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배 북한산책-①] 주체사상은 ‘도깨비 방망이’ 통치도구
[김명배 북한산책-①] 주체사상은 ‘도깨비 방망이’ 통치도구
  • 김명배(호서대학교 초빙교수, 전 주 브라질 대사)
  • 승인 2012.01.25 09: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는 일생을 직업외교관으로 살았다. 외교통상부에서 정보과장, 제3심의관, 주러 대사관 정무공사 등 대체로 북한정세를 비롯한 정세분석을 위주로 하는 부서에 근무한 편이다. 특히 1993.10월부터 2년 간 주 러시아 대사관의 정무공사로 일하면서 러시아 외무성과 과거 소련 공산당의 북한문제 전문가들을 자주 만나 북한 정세에 관한 의견을 들을 기회를 가졌다.

그들은 대부분 김일성대학 조선어학부 출신으로서 우리말을 모국어처럼 구사 하고 평양에 통산 10여 년 이상 근무하면서 북한사정에 정통한 직업외교관이거나 당료 출신 들이었다.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나에게 강조한 것은 주체사상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수령 독재체제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북한정세에 관한 객관적 분석이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 나는 2003.7월 은퇴 후 지금까지 대학 강단에서 북한정세에 관해 강의해 오고 있지만 강의를 거듭할수록 그들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세상만사에는 명분과 실리가 있다. 주체사상 역시 마찬가지다. 주체사상은 “운명의 주인은 자신이다. 고로 운명을 개척하는 힘도 자신으로부터 나온다. 마찬가지로 혁명의 주체는 인민이다. 고로 혁명을 추동 하는 힘도 인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얼핏 보아 인간과 인민의 자주성과 창의성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이는 상당 부분 명분(justification)에 불과하고 기실은 사대주의 배격의 명분을 빌어 친소파, 연안파, 남로당 등 정적을 숙청하고 갑산파를 주축으로 한 김일성 독재체제를 확립하고, 중·소 분쟁을 이용하여 중·소로부터 경쟁적으로 원조를 받아 경제성장을 도모하고, 나아가 남한정부의 대미 종속성과 북한 정권의 자주성을 부각시켜 북한정권에 의한 남조선 적화통일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것이 북한당국이 주체사상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실리(real object)라 할 수 있다.

수령 독재체제에서는 주체사상의 해석권이 전적으로 수령에게 달려 있으므로 ‘귀에 걸면 귀 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모든 문제의 해결방안이 주체사상에 용해되어 있는 식이다. 주체사상이야말로 ‘도깨비 방망이’인 것이다. 수령이 자기 멋대로 통치하기에 더 이상 편리할 수 없는 통치 도구라 할 수 있다.

주체사상은 60년대 말 김정일 후계체제의 등장에 앞서 후계체제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이른바 ‘유일영도사상’으로 변질되었다. 주체사상이라 하면 통상 유일영도체제를 의미하며 수령론, 사회정치적 생명체론, 후계자론 세 가지 이론으로 구성된다. 수령론과 사회정치적 생명론, 후계자론이다.

수령론은 “혁명의 주체는 인민이지만 수령 없는 인민은 무의식적, 비조직적 군중에 불과하므로 혁명과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수령의 완전무결한 지시에 무조건 복종하는 사회, 수령을 정점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전일화된 사회를 구축해야한다”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인민의 ‘주체적 능동성’을 강조하는 주체사상이 인민의 ‘비주체적 피동성’을 강조하는 유일영도체제로 전락하게 된다.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은 “육체적 삶을 추구하는 인간의 자연적 생명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지만, 혁명을 추구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은 수령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자연적 생명은 육체의 죽음으로 끝나지만 사회정치적 생명은 혁명과 더불어 영원 불멸한 것이다” “인간의 모든 지체가 두뇌의 지휘, 통제에 무의식적, 무 조건적으로 따름으로써 하나의 육체가 전체로서 유기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민 역시 수령의 완전무결한 지도, 교시에 무의식적, 무조건적으로 복종함으로써 인민 전체로서 혁명과업을 완수할 수 있다”라고 요약 할 수 있다.

따라서 수령 독재체제 아래서 모든 인민은 수령에 대한 충성, 효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믿고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로 뭉쳐 수령과 혁명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치는 ‘주체형 공산주의자’로, 특히 선군정치 아래서 모든 인민은 수령을 위해 탄환과 포탄이 되는 ‘선군 형 공산주의자’로 인간개조를 하기 위해 종교적 신앙화 수준에 이르기 까지 철통같이 이념화, 사상화 교양사업을 전개한다.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은 기독교 교리와 매우 흡사하다. 그것은 김일성 주석의 부친 김형직 장노가 기독교 계통 평양 숭실 학교를 나와 역시 기독교 계통의 재령 명신 학교에서 교사로 봉직했고, 김일성의 모친이 강반석 권사이며, 외할아버지가 강돈욱 장노이고, 작은 외할아버지 강양욱은 목사이고, 김일성 자신이 10대 후반 연변 시절 우리나라 초대 해군참모총장을 지낸 손원일 제독의 부친 손정도 목사가 시무하던 길림 교회에서 주일학교 반사와 교회의 올간이스트로 봉사했을 정도로 김일성 집안이 골수 기독교 집안인 사실과 결코 무관치 않을 것이다.(김 주석의 부친 김형직 장로와 친구지간인 손 목사는 김 주석을 친 자식처럼 아꼈으며, 김 주석이 지린감옥에서 7개월 옥고를 치를 때 옥바라지를 했으며, 손 제독과 김 주석은 형제지정을 나눈 것으로 알려짐. 김 주석은 그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손정도 목사를 ‘생명의 은인’으로 표현할 정도로 극진히 흠모했던 것으로 알려짐)

1994년 초 지미 카터 대통령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과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의 에피소드가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카터 대통령은 김 주석이 골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김 주석이 민망해 할 까봐 자신도 기도를 하지 않고 식사를 하려던 차에 김 주석이 “대통령 각하 저를 위해 식사기도를 해 주십시오”라고 말해서 카터 대통령이 적지 않게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김 주석의 신앙 유무를 떠나 참으로 노회한 지도자의 면모를 엿 볼 수 있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한신잠실코아오피스텔)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