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거대한 손을 만났을 때
예술이 거대한 손을 만났을 때
  • 강기린<재미만화평론가>
  • 승인 2013.11.28 11: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72년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락이 제시한 가설 하나가 전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그의 주장이란 ‘지구는 살아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설에 가이아(Gaia)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가이아란 대지에 생명을 불어넣는 힘을 지닌 그리스 신화의 여신입니다. 러브락은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았습니다. 화산 폭발의 경우, 지구 생존을 위한 체온 조절이라는 것이죠. 유기체의 생존을 위해서는 온도 조절이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몸의 온도뿐만 아니라 마음의 온도도 중요합니다. 북적이는 세상 속에서 우리의 욕망도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꼬여있습니다.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화(Anger)를 품게 되는 상황도 종종 발생합니다. 분노를 터뜨리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마음의 병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마음 온도 조절은 꼭 필요합니다. 러브락의 주장대로라면 화산 폭발이라는 최소한의 온도조절 장치가 없다면 어느 순간 지구는 터져버릴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마음도 화를 발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곪아 터질 수도 있는 것이지요. 화는 바로 내보내는 게 좋습니다.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 요령 있게 화를 내는 기술도 중요한 기술인 셈입니다.

그런데 화를 있는 대로 폭발해도 되는 분야가 바로 예술입니다. 이는 무한한 상상력이 허용되는 예술 분야의 속성에 기인합니다. 화는 욕망과 현실적 한계의 간극이 벌어지며 발생합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상상력은 화와 닿아있습니다. 상상력은 한계를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이기 때문입니다. 현실과 이상의 간극이 커지면 커질수록 욕망은 선명해집니다. 이것은 상상력의 기폭제 역할을 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정치나 종교적 억압의 시대에 오히려 다양한 ‘예술폭발’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것도 이 같은 이치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저항예술’이라고 부릅니다.

1960년대 체코는 전체주의 사회였습니다. 당시 개인의 자유는 보장되지 않았고 예술에 있어서도 표현의 자유는 제한되었습니다. 문화, 예술은 오직 정부의 선전도구로만 여겨지던 시절이었습니다. 영화계엔 선전용 극작법이 따로 도입되기도 했습니다. 숨죽인 예술가들중 몇몇은 분노를 삭이며 자유로운 세계를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한 예술가의 화가 폭발한 것은 1965년 프랑스 안시 국제 영화제에 출품된 작품에서였습니다. 이 문제작은 체코 애니메이터 이리 트른카의 인형극 애니메이션인 ‘The Hand’.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어떤 분노를 터뜨렸을까요?

도공은 화분을 빚으며 꽃이 피는 장면을 상상한다. 어느 날 ‘거대한 손’ 이 그의 방문을 두드린다. 모든 권력을 쥔 ‘손’은 도공에게 자신의 조각상을 만들 것을 강요한다. ‘손’은 저항하는 도공의 팔을 줄로 묶어 자신의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린다. 새장에 갇혀 ‘손’의 조각상을 만드는 도공. ‘손’은 그를 훈장과 재물로 회유하려 하지만 도공은 그것들을 뿌리치고 자신의 작업실로 달아난다. 그는 ‘손’의 침입이 두려워 모든 문을 잠그는데 혈안이 된다. 히스테릭한 ‘잠금’ 노이로제에 걸린 그는 캐비닛이 열리는 것을 보고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캐비닛 문에 못질을 하는 도공의 머리위로 화분이 떨어진다. 작업실에 찾아온 ‘손’은 죽어있는 도공을 발견하고 캐비닛 속에 도공을 누인다.

이 작품 속에서 손은 전체주의를 상징합니다. 전체주의의 만행은 애니메이션 속에서 더욱 구체적이고 상징적으로 형상화 될 수 있었습니다.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관객들은 전체주의의 손아귀에 잡힌 기분에서 ‘손’의 억압에서 도공이 탈출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해방감을 맛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정치적 억압으로 제약된 예술가의 화가 폭발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극찬을 받으며 안시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상영금지가 되고 말았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자유에의 갈망을 상징하는 명작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세계는 늘 누군가에게 억압이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팻말 아래에서도 누군가는 늘 억울합니다. 종종 예술가에게 예술이나 하라, 혹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는 비난을 돌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에는 정치적인 예술이 가장 중립적일지도 모릅니다. 마음이 고통의 열기로 치우쳐 있을 때, 예술이 대신 그 마음에 작은 분화구를 하나 내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인 억압 속에서 누군가 정치를 빗댄 예술을 한다면, 그것은 아주 건강한 행위일 것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한신잠실코아오피스텔)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