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희망 줍기
[Essay Garden] 희망 줍기
  • 최미자<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3.09.21 0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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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에 살 때 불경을 읽을 때면 한문으로 되어 있어 옥편을 곁에 놓고 읽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국에 사는 친척이 쉬운 불교 이야기가 담긴 월간지 정토를 선물로 보내주었다. 반가워하실 친정어머님께 책을 갖다드렸다.

1914년에 태어나 여학교를 다닌 어머니는 유식한 분이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아파트에 살 때도 이웃 한인들이 교회에 안 다닌다고 따돌림을 시켜도 끄덕하지 않는 분이었다. 하루는 아파트의 친구 방에 들렀다 고혈압으로 쓰러져 수술했지만 반신불수가 되어 우리가 사는 샌디에고로 거처를 옮겼다.

잘 정리된 정토 책을 읽고 격려하고 싶다며 어머니는 20달러를 넣어 종종 편지를 보냈다. 나의 어머니 이야기가 법륜스님께 전해졌던 모양이다. 1993년쯤, 법륜스님이 우리 집으로 전화를 하셨다. 몸이 편찮으신 어느 할머니를 뵙고 싶다는 말을 들어보니 나의 어머니였다. 이런 인연으로 법륜스님의 샌디에고 미주 순회법회는 시작된 것이다. 매년 9월이면 로스앤젤레스와 샌디에고를 시점으로 미국의 동부까지.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온 가족이 해마다 기쁨으로 봉사했다. 당시 남편이 암 수술을 하고 살아나서인지 나는 불심이 일어났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인연이 찾아온 것이다. 작은 우리 집에서 때론 수십 명이 저녁을 먹고 사람들이 면담할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했다. 서암 종정스님을 모시고 오실 때는 호텔 방을 빌려 설법 장소를 마련했다.

살기 좋은 나라, 미국에 와보니 한국인들은 언어의 불편으로 주류사회에 나가지 못하고 거의 장사를 하며 일꾼의 삶이었다. 또, 물질적 가난의 한에 서려 있는 사람들처럼 살고 있어 난 허탈감도 왔다. 한때 나도 고학하는 대학생이었지만, 인생목표는 언제나 삶의 질이었다. 큰 집이나 값비싼 자동차가 아니고 높은 지위도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평화롭게 사람답게 살까.

그런데 이민 온 나도 이런저런 고통으로 몸무게가 빠지고 위궤양 약까지 먹으며 수척해져 버렸다. 잘못 길을 들어가면 평생 일만하는 미국생활이 될지도 모른다며 고민했다. 남편도 남들처럼 부자가 되고픈 야망이 꿈틀거려 두개의 직장을 다녔지만, 미국회사의 의료보험 혜택으로 큰 수술을 받았기에 그는 마음을 돌렸다. 이런 상황에 스님의 한 말씀 “자신의 한 생각이 달라지면 모든 것이 편안해진다”가 의미 있게 다가왔다. 맞다, 힘들어도 웃자. 감사하게 살자. 기도하는 마음으로 가족을 위하고 또 남을 위하여.

오랜만에 신문에서 본 희망세상 만들기 강연 전면 광고. 9월 8일 일요일 오후 4시. 샌디에고 중심지역에 있는 제임즈 매디슨 고등학교 강당. 전날은 로스앤젤레스 지역 두 곳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했다. 연일 화씨 90도가 넘는 이상고온이라 사람들이 얼마나 올까, 의문이었다. 선풍기도 필요 없는 이곳 날씨였는데, 자주 찬물 목욕을 해서인지 여름 감기에 걸린 나는 약을 먹고 콧물을 닦으며 참석했다.

일기예보대로 조금 시원해진 날씨 아래, 300명이 넘게 가득 모였다. “어둡다. 불 좀 켜주세요. 얼굴을 보고 이야기 해야지. 최미자보살 어디 있어요? ” 계속 찾으셔서 맨 뒷좌석에 앉았던 나는 부채를 든 채 일어섰다. 정말 깜짝 놀랐다. “18년 전에···” 오래 전 우리 집에서의 인연을 짧게 말하며 강연은 시작되었다.

가지가지 사람들의 질문. 들어보면 일상에서의 소소한 일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퍽 괴로워하고 있었다. 터놓고 말하고 싶은데 들어 줄 사람도 없으니 외롭다. 결혼도 안 해보고 자녀도 기른 경험 없는 스님이 해결사이다. 정신과 의사가 된 스님의 술술 풀리는 답변으로 청중은 한바탕 웃기도 하며 연예인보다 더 유명하다는 스타스님의 말에 귀를 모았다.

두 시간 사십오 분 동안 때론 두서없는 질의자 때문에 지루하기도 했지만, 재미있었다. 샌디에고 전 한인회장(1983년) 이청환 사장님이 천 달러를 베풀어 마련된 선물 떡으로 차 안에서 난 허기를 때우며, 40여 명의 봉사자들이 즐겁게 뛰는 얼굴을 보며 집으로 왔다. 오늘 행사로 오래전 열정을 바쳤던 추억의 시간이 떠올라 그날 밤잠도 설쳤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은 이처럼 또 흘러가는데, 오늘도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희망을 주어서 담아갔을까.

[필자 소개] 교포월간지 ‘피플 오브 샌디에고’ 주필 역임, 수필집 ‘레몬향기처럼(2007년)’과 ‘샌디에고 암탉(2010년)’을 출간했고 한국문인 및 미주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재미수필가. 샌디에고 라디오코리아에서 ‘문학정원’ 방송 연출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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