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 누가 프로파간다에 돌을 던지랴
[해외칼럼] 누가 프로파간다에 돌을 던지랴
  • 강기린<재미만화평론가>
  • 승인 2013.10.16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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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소믈리에를 아시나요?

와인을 소개하고 추천해주는 소믈리에는 들어봤지만, 워터 소믈리에는 아직 생소합니다. 한국에서 올해 두 번째로 워터 소믈리에 자격시험을 실시했습니다. 이는 세계 최초라고 합니다. 기존의 워터 소믈리에는 물의 고급화를 위함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수돗물 검증 인력 양성 때문입니다. 이쯤 되면 물의 종류가 다양해야겠지요, 실제로 물은 그 성분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워터 소믈리에의 관심은 물 자체의 특성과 더불어 그 물을 담는 잔의 모양입니다. 물과 잔의 궁합이 얼마나 맞느냐에 따라 물맛이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물도 어떤 틀에 담느냐에 따라 맛과 질이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물은 유연하고 자유롭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술과 닮아 있지요. 그렇다면 예술은 어떤 틀에 담아야 할까요?

정해진 모양대로 예술을 찍어내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프로파간다’로 알려져 있습니다. 선전 활동, 어떤 이념으로 만들어진 것이지요. 이는 예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일까요? 예술도 물처럼 그 특성에 따라, 어떤 틀과 만나 더 훌륭한 맛을 낼 순 없는 걸까요? 

최근, 아랍의 봄, 민주화 물결이 중동을 휩쓸고 있습니다. 시리아도 예외는 아닙니다. 시리아는 한 가문이 1971년부터 지금까지 대권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독재이지요. 독재정권이 오랫동안 횡포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동네 담벼락에 민주화 구호가 발견 되었습니다. 권력은 그걸 쓴 학생들을 잡아들여 고문을 했습니다. 민주주의를 원하는 게 죄가 되는 비극이었죠. 이에 시민들이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처음에는 평화적인 시위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정부군이 과잉진압을 하면서 시민들의 사망이 연이어 발생했고, 정부군은 급기야 민간인 주거지역을 습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전쟁에도 룰이 있다는 거 아시죠? 전시국제법 말입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최소한의 평화적인 전쟁을 위한 안전 장치인거죠. 그런데 권력은 민간인을 학살 하였죠. 룰은 깨졌습니다 이에 분개한 이들이 모여 반군을 결성했습니다. 내전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복에 보복이 반복되기 시작했죠. 포로가 생기면 머리 모자를 씌워 참수를 하고, 인육을 먹기에 이르렀죠. 어린 소년들이 전쟁에 가담하고, 민간인 여성에 대한 성폭행이 벌어지고, 금지된 화학무기를 사용하는 등, 이런 행위를 주거니 받거니 전쟁은 점점 잔인해지는 중입니다. 여당은 정부군이라고 방관하고, 반군은 이에 맞선다고 정신없고, 누가 나서서 심판을 봐 줘야 할 상황이었죠.

이에 시리아의 야당의원들이 나섰습니다. 이들은 반군들을 불러 교전법규를 알려주는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시리아는 문맹률이 꽤 높은 편이거든요. 그러니 문서화된 자료들이 먹히지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대신 캠페인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캠페인 사이에 만화를 넣었습니다. 인육을 먹는 모습, 참수를 하는 모습을 그대로 만화로 만든 것이죠. 왜 하필이면 만화일까요? 그것도 잔인한 장면을, 그저 인권유린을 하지 말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요? 사실 이 만화와 문맹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문맹은 글을 읽고 쓸 줄 아는가, 아닌가에 따라 구별됩니다. 다른 말로 문맹은 구전문화와 가까운 사람들이죠. 문자라는 것이 발명되기 전까지 말하고 듣는 구전문화가 발달한 것이 그 이유이지요. 이들이 지식을 소유하는 방법을 살펴봅시다. 문자가 없으니 어디 적어놓을 수도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 이들이 지식을 소유하는 방법은 '기억하는 것' 입니다. 입에서 입으로, 노래로, 의식으로, 설화로, 전설 이야기 등으로. 

그들의 두뇌는 오늘날의 USB와 같다고 보면 되겠죠. 그러니 당연히 용량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요즘 사람은 모르면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도서관에 가면 되지만, 그 때는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니 답은 늘 주관적이고, 묘사가 발달했습니다. 잔인한 행위를 중지하라는 짧은 말보다, 잔인한 행위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그들에겐 더욱 익숙하고 편한 교육 방법 이었습니다 배우는 사고 체계가 다른 것이죠. 만화에는 이야기가 있고, 주인공이 있지요. 사람의 경험, 행위를 통해서 인식하는 문맹들은 글보다, 압축된 강렬한 구호보다 만화가 훨씬 편안할 겁니다. 

또한 영화제작 보다는 저비용입니다. 그러나 그 표현 범주는 무한대입니다 만화는 분명 문맹인들에게 훌륭한 교육 수단입니다. 시리아에서 배포한 만화 캠페인은 사람들에게 반응이 좋다고 하네요. 

유네스코의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 성인중 문맹은 10억입니다. 그러나 통계 밖의 변수, 읽을 수는 있는데 이해는 못한다던가 혹은 쓰지 못한다던가, 혹은 추산 대상이 된 집단 밖의 사람들까지 고려하면 오늘날의 문맹은 전 세계 성인의 60퍼센트나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글을 알려주기 위한 많은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문맹률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 프로그램들이 글을 배운 사람들의 사고체계를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들이 글을 배울 기회를 얻지 못하고, 혹은 글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교육을 받지 못한다는 법은 없겠지요. 만화가 이들에게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다면 말이죠. 

한 때 사람들의 관심을 정치 밖으로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고, 잘못된 이미지 메이킹으로 청소년 유해매체로 선정, 한순간 즐길 거리에서 해악이 되며 각종 수난을 견뎌온 한국 만화, 앞으로 글 이외에 무궁무진 한 가능성을 지닌 만화가 좋은 틀을 만난다면, 전 세계 대중에게 또 다른 소통의 장을 열어주는, 좋은 의미의 프로파간다가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을 겁니다. 

예술론에서 프로파간다는 종종 악의적인 어감으로 쓰일 때가 많습니다. 세상만사 절대악과 절대선의 경계가 판단유보의 영역이듯이, 프로파간다에 대한 시선도 조금 다르게 봐야 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시리아의 경우라면 말입니다.

◇강기린
척척팩토리의 서브라이터이자 만화평론가로 현재 하와이에 거주하고 있다. 척척 팩토리는 시나리오 작가, 만화로 재기하는 영화 미술감독, 영화제 기획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스토리, 그림, 마케팅 등 전문 분야를 나누어 만화를 제작하는 만화창작집단이다. 2012년부터 네이버에 웹툰 ‘7번 국도아이’ 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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