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고승덕의 돈 봉투
[시론] 고승덕의 돈 봉투
  • 전대열<대기자>
  • 승인 2012.01.17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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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속에 호랑이가 들어있는 게 아니다”라는 속된 말이 흘러 다닌다. 발톱이 날카롭고 이빨이 억센 호랑이가 무섭다는 것을 아는 인간이 주머니 속에 호랑이를 넣고 다닐 이치가 없다. 호랑이가 들어있지 않으니 안심하고 안 포켓 깊숙한 곳에도 넣고, 돈 지갑에도 가득 넣고 다닌다.

심지어 알 몸통 채로 주머니에 쑤셔 넣고 다니기도 한다. 장사해서 번 돈, 열심히 일해서 일당으로 받은 돈, 한 달 내내 맡은바 직분을 다하고 월급으로 수령한 돈이라면 쓸 때에도 신중하게 될 것은 당연하다.

행여 쓰지 않아도 될 곳에 돈을 쓰는 것이 아닌지 미리 따져보기도 하고, 써야 할 곳이라면 아낌없이 내놓는다. 점차 기부문화가 발달하면서 적은 돈이나마 나눴을 때의 기쁨을 함께 누리기도 한다. 이렇게 쓰이는 돈은 참으로 위대하다.

나를 위해서 쓰는 돈도 꼭 필요한 곳이라면 아낌없이 써야 되겠지만 내가 쓸 돈을 아껴 모아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기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통계적으로 보면 기부를 하는 사람의 대다수는 평균 이하의 수입 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물론 액수로 얘기하는 게 아니다. 기부자의 숫자를 분석한 것이다. 큰돈을 기부할 수 있는 사람은 큰 기업을 경영하는 재벌뿐이다. 그들 역시 열심히 사업을 경영하여 큰돈을 모았다. 이를 사회에 환원하는 일은 선진국에서는 흔하지만 한국은 드물었다.

빌게이츠나 버핏 같은 사람들이 존경을 받는 것은 많이 벌고 많이 내놓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과거에 기부문화가 별로였다. 경주의 최부자나 제주도의 김만덕은 흉년에 엄청난 쌀을 내놔 빈민을 먹였다. 당시 부를 거머쥔 양반지주들은 대부분 자손만대 자기가문만 잘 살면 그만이었다.

빈민 구휼(救恤)은 관심 밖이었다. 일제의 압박에 못 이겨 제2차 세계대전에 동원될 비행기 헌납을 강요당했던 당시의 재산가들이 오늘날 친일의 굴레를 쓰게 된 것은 자업자득일지 모른다.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 많은 돈을 풀었더라면 비행기를 헌납하지 않아도 될 핑계가 되었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풀이하다보면 돈을 좋은 곳에 쓰는 재주도 타고나야 되는 지도 모른다. 가수 김장훈 같은 이가 버는 족족 기부하는 통에 지금도 월세를 면하지 못하고 산다는 얘기는 그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게 한다. 운동선수로서 많은 돈을 만지게 된 스타선수들의 기부도 사회적으로 칭송의 대상이다.

평생 빈대떡을 팔아 살던 할머니들이 선뜻 대학에 기부하는 등 빈자일등(貧者一燈)을 실천하는 모습이 하나의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대학이 발전해야 된다는 신념을 몸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기부다.

구세군 모금함에 1억이 넘는 돈을 남몰래 넣는 분, 연말만 되면 전주시내의 동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몰래 놔둔 돈 봉투의 행방을 알리는 분들은 참으로 복 받을 분들이다. 왼 손이 한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실천한다는 것은 말이 쉽지 입이 간지러워서 자랑하느라 바쁠 사람이 많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좋은 곳에 쓰여야 할 돈이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악마로 변할 줄이야 누가 알았으리요. 고승덕의 돈 봉투다. 그가 폭로한 돈 봉투는 3년전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출마했던 박희태로부터 받았다는 내용이다.

이 폭로는 급기야 진상을 둘러싸고 검찰수사로 넘어갔고 고구마 줄기 따라 올라오듯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어 어디가 종점이 될 것인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전당대회에서 돈 봉투가 돌아다니는 것은 ‘관행’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선뜻 앞에 나설 수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 추문에서 벗어날 장사는 없기 때문이다. 역대 전 현직 대통령을 비롯하여 여야 당대표, 경선을 겪은 모든 당직자들이 이에 해당한다. 다 알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다. 자칫 쭈뼛거리고 나섰다가 어느 코에 걸릴지 모른다. 몸조심이 최고다. 야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고승덕처럼 체면을 무릅쓰고 폭로하는 사람이 없다보니 결국 시민단체의 고발로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당사자의 폭로와 제삼자의 고발에는 큰 차이가 있어 결과는 미지수다. 고승덕이도 전당대회 당시에 폭로했어야 정치정화에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 뒤늦게 정치적 변혁기에 나선 것은 어떤 복심이 따로 있지 않나 의심받기도 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 하는 것은 박근혜의 비대위가 치러야 할 최대복병이다. 민주당도 벗어나기 힘든 돈 봉투 관행은 이번 기회에 뿌리 뽑아야 한다. 하기야 돈 봉투로 인정이 오고가는 일이 어찌 전당대회뿐이랴. 사회 곳곳에서 이런 사례는 흔하고 흔하다.

당선 사례금, 전별금, 인사 청탁, 선거조직 동원, 명절 선물, 선거법 저촉이 안 되는 출판기념회 모금 등등 합법을 가장한 수많은 돈 봉투가 지금 이 시간에도 오고간다. 돈 봉투는 정치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정치가 망가지면 나라도 거덜 난다.

자명한 이치를 알면서도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어물어물 넘어가려한다면 부패와 부정은 영원히 막을 수 없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제도적으로 이를 방지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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