단위이지만 아직도 한국인의 일상생활에서 관습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다. 그로 인해 법적 분쟁 시 많은 혼란이 있었다. 

그러나 작년(2022) 12월 8일, 나이혼용으로 발생하는 사회적·행정적 혼선과 분쟁 해소를 위한 ‘만 나이 통일’ 민법 일부개정 법률안과 행정 기본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올(2023) 6월부터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있어 불필요한 법적 다툼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한국인의 일상에 깊이 뿌리내린 세는나이의 오래된 관습의 벽을 이번에는 뛰어넘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의 남성사회에서는 서열문화로 인해 나이에 민감하다. 남성들의 사회적 관계에 있어 나이는 무시할 수 없는 서열문화의 배경으로 작용해 왔다. 나이가 많이 차이 날 때는 서열로 정리하여 쉽게 수용할 수 있지만, 한두 살 차이에서 오히려 이 양상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한국의 남성사회에서 수직적인 서열 관계는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한국만의 나이 문화인 것이다.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 사이에서도 몇 달 먼저 세상에 나왔냐는 것으로 서열을 정하는 것이 한국 남성들의 특징이다. 남성들은 서열이 정해진 후에야 정상적인 관계가 시작된다고 보면 될 것이다. 반면 여성들은 남성들과 비교해 나이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다. 그만큼 서열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그들 그룹에서는 수직적인 서열보다는, 수평적이며 민주적이다.

나는 한국에서 청년 시절을 보냈고, 군 복무까지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래서인지 자신도 모르게 나이와 서열문화에 젖어 있었던 것 같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미국인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던 것이 생각난다. “How old are you? (몇 살이지요?)” 그러나 미국에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특히 여성들에게는 나이를 물어보는 것은 큰 실례다. 그런 문화 차이를 알게 된 것은 미국에 온 지 한참 후의 일이었다. 
  
미국에서 나이란 법적인 개념에 불과하다. 미국에서는 사교적으로나 직장 등 일상생활에서 나이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친구라는 개념도 한국하고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한국에서의 친구개념은 같은 나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좀 더 양보해서 한두 살 차이까지는 친구로 인정한다. 그 외 모든 관계는 어른과 아이, 윗사람과 아랫사람, 선배와 후배 아니면 형 동생이란 서열로 구분한다. 

반면 미국에서 친구라는 개념은 나이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미국에서의 친구는 나이로 구분 짓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친밀감으로 구분한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연륜이 깊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주위에서 나잇값을 하라는 말을 흔하게 듣는다. 나이에 값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그 나이에 걸맞은 행동을 하라는 뜻일 것이다. 오랫동안 숙성된 잘 익은 포도주처럼 은은한 향기를 발하는, 나잇값을 제대로 하는 2023년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필자소개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거주
작가, 한국문학평론과 수필과비평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와 수필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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