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한 소년의 꿈
[Essay Garden] 한 소년의 꿈
  • 최미자<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3.12.31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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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인간애보다는 추악한 애정관계 아니면 만화 같은 이야기의 영화가 돈벌이가 잘되는 세상이라는데, 젊은 감독이 만든 실화이야기인 영화 ‘코리아’를 감동 있게 보았다.

오래 전 LA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샌디에고 비행장의 출구에서 서서 아들 둘이 있는 동양사람 가족을 기다렸다. 그렇게 우린 첫 인사를 했다. 당시 부인은 암 수술을 한 후여서 나는 그분들과 병원에도 가고 미국 생활을 안내했다. 이웃에 아파트를 세 얻어 살게 되어 자주 만났다. 명절이면 솜씨 좋은 그의 아내가 반찬을 만들고, 세 가구가 모여 우리 집에서 밤새도록 놀았다. 그때 한 소년이 독특한 자태로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나는 그가 커서 무엇이 될까 하고 궁금했었다.

고국에 돌아가서도 과거의 시간을 기억해주어 지금도 우린 우정을 나눈다. 늦둥이 두 아들이 공부하고 싶은 예술의 길을 후원할 수 없는 아쉬움으로 걱정했던 가장의 직장에 먹구름이 끼였다. 선배의 부탁으로 근무했던 금융회사가 갑자기 영업정지를 당하며 억울하게 6개월이나 사법적 조치를 받게 된 것이다.

이렇게 기막힌 상황에 큰 아들은 1991년 남북한이 단일팀을 만들어 출전했던 세계탁구선수권 대회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구상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뚝심을 닮은 한 소년이 어느새 영화감독이 되다니! 지난날 미국에서 내가 만났던 허약해 보이며 가끔 반항적이기도 한 15살 소년의 얼굴이 눈앞에 아롱거렸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도 그의 눈빛은 진지해 보이더니. 자랑스럽게 첫 감독으로 데뷔할 무렵인데, 아버지는 곁에 계시지 않으니 부자간의 답답함이 오죽했으랴. 아마 문현성 감독은 평생 청렴하게 살아오던 아버지의 고통을 묵묵히 그의 영화 속의 정열로 승화시켰으리라.

미국에서 그의 영화 ‘코리아’를 보며 나는 서른 세살 감독의 성숙된 인간미와 애국심을 보았다. 영화를 볼 때나 시나리오를 읽을 때면 흥미도 고려하지만,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문 감독. 정치적인 것에 가려진 사회적 메시지를 찾는다는데, 그것은 바로 사람이었다. 모든 제약을 뛰어넘는 무한한 감정과 인간미의 힘을 찾아보자고.

문감독은 1991년 남한의 대표선수, 현정화씨를 만나 새벽까지 대화를 나누며 다음 날까지도 남아있는 한 마디는 죽기 전에 분희 언니를 꼭 한 번 만나고 싶다는 말이었다. 그 순간, 현정화, 리분희 선수가 느꼈을 인간적인 감정을 파헤치자고 결심했다. 어떻게 두 탁구선수의 고뇌를 관객들과 나눌 수 있을까를 탐구했다고 한다.

‘지바 세계탁구선수권 대회’ 당시 초등학생이던 문 감독이 만든 〈코리아〉는 2년 걸려 완성되었다. 영화를 제안했던 제작사와의 인연도 우연이 아니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그린 영화〈화려한 휴가〉의 촬영 때부터 계속 같이 일을 해 오며 성실함과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영화 ‘코리아’에서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그 날처럼, 언제면 탁구공으로 남북 대표 선수들이 정치적 이념을 초월하여 활짝 웃으며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인간의 권리를 마음껏 누리면서 같은 한국인으로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그 날이.

1990년대 초 나도 대학생 딸아이를 따라 두세 번 영화 촬영을 해 본 적이 있다. 한두 장면을 찍고 또 찍고 대기하며 새벽녘에야 집에 왔다. 영화제작 과정을 직접 경험하며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의 노고를 보았다.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세상에는 쉬운 일이 없다고. 엑스트라 배우였던 나는 촬영하면서 지쳐버린 하루였다.

한 편의 영화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분들, 작가는 대본을 쓰고 아름다운 촬영을 위하여 무거운 사진기를 들고 다니는 분들, 세트 장치를 하는 분들도. 각 분야의 예술인들과 땀이 만드는 종합예술이라고. 지금도 어디에선가 한 소녀와 소년은 문 감독처럼 우리들이 모르는 미래를 향하여 멋진 꿈을 골똘히 꾸고 있겠지.

[필자 소개] 교포월간지 ‘피플 오브 샌디에고’ 주필 역임, 수필집 ‘레몬향기처럼(2007년)’과 ‘샌디에고 암탉(2010년)’을 출간했고 한국문인 및 미주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재미수필가. 샌디에고 라디오코리아에서 ‘문학정원’ 방송 연출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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