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파파라치 포상금제 철폐해야
[시론] 파파라치 포상금제 철폐해야
  • 전대열<大記者>
  • 승인 2012.02.27 0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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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가 이혼 후 드라이브 데이트를 추적하는 사진기자를 피하기 위해서 고속으로 달리다가 전복사고로 숨진 지도 어느덧 잊어버린 세월이 되었다.

유명인사의 스캔들을 들춰내거나 야릇한 사생활을 몰래 카메라로 포착하여 이를 공표하는 파파라치의 존재는 아마도 특종을 노리는 신문사 사진기자의 창안이었을 것이다. 이들이 공개석상에서 저명인사의 다양한 포즈를 사진으로 남기는 것은 직업 본연의 업무다.

앙숙으로 알려진 사람들이 다정하게 악수하는 사진도 독자의 눈요기 감이다.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으르렁대던 외국의 정상들이 공개석상에서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격렬하게 포옹하는 제스처는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뉴스가 된다.

또 그렇게 다정할 수 없었던 동지들이 어떤 이슈를 놓고 대립하는 입장을 보였을 때 우연히 마주치면 벌레 씹은 얼굴로 웃지도 않고 외면하는 장면도 셔터 한 방에 많은 독자를 즐겁게 하는 훌륭한 기사가 된다. 읽는 신문에서 보는 신문으로 탈바꿈한 진일보한 사진기사다. 사진기자들은 이런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대통령이나 장관 등 독자의 흥미를 돋울 만한 유명인사의 사생활은 흥미만점이다. 더구나 유명 배우나 운동선수 등 사회의 각광을 받고 있는 인물은 누구나 그들의 취재대상이 된다. 카메라의 기능도 날로 발전하여 근거리에서만 촬영하는 게 아니라 원거리 촬영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렌즈가 발명되었다.

이들이 피사(被寫)대상으로 삼는 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아무리 사소한 행동이라도 카메라 렌즈에 잡히는 순간 빠져 나갈 수 없는 함정이 된다. 국회의원들이 회의 도중 무심코 낙서를 하거나,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는 것까지도 잡아낸다.

그 내용 여하에 따라 큰 파문이 되기도 한다. 이로 인하여 자신의 중대한 실책이 만천하에 공개되어 정치적 타격을 입는 일도 생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맨은 마음 놓고 연애할 자유도 없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파파라치를 퇴치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보통 사람도 하루에 아홉 번은 찍히게 된다는 통계가 있다. 이는 어떤 사건, 사고가 생겼을 때에만 열어보게 되어 있어 평상시에는 문제가 되지 않을 뿐이다. 따라서 유명인의 사생활을 엿보려는 파파라치의 행위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그것으로 특종을 뽑아 얼마의 포상금을 받든지 그것은 저명인사의 공인성(公人性) 때문에 쉽사리 덮어진다. 문제는 여기서 파생한 각종 파라치가 창궐하고 있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우리 정부는 구정권 때부터 ‘신고정신과 사회정화’를 내세워 파라치제를 적극 옹호하고 장려해 왔다.

미국의 금융업계가 지난번 부동산 대출과 관련한 엄청난 규모의 파생상품을 내놨다가 결국 도산하고 말았던 사례를 우리는 잘 봐왔다. 파라치제도 지금 본래의 목적과는 다른 방향으로 사회의 골치 덩어리가 되기 일보 직전에 도달했다. 사진만 찍던 파파라치가 학원의 비리를 고발하는 ‘학파라치’가 되는가 하면, 식품업계의 위생과 유통과정을 추적하는 ‘식파라치’로 변신하기도 한다.

사교육을 부추겨 학부모의 사교육비가 눈사람처럼 커지게 만든 주범으로 몰린 학원가에 몰래 침투하여 시간 외 수업을 고발한달지, 수용인원을 초과하여 수업하는 것 등 비교적 사소한 문제점을 들춰내 신고하면 소정의 보상금을 타내는 학파라치의 존재가 과연 얼마나 학원가를 정화시켰는지 교육 당국에서 냉철하게 검토해봐야 한다.

불량식품 제조를 방지하기 위해서 ‘위생’을 최고의 덕목으로 내세운 보건당국이 ‘식파라치’를 양성하고 있으나 본래의 뜻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제조업체에는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구멍가게에서 라면 과자 등의 유통기간이 지난 식품을 구입한 후 이를 고발하는 게 거의 전부다.

이것이 불량식품 제조나 비위생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선거가 있는 해에는 ‘선파라치’가 날뛴다.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했을 때 이를 고발하면 최대 50배의 보상금을 준다. 이를 노리고 조직적으로 금품과 향응을 유도하는 수도 있어 여간 꺼림칙한 게 아니다.

이들 파라치제의 운용에 대해서 필자는 일찍이 그 폐해성을 지적하고 인성을 좀 먹는 밀고제를 시행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바 있다. 그러나 파라치 신고는 양성화되었고 이를 가르치는 학원까지 생겨 성업 중이다. 남 못되게 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으니 사회를 깨끗이 한다는 취지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작태다.

파라치제는 일제 경찰이 독립운동가를 잡기 위해서 써먹던 밀정(密偵)제와 똑같다. 국민을 주인으로 삼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인성(人性)을 완전히 몰수하는 어처구니없는 잔인한 제도다. 민주국가의 부정신고 제도는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여 민주시민의 의식을 고취하는데서 찾아야 한다.

돈을 미끼로 손톱만한 잘못을 대들보처럼 크게 확대하는 당국의 행태는 즉각 철폐하는 것이 대의명분에 맞는다. 물론 파라치제를 통하여 극히 일부의 성과조차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크다면 이는 빨리 없애야 한다. 교육과 계몽으로 선도하는 자세가 가장 옳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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