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올해는 재미있게 살자
[해외기고] 올해는 재미있게 살자
  • 황현숙(칼럼니스트, 호주 퀸즐랜드)
  • 승인 2023.01.27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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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밀레니엄이 시작한 이후로 어느새 23년을 더 보탠 새해를 맞이했다.

컴퓨터가 인식하지 못하는 00의 숫자 때문에 세상에 크나큰 변고가 일어날 것처럼 떠들썩했던 그 시간도 이제는 한편의 에피소드로 남겨졌다. 나는 이제 더는 새해의 특별한 소망이나 계획을 세우지 않고 담담한 마음으로 새해맞이를 하고 있다. 나이 듦과 더불어 코로나 역병이 활개 치고 다닌 지난 3년의 후유증 탓으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친듯하다.

쉼 속에서 불안의 심리를 벗어내고 정신적인 휴식과 내 시간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한 시기에 이른 것 같다. 딸의 강압적인(?) 권유에 두 달 전부터 개인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을 시작해서 그나마 다행스럽게 체력을 키우는 중이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 아닌 올빼미형 인간이라서 밤늦게까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도 하고, 넷플릭스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요즘 나의 관심을 많이 끄는 것은 유튜브의 오디오북 소설이나 미래 인문학, 문화 심리학 같은 강좌인데 참으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강사는 대학교수이며 말솜씨가 빼어나서 듣는 내내 감탄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내 손에 잡히지 않는 앞날의 은근한 걱정들, 은퇴 후의 삶, 이런저런 고민을 겪고 있는 순간에 아주 적절하고 단순한 논리를 찾았다. “맞아, 이거야, 올해는 재미있게 살자!”

문화 심리학 전문가인 김정운 교수의 재미학 특강 ‘지금, 재미있게 살고 있습니까?’를 듣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는 듯한 느낌이 왔다. 나는 그동안 노후 예견 불안증에 시달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언제부터인가 일에 대한 싫증이 서서히 다가옴을 느꼈다.

하지만 직장을 그만둔다면 다가올 공허감과 소속감이 없어지는 불안 심리로 인해서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부담감이 생기기도 했다. 몸과 마음을 푹 쉬어주며 재충전을 해야 하는 방학 기간에도 편치 않은 ‘일 중독’ 증세가 내면에 깊숙이 잠재해 있음을 새삼 인식하게 된 것이다.

김정운 교수는 20세기에는 사람들이 근면 성실하게 일만 잘하면 되었지만,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창의적이고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쁜 현대인의 생활에서 꼭 필요한 일은 휴식을 취하며 즐겁게 노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재차 강조한다.

세계적인 학자 중에는 유대인이 많은데 그들에게는 독특한 안식 문화가 있다. 그것은 노동과 휴식에 대한 철학이 머릿속 깊이 뿌리박혀 있으며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는 규칙 때문이다. 인간의 진정한 사고는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에 나온다는 주장에 머리가 절로 끄덕여진다. 우리 내면, 심리구조의 밑바닥에는 행복과 재미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가 깔려있다고 한다.

창조적인 삶은 충분한 휴식 후에 나온다고 하니, 이제부터라도 재미있게 지내면서 쇠퇴해가는 두뇌 세포에 안식을 줘야 할 듯싶다. 재미, 감탄, 창의성은 함께 간다는 강의를 들으며 “아하”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한편으로는, “내가 생각하는 재미있는 삶은 과연 어떤 것일까”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본다. 재미있는 일을 찾는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만들기보다는 한 가지씩 찾아보는 즐거움을 느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올 한해가 마무리될 무렵이면 내 마음의 양동이가 얼마나 채워져 있을는지 지금부터 벌써 궁금해진다. 재미에 보탬을 더해서 크게 소리 내어 웃을 수 있고, 작은 행복에 잠시라도 빠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을까. 그래서, 나의 재미있는 일을 어린 손녀와 함께 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 보았다.

1월의 재미있는 일 하나

나는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안데르센의 동화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디즈니의 만화영화 보는 것을 즐긴다. 만화영화의 주제가나 음악은 늘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오며 쉽사리 친숙해진다.

주말에 딸 가족과 함께 브리즈번 예술극장(Brisbane Art Theatre)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를 관람했다. 소극장의 객석은 부모들과 동반한 어린이들로 가득 채워졌었다. 이제 15개월 된 손녀가 가장 어린 관람자로 기록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녀가 세상에 나와서 나와 눈을 마주친 시간은 고작 15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아직은 어린 아기지만 음악 소리를 들으면 몸을 흔들고 리듬을 쉽게 타며 흥이 많은 태생적 음악 꾼으로 보인다. 무대 위의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 객석의 어린이와 어른들은 한목소리로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했다. 손녀가 고사리 같은 작은 두 손으로 손뼉을 치며 신나 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느끼는 재미의 맛도 쏠쏠하다.

안데르센 동화책의 원작 속에서는 인어공주가 왕자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파도에 휩쓸려 물거품이 되는 슬픈 결말을 맞는다. 이 뮤지컬에서는 왕자와 인어공주가 행복한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으로 해피엔딩을 만들어줘서 박수 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지는 듯했다.

뮤지컬 공연이 끝나고 무대 인사를 마친 배우들이 객석을 통해서 바깥으로 나가는데, 가장 어린 관람객인 손녀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환한 웃음을 날려 보냈다. 뮤지컬 공연이 주는 재미에 보태서 손녀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올해는 재미있게 살자’ 프로젝트 중에서 한가지는 해낸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

바로 이런 것이 행복이고 재미있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나는 어떤 동화책이나 소설도 행복한 결실을 보아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끝이란 말에 행복이 더 보태져서 깨어있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황현숙(칼럼니스트, 호주 퀸즐랜드)
황현숙(칼럼니스트, 호주 퀸즐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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