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칼럼] 근로자의 기본권과 행복추구권
[김재동칼럼] 근로자의 기본권과 행복추구권
  • 김재동(재미칼럼니스트)
  • 승인 2023.04.10 1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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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미국이민 러시를 이루었던 70~80년대 이민 1세들의 근로 환경은 열악했다. 언어소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대부분 한인 이민자들은, 3D(더럽고 dirty, 어렵고 difficult, 위험한 dangerous) 업종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 최고 15시간까지도 감수하며 열심히 일했다. 한 사람이 두 개의(two jobs) 일자리를 갖는 것은 보통 있는 일이었다. 세 개의(three jobs) 일자리를 소화하는 사람도 있었다. 미국은 주 40시간 이상 일할 경우, 예외 없이 초과근무수당(overtime pay)을 지급한다. 힘들게 일한 만큼의 대가를 지불받았다는 것이 핵심이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투자 이민이나, 한국에서 살만한 사람들이 자녀 교육 등 더 나은 삶을 위해 떠나는 이민자가 늘었다. 그러나 70~80년대 이민자들은 오직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고국을 떠나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한인 이민자들은 직업의 귀천을 따질 여유조차 없었다. 미국인들이 기피 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밤낮없이 열심히 일해 저축한 종잣돈으로 자영업(small businesses)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당시 한인들이 운영했던 자영업 업종은 대부분 비슷했다. 그러나 지역적으로 좀 더 선호했던 업종이 있었다. 뉴욕은 청과물 도매업, 시카고는 세탁업, 엘에이는 청소업과 식당, 리커스토어, 마켓, 햄버거샵, 봉제업 등이다. 그 외 구두나 옷 수선, 페인트공, 공장, 농장 등에서 힘들게 일했다.

물론 전문직 종사자들도 적지 않았다. 이민 1세들의 이런 부지런함과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몸 돌볼 겨를도 없이 일한 덕분에, 그들의 자녀(1.5세)들은 미 주류사회에 진출해,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세 3세들은 한발 더 나아가 미국을 선도하는 인재로 부상하고 있다.

70~80년대 한국을 떠나온 유학생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비 유학생은 물론이거니와 장학금을 받고 온 학생들도 생활비는 턱없이 부족했다. 부모로부터 적지만 학비를 보조받는 학생들은 그나마 나았다. 결혼하고 가족을 동반한 유학생들도 적지 않았는데 그들의 생활은 궁핍했다. 학교 내 일자리는 물론, 식당에서 그릇 닦는 일부터 웨이터 등 일하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웠다.

내가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다. 뉴스를 주로 방송하는 KSL News 라디오, 오전 토크쇼다. 지난 3월 22일 그 쇼에서 다루어진, 여러 가지 이슈 중 ‘한국 정부의 주 69시간 근로제’란 진행자의 멘트가 내 주의를 끌어당겼다. 최근 한국 정부에서 발표한 ‘주 69시간 근로제 개편안’이, 미국의 지방방송국 라디오 토크쇼에서 토론주제로 채택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주 40시간 근로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정규직(full-time) 적용 범위는 주 최저 35시간이다. 기본적으로 누구나 주 35시간 이상을 일하면 정규직으로 간주하여 근로자가 정부나 사주로부터 보험 등 여러 가지 혜택(benefit)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대한민국 정부가 내놓은 ‘주 69시간 근로제 개편안’은 미국 사회에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슈인 것이다.

한국 정부가 발표한 ‘주 69시간 근로제 개편안’에 대한 청취자의 의견을 들었다. 그들은 21세기 선진한국, 경제 규모 세계 10위인 나라에서 시도하고 있는, 거꾸로 가는 행정에 대해 일침을 놓았다. 근로자의 건강문제,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 부족, 여가생활의 박탈을 들었다. 그중 또 다른 청취자의 의견은, 과거 열심히 일한 한국인들의 근로 위에, 지금의 선진 대한민국을 세울 수 있지 않았냐는 것이었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마지막 의견을 낸 청취자는 미국과 한국의 근로기준법이 이 나라의 노동법, 근로 환경이 다르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주 69시간을 일하더라도 개인의 선택에 맡긴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개인이 자유의지로 선택하는 것과 국가가 정책으로 국민의 생존과 기본권을, 보상 없이 박탈하는 것은 다르다. 현재 시행 중인 주 52시간 근로제도 잘 지켜지지 않는 마당에 69시간 근로제 개편안이 받아들여질 리 만무하다. 여론은 오히려 주 4일 근무제를 말하고 있다.

‘주 69시간 근로제 개편안’을 대책 없이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미국처럼 ‘주 40시간 이상 일하면 초과근무수당(overtime pay) 지급’ 법제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는 듣지 않고, “일이 많을 때 몰아서 하고, 일이 없을 때 몰아서(장기) 휴가를 쓴다”고 말하는 한국 정부의 탁상공론(卓上空論)적 발상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일할 때는 몰아서 한다 치자, 쉴 때 과연 몰아서 쉴 수 있게 될까? 공무원과 대기업 사원, 건설노동자와 배달노동자, 택시기사와 서비스업계종사자는 물론, 있는 휴가도 못 쓰는 실정인 중소기업에, 과연 장기휴가를 강제할 수 있을까? 국민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기본권, 그것을 보장받을 수 있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근로시간 개편안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필자소개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거주
작가, 한국문학평론과 수필과비평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와 수필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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