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문선명이 남기고 간 유훈
[시론] 문선명이 남기고 간 유훈
  • 전대열<大記者>
  • 승인 2012.09.11 1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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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한 거인 문선명총재가 9월3일 세상을 떴다. 그의 일생을 되돌아보면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그대로 닮았다. 이리 찢기고 저리 할퀴며 어지럽고 복잡한 삶의 단면을 보게 한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강압으로 나라를 빼앗긴지 10년 만에 그는 태어났다.

3.1만세운동의 여파로 상해에서는 조선임시정부가 발족하여 독립의 깃발을 높이 든 때였으며, 이회영일가는 전 재산을 투자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독립군을 양성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참으로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평안도 정주의 평범한 집안에서는 둘째 아들의 탄생 자체가 큰 경사였을 것이다.

그는 오산학교를 거쳐 서울로 올라와 경성상공실무학교를 다니는데 이 학교가 오늘날에는 중대부속고등학교다. 그 후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공업학교를 마친다. 이 때 군국주의 일본은 중국을 거쳐 버마 태국 등 동남아 일대를 휩쓸며 영토침략에 여념이 없을 때였으며 독일 이탈리아와 함께 추축국을 이뤄 제2차 세계대전에 전념할 때다.

문선명은 조기졸업으로 학교를 마치고 귀국선 곤론마루호를 탑승하기로 예약했으나 시간을 놓치는 바람에 타지 못했다. 그러나 곤론마루호는 미공군의 기습 공격으로 침몰하는 대참사로 끝난다. 이 배를 탔더라면 수장된 500명의 한 사람이 되었을 것을 하늘이 도와 살아난 것이다.

헬리콥터 사고가 나면 100% 사망이라는 등식을 깨고 2007년 그가 멀쩡하게 생존한 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문선명은 하늘이 낸 사람”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도 억세게 운이 좋은 낙수(落穗)의 하나다. 그러나 그는 통일교 전도와 관련하여 기존 기독교계의 엄청난 저항에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다.

막강한 기득권을 가진 기독교계에서 한번 ‘이단’이라고 낙인찍히면 변강쇠도 살아남기 어려운 풍토가 우리나라 종교계의 현실이다. 통일교는 초창기 전도 과정에서 수많은 질시의 대상이 되었으며 수난의 역사로 점철된다. 그로 인하여 문선명은 여러 차례 감옥살이까지 감내해야만 했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선교활동을 하다가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엉뚱한 혐의로 교도소에 들어가야 했으니 그는 감옥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해방 후 북한에 있을 때 남한 스파이로 몰려 흥남감옥에서 강제노동을 하다가 6.25가 터지면서 유엔군의 북진으로 살아난 것을 보면 가히 국제적인 감옥장이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듯싶다.

그러나 그의 진면목은 통일교를 전 세계적으로 펼쳐낸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기독교, 불교 등 한국의 종단들이 해외선교에 관심을 갖고 뻗어나가고 있다. 중동의 이슬람을 공략하다가 무슬림 광신자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기도 한다.

통일교도 아마 여러 나라에서 고초를 겪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문선명 특유의 배짱과 친화력으로 이들을 다독거리고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것은 대단한 성과다. 특히 남들이 잘 거들떠보지 않는 오지의 나라에서 검은 보석을 캐내듯 문선명과 통일교를 함께 알린 것을 보면 엄청난 소득이다. 그는 작은 나라의 정치와 생활 그리고 풍속까지도 꿰뚫고 들어가 한 덩어리가 되었다.

특히 한참 잘 나가는 권력자뿐 아니라 퇴직한 전직들까지 품에 안아주는 너그러움으로 마음을 샀다. 여기에는 많은 투자가 있어야 한다. 그가 통일교를 단순한 종교단체에 머물게 하지 않고 사업체를 거느린 그룹으로 키운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게다가 탁월한 외교적 안목으로 반공일변도의 한국에서 승공연합을 만들어 일본 조총련의 한국방문을 성사시켰던 지난날의 성과는 당시 박정희정부를 놀라게 만든바 있다.

체제경쟁으로 날을 세우고 있던 남북한은 조총련 끌어들이기에 성공한 한국이 주도권을 쥐게 되었고 그것이 빌미가 되어 밀사들이 오고가며 공동성명도 내고 이산가족 상봉으로도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1990년 4월에는 소련을 방문하여 고르바초프 총서기를 단독 면담한다. 아직 수교도 하지 않은 나라의 최고지도자를 민간인 자격으로 만나 개혁 개방을 지지하고 한국과 소련의 정상회담을 제안하여 고르바초프의 제주도 방문으로 매듭짓는다.

이듬해에는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과 단독회담을 갖는다. 둘 사이에 형님 동생으로 의형제를 맺고 이산가족의 만남과 금강산개발 등을 논의한다. 그러나 금강산은 나중에 현대 정주영의 차지가 되었고 문선명은 평화자동차, 보통강호텔, 세계평화센터 등 여러 사업체를 운영 중이다.

이와 같이 세계적으로 엄청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네트워크를 형성한 단체는 찾아보기 힘들다. 문선명 아니면 감히 착상조차 어렵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그가 남긴 유훈은 크다. 그는 세계평화를 갈망했다. 가난한 나라, 약한 나라라 할지라도 하나가 되면 부도 이루고 강해질 수도 있다. 그런데 남긴 자식들 간에 분쟁이 인다.

사실상 장남인 문현진이 아버지 빈소를 찾는 것조차 내침을 당했다. 따로 마련한 분향소에서 겨우 조객을 맞이한다. 모두 미국에서 자라고 생활한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한 탓일까. 문선명이 남긴 거대한 희망과 사랑 그리고 화합의 위대한 유훈을 물거품으로 만든다면 또 하나의 죄를 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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