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의 원조는 무엇일까?
힐링의 원조는 무엇일까?
  • 강기린<재미만화평론가>
  • 승인 2013.11.04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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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은 힐링 열풍으로 뜨겁습니다. 힐링이란 마음의 병을 고치는 것을 말합니다. TV를 켜면, 유명인들의 힐링 강연 모습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그 방법이 흥미롭습니다. 자신에 대한 그동안 말하지 못하고 담아놓았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는 겁니다. 자신의 모습을 꺼내 들려주는 것이죠. 이러한 행위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최면도 이와 유사합니다. 어린 시절 등 일정 시점으로 돌아가 기억 아래의 것들을 더듬어 찾아 마음을 치료하는 것이죠. 힐링은 결국 마음의 거울을 바라보는 과정입니다. 힐링과 같은 맥락의 과정은 사실 오래 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바로 예술입니다. 

인류의 조상은 동굴 벽에 자신의 마음을 새겨 넣곤 했습니다. 더욱 풍요롭길 바라는 자신들의 마음을 숨김없이 표현했고, 그것은 그들에게 위안이 되었을 겁니다. 인류에게 위로가 되는 행위, 이것이 바로 예술의 시작입니다. 예술은 한 개인이 속한 곳의 종교, 철학, 문화, 경제 등을 반영합니다. 그러니 예술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고, 힐링인 셈이지요. 그래서 종종 우리는 예술작품으로 과거를 돌아보기도 합니다. 그 과거 속에는 인간사의 상처가 숨겨져있습니다.

얼마 전, 미국 플로리다 법정에서 열린 재판이 미 전역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십대 소년 마틴을 죽인 지머먼에 대한 재판이었습니다. 방범대원이었던 지머먼은 길에서 의심스러운 소년을 발견했는데, 그가 바로 마틴이었습니다. 지머먼은 마틴이 주먹을 휘두르며 자신을 죽이려 하자, 어쩔 수 없이 총으로 그를 사살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주먹에 총으로 대응한 것이 정당방위냐 아니냐가 재판의 쟁점이었습니다. 지머먼은 무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흑인사회의 공분을 사게 되었죠. 지머먼이 처음부터 마틴을 경계, 의심하며 쫓았던 이유가 ‘마틴이 후드티를 입은 흑인’이라서 였다는 겁니다.

이에 분개한 흑인들이 후드티를 입고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위험하지 않다'고 외치기 시작했지요. 인종의 용광로라 불리는 미국, 다 함께 넣고 끓이기만 하면 하나가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그들이 용광로 속에 있다고 믿는 그것, 미국인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그 특성을 갖지 않으면, 이상한 걸까요? 그리고 그 특성 속에 후드티를 입은 흑인은 있었을까요? 후드티를 입은 흑인들의 사진이 끊임없는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이 사진이 없었다면, 평생 이런 생각을 해 볼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위대의 사진을 보면서 한 애니메이션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1930년대에 제작된 미국 뮤지컬 애니메이션, ‘톰 아저씨와 작은 에바’로, 이 작품은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해리엇 비처스토의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서 모티브를 착안해 만든 것이었습니다. ‘톰 아저씨와 작은 에바’의 내용은 한 흑인 노예 모녀가 백인에게 쫓기게 되고, 노예 톰 아저씨가 이들을 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슴 아픈 이야기였죠.

그러나 영상을 뜯어보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노래하는 노예들이 실려 오는 증기선, 목화밭에서 즐겁다는 듯 춤을 추는 노예, 경매에 나온 노예가 탭 댄스를 춰서 백인들에게 어필하는 장면은 분명 노예제로 고통 받은 이들에 대한 모욕이었습니다. 해리엇의 작품은 노예제의 비극을 나타내었지만, 이 애니메이션은 마치 노예들이 노예 생활을 즐긴 듯 묘사해 버린 겁니다.

당시는 노예해방이 된 지 50년 이상 지난 뒤였지만, 여전히 백인 우월주의로 가득 찬 시대였습니다. 겉만 멀쩡하고 속은 여전히 곪아있는 상황이었죠. 그러니 여전히 애니메이션 속에서 흑인은 노예로 등장했고, 흑인의 모습을 모욕적인 캐리커처로 만드는 걸 자연스러운 유머쯤으로 여겼습니다. ‘톰 아저씨와 작은 에바’는 미국 사회가 흑인을 바라보는 관점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습니다.

초창기 미국 애니메이션은 극장 상영용으로 성인 관객을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성인들의 관점이 애니메이션에 고스란히 녹아있었습니다. 1930년 개발된 텔레비전은 2차 대전 이후 각 가정으로 스며들었고, 애니메이션도 텔레비전으로 자리를 옮겨 갔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주 관객이 성인에서 어린이로 확대되면서, 미국은 애니메이션의 황금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여전히 성인의 코드를 가지고 있었죠.

‘톰 아저씨와 작은 에바’도 이 시기에 나온 작품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들이 고정관념을 갖기에 충분한 내용이었지요. 더 큰 문제는 이와 유사한 작품들이 유명 프로덕션에서 무차별로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었습니다.

1968년 결국 미국의 영화 배급사인 UA(United Artists Corporation)가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면서, 애니메이션 내의 흑인 인종차별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습니다. 모욕적인 내용의 애니메이션을 금지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는 미국 사회에 인종차별이 옳지 않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행위였습니다. 곪아가던 문제가 애니메이션을 통해 터지게 되었고, 자신들의 모습을 비춰보며 나름의 ‘힐링’이 이루어진 셈입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이 자신을 그대로 드러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예술은 시시각각 변하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그 거울 속의 모습을 보고 뭔가를 찾아낸다면, 그것이 바로 힐링일 것입니다.

언젠가 SBS의 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경제 위기에 대한 내용이었죠. 그 다큐멘터리 내용의 전체를 대변해 줄 수 있는 인상적인 장면 하나가 있었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는 여학생의 인터뷰였죠. 그녀는 가난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집 벽에는 그림 하나가 걸려있었습니다. 그것은 한 여인이 흰 담비 한 마리를 뜯어먹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은 명화를 패러디한 것인데, 원작은 다빈치의 <흰 담비를 안은 여인>입니다. 원작에서는 우아하게 담비를 안은 여인이지만, 지금 이탈리아의 현실에선 배고픔에 담비를 뜯어먹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보다 정확한 거울이 어디 있겠습니까?

힐링의 열풍으로 휘청거리는 우리 사회, 지금 어떤 거울과 마주 보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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