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혁명과 중국 만후아
문화혁명과 중국 만후아
  • 강기린<재미만화평론가>
  • 승인 2013.12.11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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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고치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버둥대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관찰하던 남자는 가위로 고치를 찢어 나비의 수고를 덜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나비는 제대로 날아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고치를 기어 나올 때 날개에 실리는 힘이 비행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남자의 행동이 도리어 나비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이 남자는 영국의 생물학자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로 그의 이 ‘나비고치’ 이야기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교훈을 전하는 데 종종 인용됩니다.

1960년대 중반까지 중국의 애니메이션은 동남아시아의 여느 국가들보다 앞서 있었습니다. 청나라 때, 서구 열강의 문물개방 요구는 거셌습니다. 당대의 지식인들까지 국력 신장을 위해서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하고 나서자 결국 청나라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습니다. 곧 중국에는 서양의 문물이 유입되기 시작했고, 그 중에는 애니메이션도 있었습니다.

중국의 작가들은 미국, 유럽, 러시아 등지로부터 유입된 다양한 작품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미국 작품으로부터 오락적 요소와 러시아의 계몽적 성격을 흡수해 중국만의 독특한 애니메이션이 탄생시켰습니다. 거기에 중국 고전의 형식과 이야기를 버무린 작품들이 하나, 둘 세상에 선보여졌습니다. 중국 애니메이션의 선구자라 불리는 완 형제, 테위 등도 이때 등장했습니다.

청일전쟁이 발발하고 장편 제작 여건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짧고 강력한 메시지를 지닌 단편 작품들이 속속 만들어졌습니다. 촌철살인(寸鐵殺人)에 일가견이 있던 중국 애니메이션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사회 변혁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대기근이 닥치자 식량을 나누자는 내용의 작품이 등장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중국공산당은 ‘국립 상하이 만화 영화 스튜디오’를 설립해, 국가주도하에 다양한 작품들을 제작했습니다. 이때 만들어진 작품들은 국제무대에서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이랬던 것이 1966년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을 계기로 급격한 시련을 맞게 됩니다. 마오쩌둥에게 중국은 꿈틀대는 나비고치와 같았습니다. 마오쩌둥은 자본주의의 기미가 엿보이는 모든 문화·예술 작품을 폐기하도록 했습니다. ‘현대판 분서갱유’가 시작된 것입니다. 중국 애니메이션계 역시 이에 직격탄을 맞고 휘청거렸습니다.

문화혁명의 거센 폭풍이 휘몰아치는 동안 중국에는 프로파간다를 위한 애니메이션만이 남았습니다. 당이 요구하는 작업을 거부하면 혹독한 고초와 함께 노예와 같은 삶이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자살을 선택하거나 더러 살아남은 이들은 집단농장에 보내졌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진화는 중단되었습니다.

무차별적인 가위질에 대한 자성이 일어나면서 중국 애니메이션계도 점차 숨통을 틀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작품들이 선보여지며 제2의 부흥기를 노렸지만, 이미 중국의 텔레비전은 그 사이 큰 발전을 이룬 일본 애니메이션이 장악하고 난 후였습니다. 중국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란 국산 작품의 비율을 의무화 하라는 것뿐 이었습니다. 현재 중국의 작품들은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고 있지만, 중국의 만후아(중국어로 만화)가 일본의 망가만큼의 명성을 가질 날이 언제일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마오쩌둥의 눈에 문화 혁명 이전의 중국은 모순 덩어리로 가득한, 뜯어 고쳐야할 대상으로만 비쳐졌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추구했던 ‘완전한 중국’의 완성을 위해 시간을 두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대신, 희생을 감수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마오쩌둥은 자본의 모순으로부터 사람들이 해방되길 바랐지만, 그의 강압적인 극단의 개혁에 숱한 사람들이 ‘또 다른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바람직한 변화란 무엇인지에 대해 문화혁명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수많은 희생을 대가로 얻은 변화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또 그렇게 이룬 변화가 과연 진정한 발전이 될 수 있을까요? 앞선 ‘나비고치’의 예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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