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춘원의 혼 다시 돌아보다
[Essay Garden] 춘원의 혼 다시 돌아보다
  • 최미자<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3.04.01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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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일은 치욕스러운 역사, 일제 강점기에 희생되어야만 했던 아까운 애국자들과 지식인들로 분노가 치밀어 잠 못 이루는 밤이었다. 만약 내가 일본강점기에 태어나 그들처럼 기구한 운명을 지닌 사람이라면 어떻게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갔을까.

일본 정치인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던 우리 부모님 세대. 양심적인 애국심으로 살아가든 가족과 친구가 짐승처럼 모조리 학살당하든 불안에 떨든 하루하루. 대한민국 해방 후, 역사의 소중한 인물들을 친일로 단정을 짓는 기준은 어디까지 진실일까. 당시 동족들 사이에 시기와 모함은 없었을까.

샌디에고에 모처럼 의미 있는 행사 ‘이광수의 생애와 작품’ 세미나가 열렸다. 3월 25일 월요일 감리교회의 소강당에서 한국의 춘원 학회와 이곳에 사는 김향자 박사(오산학교 교장 김여제의 딸)가 준비했다. 행사 날, 나는 뜻밖에 우리 역사의 한 증인으로 90세의 시라카와 박사(한국전 참전용사, 미 육군 군의관)를 만났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의학도 아버지와 한국인 여의사의 사이에서 태어난 분이고 의사였던 어머니(안정화)는 이광수의 책들을 읽었고, 자신도 그 책을 읽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존경하는 춘원을 살리려고 엑스레이를 찍어 폐렴을 알아냈고 두 번째 부인 허영숙을 소개하여 결혼하게 된 이야기를 행사 후 라스베거스의 댁에 도착하여 전화로 나에게 들려주셨다. 정치인이 아닌 아버지(시라카와 부친)도 춘원을 위대한 한 사람으로 아내와 함께 살리려고 노력했다 한다.

또, 친정어머니는 8개월 동안 해방 후 감옥에 들어간 이광수(본명 이보경)의 명예회복을 위해 많은 사람의 서명을 받아, 이승만 정부에 관여하고 있는 임영신 여사한테 전달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시라카와 박사는 이광수 선생은 대한민국 최고의 문호이고 애국자라며 한국의 잘못된 역사를 바꾸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한편 중령으로 은퇴한 그는 70대의 나이에 덴보스코 직업청소년 전문학교의 자원봉사자로 영어 일본어 철학을 가르치느라 10여 년 간 한국을 드나들었다고 했다. 젊은 대학생들에게 강연한 후 이광수를 아느냐고 물으면 친일파이고 납북되었다는 대답에 실망도 했다. 시라가와 박사(Dr. Shirakawa)는 비록 일본성을 가졌지만, 한국인인 친정어머니에 대한 말을 할 때면 지금도 전화 속에서 목이 메었다. 당시 일본에 온 한국유학생을 도와주든 어머니가 애국하든 모습 때문인지 시라카와 박사도 엄청나게 한국을 사랑하는 한국인이라고 느껴졌다.

대학생 때, 이 십 대의 나도 도서실에서 이광수의 장편 소설 ‘사랑’을 읽으며 애정을 표현한 문구에 얼굴은 홍당무가 되고 가슴이 두근거렸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사랑이란 주제는 무지개 같으면서 진정한 의미가 잡히지 않는다.

그의 소설은 미묘한 삼각 관계로 인간성을 풀어헤치던 묘미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애정소설이나마 허락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춘원의 말처럼 모두 빼앗겨도 그의 마음만은 정복할 수 없던 일본이었다. 다시 그의 책을 읽고 싶은데 당장 구할 수가 없으니, 어제는 인터넷에 들어가 이광수에 관한 공부를 종일 했다.

숭실대 한승옥 교수는 춘원은 글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쓰는 탁월한 재능이 있다. 또, 친일이라고 단정을 짓기보다는 그의 문학 자체를 놓고 인간적인 조명을 해야 한다고 평했다. 문학평론가 김우종 교수도 어린 시절 동학운동에 참여했고 유학생 시절에도 삼일 독립운동의 전초가 되는 2월8일 독립선언문을 주도 작성하며 수십 년 동안 항일투쟁한 근거를 대며 친일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세미나에 참석한 단국대 윤흥로 명예교수는 소설 ‘흙’에서 처럼 농촌의 계몽운동은 훗날 새마을 운동의 기초라며 춘원을 민족주의자로 평가했다. 전 서울대 법대 최종고 교수는 서울대 기록관에서 경성제대의 학생증 번호가 1번으로 발굴됐음에도 불구하고 춘원의 생애를 정리한 책과 영어로 번역된 책이 아직 없다는 아쉬움을 알렸다.

그리고 당시 시인이며 철학가인 인도의 타고르를 만났고 간디, 중국의 노신, 나쓰메 소세키, 톨스토이에 대응할 수 있었던 한국의 자랑스러운 종교가, 역사가, 사상가였다고 말했다. 세미나에 참석했던 펜실베니아에서 온 따님 이정화 박사도 칠순의 나이와 달리 우리 집 정원의 꽃을 보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지극히 순수한 소녀 같았다.

▲ 모윤숙 시인의 따님 안경선씨, 춘원 이광수 시인의 따님 이정화 박사, 최종고 전 서울대 법대교수
5세에 천자문을 공부한 천재 소년, 외롭고 불행한 시절을 견디면서 진정한 문학인으로 우뚝 서지 못한 슬픈 역사 속의 대문호를 우린 소중하게 다시 찾아야 할 것 같다. 다행히 춘원을 탐구한 논문이 천 편이 넘는다는 소식이 희망적이다. 한국인의 씨를 말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창씨개명을 해야 했던 그의 고민을 결코 우리는 손가락질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본이 중고등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거짓 역사로 한국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는데, 이 심각한 상황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그들의 음흉한 두 얼굴을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난날 조선 왕조와 선조들이 당했던 피비린내 나는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일제 강점기의 역사박물관이 전국 곳곳에 세워지고 건물도 증거로 남아 있어야 한다. 이웃의 우방으로 용서는 하되 나라를 빼앗겼던 36년의 고통을 단연코 잊어서는 아니 된다. 이미 빼앗긴 대마도 섬도 당당하게 우리 부모들처럼 다시 내놓으라고 외칠 수 있는 국민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 소개] 교포월간지 ‘피플 오브 샌디에고’ 주필 역임, 수필집 ‘레몬향기처럼(2007년)’과 ‘샌디에고 암탉(2010년)’을 출간했고 한국문인 및 미주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재미수필가. 샌디에고 라디오코리아(www.sdradiokorea.com)에서 ‘최미자의 문학정원’을 매주 금요일 연출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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