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금귤이 익어갑니다
[Essay Garden] 금귤이 익어갑니다
  • 최미자 재미수필가
  • 승인 2023.01.31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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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 그리고 고마움, 고국에 살고 있는 보고 싶은 지인들의 얼굴을 생각하면서 송년의 12월이 지나고 계묘년 새해를 맞이한다. 한국은 추운 날씨에 하얗게 덮인 눈 소식으로. 내가 사는 샌디에이고는 반가운 비가 간간이 대지를 적셔주어 주변 산들이 초록 빛깔이 되어 있다. 깊은 사색에 잠겨보는 1월이다. 삶은 언제나 행복하고 기쁠 수만은 없다. 뜸하면 속상한 일이 터지거나 슬픈 일도 생긴다. 보고 싶지 않아도 만나야 하는 사람도 있다.

마냥 덮어두기만 할 것이 아니라 오해를 풀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우린 숨을 쉬며 살아가야 한다. 또 운명이라며 견디어내야 한다. 참 다행스러운 것은 일 년에 단 한 번만이라도 중요한 일은 고마운 사람들을 기억해 보는 것이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상대가 알든 말든 마음만이라도 텔레파시 전파를 띄워서 보내는 일이다.

오래 전 파란 눈의 이웃들이 사는 동네로 이사를 왔을 때, 다정한 한 이웃이 내게로 다가와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머뭇거리다가 불교라고 대답했더니 근처에 베트남 절을 나에게 소개해 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친절한 이웃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당시 나는 새로운 문화와 언어에 주눅이 들어 살던 이민 초기였다. 그런 다정한 이웃에게 소소한 일들이 닥칠 때면 물어보려고 자주 찾아가곤 했다.

그 이웃이 안내했던 절 마당에는 탐스럽게 열려있던 금귤 나무가 있었다. 퍽이나 반가웠다. 영어로는 ‘금콰(kumquart)’ 한국전쟁 후인 어린 시절 어느 날, 일본에서 날아온 소포로 처음 만난 과일이었다. 일본어로 어머니는 ‘깅캉’이라고 불렀다. 소포를 받은 어머니는 추억을 설명해 주셨다. 해방 전 아버지가 만주에서 일본 은행에서 일하시며 잠시 살았는데 그때 이웃에 살던 일본 사람 부부와 잘 지낸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해방이 되자 그들은 일본으로 돌아갔고 부모님은 오빠들과 언니의 손을 잡고 며칠을 걸어서 걸어서 고향인 남쪽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그런 옛 친구인 다니꾸지 선생님이 우정의 선물로 보낸 것이다. 아마 큰 그릇으로 한 사발쯤 된 양이었다. 노란 금 빛깔의 과일 껍질은 달콤하고 안에 들어 있는 씨앗 주머니는 레몬 맛처럼 새콤달콤했다. 배가 고팠고 간식이 귀한 때이니 정말 금쪽같은 맛이어서 어찌 내 생애에 잊을 수가 있을까.

동네의 베트남 절에서 만났던 그 과일나무를 우연히 나도 수목원에서 만나자마자 사다가 뜰에 심었다. 가지를 자주 쳐서인지 내 허리 높이보다 크고 통통하게 자라고 있다. 이른 봄에 작은 별 모양 하얀 꽃에서는 진한 향기를 피우니 벌떼가 끌을 따는 잔치를 요란스럽게 벌인다. 열매는 일 년 동안 자라며 서서히 익어간다. 올해는 예상보다 빨리 곱게도 정월에 익고 있다. 요번에는 누구랑 조금씩 나누어 먹을까 생각해 본다. 해마다 드릴 곳이 많기에 늘 부족하다.

독자 여러분, 잘 달리는 토끼처럼 새해에도 가정마다, 하시는 사업마다 금귤처럼 밝은 기운으로 가득하시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필자소개
미주 한인언론 칼럼니스트로 활동
방일영문화재단 지원금 대상자(2013년) 선정돼
세 번째 수필집 ‘날아라 부겐빌리아 꽃잎아’ 발행
수필집 <날아라 부겐빌리아 꽃잎아>, <날아라 부겐빌리아Ⅱ>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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