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준그림편지-3] 3.1절, 님의 침묵
[김봉준그림편지-3] 3.1절, 님의 침묵
  • 김봉준 <오랜미래신화미술관 관장∙작가>
  • 승인 2014.02.2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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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일절의 침묵> 유화 50호, 김봉준 작

봄날이 오면 꽃봉오리 피어나고 버들강아지 수양버들 푸르게 물오르는 데 저는 어쩔 수 없이 3.1절부터 생각납니다. 어디 저 뿐이겠습니까. 우리 민족의 비극사는 외면한다고 피해지는 게 아니니 지금 여기 우리네 삶 속에서도 3.1의 역사는 고스란히 이어져 있습니다. 고래심줄처럼 질기디 질긴 인연처럼, 겨레의 봄에는 아직 우울한 님의 침묵이 감도는 것 같습니다.

일제시대에 성 노예로 끌려가신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도, 역사교과서 논쟁도, 분단의 아픔과 통일론도, 민주주의 역사도, 모든 갈등사의 싹이 3.1운동과 연결돼 있습니다. 우리는 비극의 근대사를 피할 수 없는 숙명을 지녔습니다. 지금 월드코리안이 형성된 것도 근대 수난사의 결과인 것을 누군들 모르겠냐만은, 오늘은 3.1절을 문화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구한말 동학농민운동이 일본군에게 패하며 조선 전역에 걸친 동학마을은 초토화 되었습니다. 그 후 1910년 일제의 강점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사에서 한 번도 나라를 잃어버린 역사가 없었습니다. 9년 후 3.1운동과 의병운동이 다시 일어나고, 그 결과 한반도에서는 무력투쟁이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아플 수밖에 없는 봄의 역사는 더 깊어집니다. 정치·사회의 식민 정민정책은 곧 문화적 식민 정책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름도, 성도, 문화도, 내면까지 식민지화가 이뤄진 시기입니다.

나라 잃고 뿌리 뽑힌 겨레는 유랑민이 되어 연해주, 북간도, 하와이, 멕시코 등지로 떠났습니다. 서슬퍼런 일제 통치하에서 국민들은 침묵하거나 친일세력이 됐고, 연해주 만주벌판으로 이주해 새 터를 잡고 살거나, 항일투쟁에 투신 했습니다. 그러나 식민지 땅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겨레는 내면의 침묵을 강요당하는 굴종을 견뎌야만 했습니다. 이 때 부르게 된 아리랑은 다음과 같습니다.

말께나 하는 놈 감옥소 가고
아께나 나는 년 유곽에 가고
힘께나 쓰는 놈 공동산 간다.

▲ <아리랑 고개>목판화 김봉준 작

일제 강점기에는 침묵이 미덕이 됐고,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겨우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신문물은 일제가 전해주었고 근대 사업은 일제의 방침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민들은 왜곡된 근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곡된 근대화는 식민지 백성의 의식에도 반영됐습니다. 일제 식민지하에서의 생활과 전쟁으로 피해의식이 생기면서 침묵과 굴종의 문화가 만연했습니다. 우리 겨레만의 자신감과 신바람 문화는 사라지고 우울한 한의 문화가 자리잡은 시기입니다.

이때 뚜렷한 문화적 이중성이 나타납니다. 사회적 신분과 인격을 형성하는 사회정체성(페르소나, 일종의 사회적 가면)과 혈연적·지역적인 정체성의 원형문화가 서로 극심하게 분리됐습니다. 일제 식민치하처럼 문화적 이중성이 사람들의 내면까지 뚜렷하게 나눠진 적은 없었습니다.

위 그림은 3.1운동을 상징한 그림입니다. 사회적 가면을 쓴 식민지 겨레의 아픔과 제국주의 폭력에 저항하는 겨레의 본능적 저항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이중모순의 혼란스러운 정체성과 민족의 한을 풀려는 만세운동에 주목해서 3.1절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동학농민전쟁, 3.1절, 6.25전쟁은 근대사 3대 비극사입니다. 이 비극의 역사에서 얻고 싶은 문화적 교훈이야말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민족문화 순혈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공동체마저 사라지는 상황에서 자기중심 없는 혼란은 문화정체성의 붕괴를 뜻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다원주의를 인정하면서 공존의 상식이 성립하고 전통문화에서 심층문화의 정체성은 재정립해야합니다. 받아들이는 것은 좋은 데 자기중심은 놓치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 겨레는 일제 식민지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다중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이주노동자의 대량 유입과 경제개방 및 세계화로 문화다중성은 더욱 더 본격화 되었습니다. 문화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공생이 불가능한 시대인 것입니다.

3.1절을 맞이하여 한반도 땅에 사는 사람들의 문화 정체성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월드코리안 시대에 온갖 세계문화 속에서 문화교류를 하며 살아야 하는 데 다양성을 인정하되 공존하는 유연한 문화가 요구됩니다. 말과 글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시각 및 시적 언어인, 겨레를 상징하는 문화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침묵의 시대에 말로 다할 수 없는 울분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의 미 말입니다.

3.1절의 침묵은 문화적 혼란이 극심한 시대에 은유의 힘으로 자기 정체성을 지켜왔다고 생각합니다. 3.1정신이 우리에게 전하는 인간 존엄성과 자기 정체성을 살려나가야 합니다. 대립을 넘어 상생과 조화를 상징한 태극이야말로 3.1운동의 기본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3.1절 조상님의 오랜 침묵은 다시 신바람으로 꽃 필, 새 봄날이 올 것입니다.

▲ <소나무 군락> 유화 50호, 우리 겨레의 상징이기도 한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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