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논개의 영혼결혼설을 누가 퍼뜨리나
[시론] 논개의 영혼결혼설을 누가 퍼뜨리나
  • 전대열<大記者>
  • 승인 2012.01.21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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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우(畏友) 고영준변호사가 새해 들어 여행사 하나투어에서 시행하는 ‘내나라 여행’을 다녀왔다. 1월6일부터 9일까지 3박4일 서부코스다. 그가 진주 남강에서 가이드로부터 들었다는 논개 얘기가 아무래도 심상찮다.

논개는 임진왜란 때 왜장 게아무라 로구스케를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의로운 정절을 남긴 기생이었지만 나라에서도 이를 기려 사당을 지어주고 매년 그 충혼을 위로했다. 왜장의 이름이 게다니라는 말도 있지만 이제 와서 밝혀봐야 무슨 소용이 있으랴.

금년은 임진왜란 420년째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렀다고 하더라도 왜적이 끼친 악행의 흔적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있다. 그런데 여행사 가이드는 논개와 함께 죽은 왜장의 후손들이 진주를 찾아와 두 사람의 영혼 결혼을 제의했고 이를 진주시청 측에서 수락했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남강에서 두 사람의 혼백을 건져내는 의식을 갖춘 후 혼백을 일본으로 가져가 사당을 짓고 부부로 모시고 있다는 그럴듯한 얘기를 했다. 고영준으로부터 이를 전해들은 필자는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느냐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취재하기로 마음먹었다.

맨 처음 4.19혁명공로자인 진주출신 박영식을 만나 이를 물었더니 펄쩍 뛰며 즉석에서 진주시의회 부의장을 지낸 이경표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관계를 물어본다. 이경표 역시 그런 사실이 없다고 확언했다. 나는 진주시청 문화관광과에 직접 문의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근래의 정보를 얻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직원 고홍순도 부인하면서 정대규 계장을 바꾼다. 계장도 금시초문이라고 하면서 ‘논개 담당’을 바꿔주겠다고 한다.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진주의 자랑인 논개를 위해서 담당자까지 두고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는 기실 문화재 담당이다. 매년 논개 행사를 주관하는 담당자이기에 오히려 논개담당으로 불리는지도 모른다. 그의 이름은 강병주다. 역시 논개담당은 다른 이들과 다르다.

그에게서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고 여행사 안내원의 얘기가 아주 황당한 거짓말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주(晉州)에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성계옥(成桂玉)이라는 분이 살고 있었다. ‘27년생이니까 생존하고 있다면 85세다. 3년전 작고했다. 20여년전 그에게 일본 사람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강병주는 그들이 논개가 껴안고 죽은 왜장의 후손인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로구스케설과 게다니설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아무튼 그들이 성계옥에게 두 사람의 영혼 결혼을 제의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이 사실을 얘기하면서 진주시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순전히 민간 차원에서 이뤄졌던 일임을 거듭 주장했다. 일본인들은 절에 혼백을 안치하고 제사를 모신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 후 휘지부지 되어 뒤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정도로 취재를 끝내기로 했지만 여행사 가이드가 불필요한 안내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진주는 임진왜란으로 물밀듯 쳐들어온 왜적 2만여명에게 포위되어 군사 3800명으로 6일간 처절한 저항 끝에 이를 물리친 고장이다. 이를 진주대첩이라고 부르는데 부사 김시민의 공이 컸다.

왜적은 진주성을 빼앗지 못하고 북으로 올라갔다가 1년후 12만의 대군으로 재침한다. 이 때 의병대장 김천일, 병사 최경희, 수성장 황진 등은 민군이 한 몸이 되어 처절하게 저항한다. 왜적이 토성을 쌓으면 안에서도 토성으로 맞서는 등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싸웠다. 그러나 결국 성은 함락된다.

기생의 몸이었던 논개는 왜적에게 잡혀 승전의 술자리에 끌려간다. 논개는 이 자리에 나가기 전에 시 한 수를 남긴다. “구차하게 살자하니, 더러운 욕 어이하리, 이미 죽을 작정이면, 왜적 칼에 왜 죽으리.” 논개는 굳은 결심을 하고 왜장에게 접근했다.

술에 취한 왜장은 논개의 눈웃음에 끌려 남강 너럭바위까지 따라가 춤을 춘다. 논개는 이미 손가락마다 가락지를 끼고 그를 넌지시 껴안는다. 아리따운 논개의 적극적인 공세에 넋이 나간 왜장은 바위 끝까지 따라간다. 이 순간 논개는 그를 끌어안은 채 남강에 뛰어든다. 전투에서 패한 의병대장과 병사 그리고 수성장이 투신했던 남강에서 논개는 거룩한 충절여인으로 거듭 태어난다.

전라도 장수에서 태어나 원래 주(朱)씨 성을 가진 논개의 생애는 이렇게 끝났다. 그렇지만 그는 영원히 살아남았다. 자기 한 몸 바쳐 못다 핀 세상을 마쳤지만 우리 민족의 영원한 꽃으로 피어났다. 어느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굳센 민족의 의지를 보여준 논개에게 40여년이 흐른 이 시점에 왜장과의 영혼결혼설을 퍼뜨리는 여행사의 무책임한 안내는 즉시 철회되어야 한다.

이런 얘기 자체가 우리의 수치라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논개의 숭고한 정신을 폄훼하는 후손들이 너무나 부끄럽다. 더구나 유수한 대여행사가 이런 사실을 확인조차 하지 않고 퍼뜨렸다는 것은 너무도 책임 없는 행동이다. 진주시에서도 다시는 이런 부끄러운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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