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판사회의가 노조 비슷해서야
[시론] 판사회의가 노조 비슷해서야
  • 전대열<大記者>
  • 승인 2012.02.21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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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라는 직책은 인류가 공동사회를 이루면서부터 없어서는 안 될 자리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섞여 살다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분란과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다.

감정이 복 바쳐 서로 치고 패는 최악의 경우도 있으며, 금전거래를 하다가 주고받은 일이 틀어지는 수도 있다. 이런 복잡다기한 문제점들을 전후사정 모두를 검토하고 쌍방의 주장을 들어 적절한 조정안을 내놓는 게 판사의 임무다. 행정 입법 사법의 삼권분립제도가 시행된 것은 근대에 와서야 확립되었다.

그 전에는 임금 혼자서 삼권을 거머쥐고 독단적 권력을 행사했다. 한 때 종교의 수장(首長)으로부터 인정받은 임금만이 왕권을 행사할 수 있던 때도 있었지만 군대를 가지고 있는 왕권이 종교계의 힘을 밀어내고 독보적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이후에는 변함이 없다.

왕에 의해서 임명된 수많은 지방수령들 역시 자기 관할지역에서는 왕과 비슷한 독재적 권력을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었다. 현대는 국가를 다스리기 위해서 많은 법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법의 올가미를 씌어 놓으면 어느 누구도 항변 무용(無用)이다.

법에 정해진 대로 집행했다는데 무슨 잔소리냐다. 법의 집행은 행정부와 사법부에 의해서 시행된다. 그러나 법을 만드는 주체는 국민의 위임을 받은 국회다. 그들은 국민의 대변자라는 이름으로 국회 발언에 대한 치외법권, 회기중 불체포 특권 등 상당한 특권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만 보면 삼권 중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게 국회의원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산집행권 등 국가운용의 대강을 손에 쥔 행정권의 무소불위는 타를 압도한다. 군대와 경찰 그리고 검찰을 장악한 행정부는 어마어마한 권력의 핵심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당한 권력행사나 뇌물수수 등의 범죄를 저지르면 강력한 법의 응징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검찰은 행정부에 속하면서도 사법부와 쌍두마차로 운영된다. 검찰의 소환장을 받은 입법부나 행정부의 요인들은 사시나무 떨듯 공포감에 휩싸인다.

이들에게 최종적인 형벌을 내리는 곳이 법원이다. 천하권력을 쥐고 있다고 해도 범법으로 한번 재판에 넘겨지면 속절없이 판사의 눈치만 본다. 판사는 권력 장악에서는 가장 약한 존재 같아도 현직에 있는 한 막강한 권력이다.

판사 중에도 죄를 짓는 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드물지만 뇌물죄를 뒤집어쓰기도 하고 직권으로 친구나 친지에게 경제적 큰 이익을 줬다가 검찰에 소추된 광주의 향판(鄕判)도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내려진 형벌은 완전히 솜방망이다. 그래도 그들은 큰 불만을 표시했다.

전관예우를 극진히 하면서도 왜 현관(現官)예우로 무죄 방면을 하지 않느냐 하는 태도로 보여 국민들만 씁쓰레하다. 과문의 탓인지 몰라도 현직판사가 감옥에 보내졌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만 보면 삼권의 어느 누구도 현직판사보다는 못하다.

아무리 국회에서 신중하게 법을 만들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행정권을 행사했다고 해도 일조유사시(一朝有事時) 최종적인 판단은 판사의 독점적 권한이다. 솔로몬의 재판이나, 세익스피어의 극본에 나오는 샤일록 재판은 명 판결로 인구에 회자된다.

황희정승의 두루뭉술 판단도 오래오래 기억되며 자유당 시절 여성농락의 대명사가 된 박인수 사건에 대한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정조만을 법에서는 보장한다.”는 판결도 한 때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면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이처럼 판사도 한 인간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가장 인간적인 방법을 가미하여 판단했을 때 역사에 빛난다.

군사독재 시절 판사들은 검사가 쓴 공소장을 그대로 베끼는 판결문을 내놓는 치욕스런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필자가 긴급조치와 내란음모사건으로 모진 고문 끝에 장기복역을 할 수밖에 없었던 판결문을 지금도 보관하고 있지만 어처구니없게도 공소장=판결문이다.

판결문으로만 말한다는 판사가 자신의 소신은 젖혀두고 검사의 공소장을 베꼈다면 이는 마땅히 무효로 선언되어야 한다. 세상이 좋아진 요즘에도 뇌물을 준 곽노현은 벌금형이고, 받은 박명기는 3년 징역이라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옳을까.

때마침 서기호판사의 재임용 탈락을 계기로 여기저기서 판사회의라는 게 열린다. 재임용 탈락이라는 불이익 앞에 노출된 자신들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서 모이는 것으로 보인다. 판사회의는 직제(職制)에 있는 모임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모임이 사회적 주목을 받는 것은 시점의 미묘함에 있다. 어떤 조직이든지 불이익에 대항하는 집단행동은 비이성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많다. 최고의 이성(理性)을 중대시해야 하는 판사들의 집단 모임이 마치 노동조합의 행태처럼 보여서야 되겠는가.

서기호 문제는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지만 돌출 이슈에 대한 여과(濾過)가 쉽지만은 않다. 법원 지도부는 판사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정당한 의견표출은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들의 행동이 상시화(常時化)하지 않도록 각별한 관심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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