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대사불호도(大事不糊塗)라 했거늘…
{데스크칼럼}대사불호도(大事不糊塗)라 했거늘…
  • 박완규 편집국장
  • 승인 2010.09.28 1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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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의 한시(漢詩)에 ‘재가빈역호(在家貧亦好)’란 시구가 있다. 아무리 가난해도 자기 집이 있으면 조금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뜻인데 원객귀거래(遠客歸去來)의 대구(帶鉤)로써, 객지에 있는 사람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이르는 말이다.

고사성어에 익숙지 않은 우리 재외동포들을 위해 굳이 영어로 표현하자면 ‘Be it ever so humble, there is no place like home’ 쯤 되지 않을까.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과 집 없는 민생의 고초를 떠올리게 하는 글귀지만 요즘 세태에 비춰볼 때 딱히 어울리지는 않는 듯하다.

무릇 가족이라 함은 모여 함께 사는 게 이치건만 이런 저런 이유로 대개가 떨어져 산다. 핵가족화가 된 현대사회에서는 가족이나 식구의 개념도 몹시 축소된 듯싶다.

거개의 어린 세대에게 가족은 부모와 자식의 테두리 정도로밖에 인식되지 않는 것 같다. 게다가 이 2대 부자지간 마저도 뭉쳐 사는 게 녹록지 않은 게 현실임에야.

대문호인 톨스토이가 소설 <안나 까레리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그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고 한 말을 원용하면 지금 이 시대의 가족들이 흩어져 사는 이유도 제 각각일 터이다.
천재지변은 예외로 하더라도, 생업 때문에 주말에만 재회하는 주말부부, 처와 자식을 외국으로 떠나 보낸 기러기아빠는 고전적 사례에 해당한다. 경제적 양극화와 높은 이혼율, 노인 소외 심화 따위도 가족 해체를 부추긴다.

고시원, 원룸 등에서 또, 숱하게 많은 요양원과 실버타운의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혼자 사는 사람이 넘쳐난다. 거리의 노숙 세태도 바뀌어 이젠 여성 노숙자들조차 흔히 눈에 띌 정도다.

그럼에도 지난 추석에 한국민은 고향으로 고향 앞으로 달려갔다. 폭우가 쏟아지고 길이 아무리 막힐지언정 이 거대한 민족대이동을 막을 수 없다. 전 국민의 약 75%에 달하는 연인원 5000만명 가량이 귀성과 귀경을 했단다.

조상들께 차례를 지내기 위한 의례적 행위지만 한편으론 무너지는 가족관계, 가족 이산을 강요하는 세태에 대한 저항의 몸짓이 아닐는지, 어쩌면 우리 유전자 속 본능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고향을 떠나올 때 더러는 늙으신 부모님의 여윈 손을 잡으며 몇 차례나 더 뵐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으리라.

추석 연휴가 끝날 즈음 접한 소식 하나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가운데 올 들어 숨진 사람이 한 달에 259명이나 된단다. 상봉 신청자 12만8129명 중 4만4444명이 숨졌고, 올해 들어서는 1813명이 혈육의 생사조차 확인 못한 채 눈을 감았단다. 하루 9명꼴이다.

이산가족 1세대가 갈수록 고령화하면서 사망률도 급증하고 있다. 이런 통계는 전에도 발표된 것이로되 더욱 각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추석의 여운이 남아 있는 탓일 게다. 단지 반으로 동강난 조국을 둔 죄로 이들은 기다리고 기다리다 속절없이 세상을 뜨고 있다.

남과 북은 최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실무접촉을 열고 있지만 상봉 장소 문제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고 한다. 이산 어르신들이 한을 품고 숨을 거두는데 장소 따위가 무슨 문제라고 저러고들 있는지 울화가 치민다.

대사불호도(大事不糊塗∙A wise man makes his own decisions)라, 언필칭 남북의 영도자가 담대히 결단하면 될 일일진대, 이 작자들조차 수사지적(需事之賊∙Procrastination is the thief of time) 할 따름이니 무에 더 말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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