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희의 음악여행 ㊹] 파란만장한 사랑의 주인공, 그러나 딸을 사랑한 낭만파의 거장 드뷔시
[홍미희의 음악여행 ㊹] 파란만장한 사랑의 주인공, 그러나 딸을 사랑한 낭만파의 거장 드뷔시
  • 홍미희 기자
  • 승인 2023.04.17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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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사진=위키피디아]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 중의 하나는 프랑스 파리다. 파리는 음악보다는 건축과 미술의 도시다. 베르사이유 궁전과 세잔의 정원, 그리고 마티스, 루브르 박물관 등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이 넘쳐난다. 이 프랑스를 대표하는 음악가는 드뷔시다. 그래서인지 드뷔시의 음악은 눈에 보이는 듯한 인상을 묘사하고 있으며 인상파 음악가로 불린다.

그러나 드뷔시를 단지 인상파 음악가로만 한정 짓는다면 오산이다. 21세기 근대음악 작곡가 중 가장 위대한 사람을 한 명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드뷔시를 꼽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드뷔시의 음악은 어렵다. 기존 고전파, 낭만파음악은 수직적이고 딱 떨어지는 화음을 사용하여 듣기가 편안하지만 드뷔시의 음악은 음계와 화음이 모호하게 부서지는 과정에 있어 반음과 익숙하지 않은 음계를 사용하고 있다.

드뷔시는 천재였다. 11살에 파리의 국립음악원에 입학하여 12살에는 쇼팽의 피아노곡을 연주했으며 작곡 시간에는 규칙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마음대로 화성을 사용했다. 그러나 로마대상 즉 당시 최고의 콩쿨에 나갈 때는 그렇게 하면 상을 못 받는다고 하자 당장 심사위원들이 원하는 스타일의 곡을 써서 로마대상을 받았다.

그뿐일까? 파리 세계박람회에서 만난 자바 음악에서 영향을 받아 달빛으로 유명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을 작곡했고, 일본의 판화에서는 교향시 바다를 작곡했다. 당시 최고 인기였던 바그너는 무시했으며 로마에서 만난 그레고리안찬트로부터는 오히려 음계가 모호해지는 영향을 받기도 했다. 드뷔시는 격동하는 19세기 말 넘쳐나는 문화의 모든 것을 그대로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낭만음악은 형식을 우선했던 고전음악에 비해 인간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그것을 음으로 나타내는 특징을 갖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음악가들의 연애사를 보면 그들의 음악과 많이 닮아 있음을 느낀다. 형식과 질서가 우선이었던 시기의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은 참으로 성실한 가장이었고 독신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에 솔직한 낭만주의 음악가들의 연애사는 감정에 너무나 충실했던 것 같다. 장총을 들고 기차에 올라타서 복수를 시도하기도 하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연상의 여인을 짝사랑하여 드디어 결혼에 성공했던 베를리오즈, 친구의 부인을 사랑하여 도피했던 푸치니, 스승의 미성년 딸을 사랑하여 성년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결혼한 슈만, 리스트의 딸과 결혼한 바그너. 이들의 이야기는 어느 소설보다도 더 비현실적이다.

드뷔시의 첫 번째 사랑은 18살이었던 당시 돈 많은 건축가의 아내이자 성악가였던 마리 블랑쉬 바니에였다. 이들의 관계는 드뷔시가 로마대상에 입상하여 로마로 유학을 가게 되면서 끝이 났다. 이후 25살에 만난 가브리엘 뒤퐁과는 10여 년을 같이 살았고 헌신적으로 그를 내조했던 그녀에게 ‘목신의 오후 전주곡’을 헌정했다. 이후 32살에 뒤퐁과 같이 살던 와중에 만난 테레즈 로제와는 약혼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뒤퐁의 존재를 알게 된 로제는 파혼을 선언했고 뒤퐁은 다시 그를 받아들였다. 그 후 다른 여성에게 또 청혼하자 견딜 수 없게 된 뒤퐁은 1897년 드뷔시가 35살이 되던 해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한다. 그런데도 드뷔시는 뒤퐁의 친구인 릴리와 사랑에 빠져 드디어 결혼한다. 그의 여성 편력이 여기서 끝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결혼한 그에게 또다시 사랑이 찾아온다. 은행가의 부인인 엠마 바르닥이었다.

둘은 각자 배우자를 피해 외국으로 사랑의 도피를 했다. 이에 드뷔시의 부인인 릴리는 자살을 시도했고 두 사람은 사회적으로 고립된다. 이후 이들은 각자 배우자와 이혼소송을 벌였고 그 시기에 딸인 클로드 엠마(슈슈)가 태어났다. 슈슈가 3살 때인 1908년에서야 이들은 부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결혼한 지 1년 만에 드뷔시는 직장암 진단을 받았고 투병하다가 9년 후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딸인 슈슈도 2년 뒤 1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엠마 드뷔시
엠마 드뷔시

그러나 파란만장한 사랑의 주인공이었던 드뷔시 역시 한 아버지였다. 그는 공식적인 부부가 된 1908년 딸인 슈슈를 위해서 6개의 피아노 모음곡을 작곡했다. 슈슈는 당시 영국인 유모가 길러서 프랑스말보다 영어가 더 익숙했다. 그래서 제목 역시 프랑스어가 아닌 Children's Corner(어린이 차지, 세계)로 붙였다. 이 곡들은 귀엽고 짧고 재미있어서 연주를 많이 하는 곡이기도 하다.

제1곡은 ‘파르나스 산에 오르는 그라두스 박사’(Doctor Gradus ad Parnassum)이다. 파르나스 산은 그리스에 있는 산으로 신들이 사는 신성한 장소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오이디푸스왕의 신탁이 이뤄진 델피의 신탁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이 곡은 이 성스러운 산을 올라가는 그라두스 박사를 피아노 연습을 하느라 지루한 어린이의 모습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하긴 피아노라는 악기는 결국 연습으로 극복해야 하는 큰 산임에 틀림없다.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드뷔시가 이렇게 연습을 계속해야 하는 어린이들을 박사라고 부르는 것에서 위트와 해학이 느껴진다.

드뷔시와 슈슈

제2곡 ‘짐보의 자장가’(Jimbo's Lullaby)는 파리의 식물원에 살았던 코끼리 짐보를 묘사한 것이다. 제3곡은 ‘인형의 세레나데’(Serenade of the Doll)이다. 동양의 도자기 인형을 묘사한 것으로 5음 음계와 중국 도자기 느낌의 스타카토를 사용했다. 곡 전체가 소프트 페달을 밟아 조용하면서도 맹맹한 소리를 낸다. 다음은 내가 좋아하는 제4곡 ‘눈은 춤춘다’(The Snow is Dancing)이다. 일반적으로 오른손은 멜로디 왼손은 반주나 화음 이런 공식을 떠올리지만, 이 곡은 양손을 서로 다르게 연주해야 한다. 제5곡은 ‘작은 양치기’(The Little Shepherd)이다.

그리고 마지막 가장 유명한 곡인 제6곡은 ‘골리워그의 케이크워크’(Golliwogg's Cakewalk)이다. 골리워그는 검은 피부에 빨간 바지, 빨간 넥타이에 까만 머리카락을 가진 인형이다. 아마도 슈슈가 좋아했던 인형일 듯하다. 케이크워크는 한마디로 케이크를 들고 워킹하는 춤이다.

이는 19세기 말 미국 남부 흑인 노예 사이에서 최대한 과장된 걸음걸이를 춤으로 묘사한 사람에게 우승상품으로 케이크를 줬던 것에서 유래한다. 음악 역시 과장되고 불안한 리듬이 계속 이어지는데, 그렇지 않아도 우스운 골리워그가 절뚝거리면서 이상하게 춤추는 모습을 묘사했으니 슈슈는 무척 즐거워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마음을 느낀다. 내 자식은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소중하고 또 소중하다는 것, 이는 이 곡을 작곡한 바람둥이 드뷔시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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