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26] 고려청자
[아! 대한민국-26] 고려청자
  • 김정남<본지 고문>
  • 승인 2012.08.0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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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20세기초 일본에 와서 동판화를 연구하다가 조선도자기에 매료되어 도예가의 길로 전향한 영국의 세계적인 도예 이론가인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는 백자에 엷게 비치는 청색을 보고 “이 색을 낼 수 있다면 사람들을 얼마나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감탄했다고 한다. 송나라 사람 태평노인은 「수중금」(袖中錦)이란 책에 ‘천하제일론’이란 글을 쓰면서 천하의 제일가는 것을 쭉 열거하는 가운데 “고려 비색(청자)이 천하제일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고려청자야 말로 고려를 세계 도자기사의 선구로 자리매김하게 한 독창적인 문화유산이다.

원래 청자는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이들 자기는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에 수입되기 시작, 9세기 후반부터는 강진과 부안 등 서남해안지역에서 청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고려청자가 천하제일의 명품으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은 12세기부터다. 이때부터는 중국의 영향이 사라지고, 빛깔과 형태에서 ‘고려적’인 것이 나타나 중국을 능가하는 독창적인 세련미와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고려청자의 빛깔은 ‘비색’(翡色)이라고 하는데, 그 오묘함은 타의 추종이나 흉내를 불허한다.

고려청자가 갖는 또 하나의 독창성은 상감기법을 도입한 데 있다. 상감기법이란 금속이나 도자기 표면에 무늬를 파서 그 속에 금속이나 보석을 넣어 채우는 기법을 말한다. 이 기법은 이집트에서 시작되어 한반도에도 전래, 나전칠기 등에 장식줄을 박는 입사법(入絲法)이 행해지고 있었다. 이 기법을 청자의 제작기법으로 원용한 것이 고려청자였다. 이 기법은 반건조된 그릇 표면에 무늬를 파고 초벌구이한 다음, 파인 부분을 백토나 자토로 메우고 유약을 바른 뒤 다시 구워내는 것이다.

이러한 상감기법 덕분으로 고려청자는 자기 표면에 아름다운 무늬와 그림을 새겨넣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고려청자에는 반복적인 무늬로 연꽃, 국화, 당초, 보상화, 초화(草花)가 들어가거나,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운학(雲鶴)무늬, 포도무늬 등 실로 다양한 소재들이 아름답게 담겨 있다. 이처럼 청자에는 고려인의 생활상은 물론, 그들의 뛰어난 심미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고려청자는 그 형태에서도 아름답고 균형잡힌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그 모양과 용도도 실로 다양하다. 찻잔과 술병을 비롯, 제기나 등잔, 베개, 향로, 벼루, 연적 등의 일상의 생활용품, 심지어 기와와 타일 같은 건축자재나 주거용품도 있다. 조형미가 넘치는 예술작품을 청자를 통해 구현해 낸 것도 있다. 과연 고려청자는 ‘코레아’의 상징이 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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