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칼럼] 한파(寒波)
[詩가 있는 칼럼] 한파(寒波)
  • 이용대<시인>
  • 승인 2013.12.16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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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진 여인의
앙칼진 눈 흘김에
싸늘한 달빛 묻어 소름 돋는 밤이다

머리채를 휘감는 칼날바람에
애꿎은 나뭇가지 주눅이 들고
부엉이도 울부짖는
어두운 새벽

귓가를 스치는 회초리 소리는
투창처럼 어깨에 비수로 꽂히는데
문밖엔 버림받아 살기 도는 사랑들이
앙가픔의 은장도를
일제히 번쩍인다

억새도 항복하는
검푸른 한천(寒天)으로
참았던 원통함이 광기로 무습게 퍼져가고
자기 몸 구석구석을 남김없이 할퀴면서
백혈을 허옇게 돌밭에 뿌리며 다닌다.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 산농 길, 두툼한 외투를 입고 지나던 사람들도 일찌감치 뜸해 집니다. 해떨어지면 강추위로 휩싸이는 지금의 가곡천은 예나 다름없이 냉혹합니다. 백성들이 아주 가난했던 보릿고개 시절, 태백 험산 토끼 길을 넘어 탄광으로 가던 사람들이 눈 내리고 산 얼음 어는 높은 고개에서 얼어 죽기도 했습니다. 혹독한 추위를 만들어냈던 겨울이었습니다. 굶어죽고 얼어 죽고, 또는 사회에 버림받아 생을 마감했던 때의 원혼들이 겨울에 깨어나 산하를 떠돈다 했습니다. 오죽 추웠으면 그렇게도 생각해 보았겠습니까. 그 중 사랑에 버림 받고 하직한 여인의 한이 제일 앙칼지고 무섭다고 했습니다. 푸르다말고 시퍼렇게 탱탱한 밤하늘, 닭도 강아지도 일찌감치 꼬리를 감추는 한파입니다. 이런 밤, 잠 못 들고 마음마저 방황하는 사람이 지금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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