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왕실의 Queen's Service Medal 받았어요”
“영국왕실의 Queen's Service Medal 받았어요”
  • 이호근 기자
  • 승인 2014.06.16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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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지관 빅토리아대학교 교수

▲ 박지관 빅토리아대학교 교수
“18년 전 처음 뉴질랜드에 갔을 때 영어 못하는 동양인인 저를 도와주신 분들이 많았어요. 만약 내가 한국에서 한국말을 못하는 베트남인을 만났다면 이렇게 도와줬을까 싶었죠. 그 뒤로 자리를 잡으면 내가 도움 받은 것처럼 아무 대가없이 봉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지관 빅토리아대학교 교수를 만난 건 6월10일 민주평통 해외지역회의가 열리는 홍은동 그랜드 힐튼호텔에서였다. 그는 민주평통 뉴질랜드협의회 자문위원 자격으로 이 자리에 참석했다.

18년 전 결혼 2년차의 신혼부부였던 그는 아무런 계획 없이 아내와 함께 무작정 뉴질랜드로 갔다. 처음 간 곳은 오클랜드. 이미 3만 명의 한국인이 살던 이곳에서는 영어 한 마디 필요 없이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오클랜드의 한인들은 젊은 그에게 “영어 안하고 가이드만 해도 먹고 살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는 “인생은 마라톤인데 해야 할 숙제를 미루면 안된다”는 생각에 영어공부부터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곤 뉴질랜드 북섬을 일주하며 새롭게 정착할 곳을 찾아다닌 끝에 그는 한국인도 조금 밖에 없고 인종차별이 별로 없는 웰링턴에 자리잡고 일 년 반 동안 영어 공부를 했다. 그는 웰링턴을 “바람이 좀 있어 도시가 항상 깨끗하고, 캐피탈 시티로 전 세계에서 다 오기 때문에 문화 충돌과 인종차별이 별로 없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고, 교육하기에도 좋은 곳”이라고 소개했다. 현재 800명 정도 한국인이 거주하는데 한국 기업보다는 현지 사회에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한인 사회 역시 크지 않다.

영어 공부에 1년 반을 투자한 뒤 Massey University에서 컴퓨터를 공부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뉴질랜드 총리의 장학금을 받기도 했던 그는 졸업 후에 프로그래머로 일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1년 만에 그만두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다 장학금의 인연으로 해밀턴의 마오리 대학교인 Te Wananga o Aotearoa에서 강의를 요청받고 최초의 아시아인 IT lecturer로 마오리와 퍼시픽 아일랜더 대학생들을 가르친 것을 계기로 빅토리아 대학교에서 정보경영학을 강의하게 됐다.

빅토리아대학에 강의를 나가면서 어느 정도 생활에 안정을 찾자 그는 처음 이민 당시 결심했던 ‘대가없는 봉사’를 실행에 옮겼다. “이민자로 직장생활만 열심히 하는 것보다 그 사회에서 봉사활동을 해야 진정한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는 “내가 겪은 어려움을 후세들이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현지 주류사회에서 전문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한인 1.5세, 2세들이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는 ‘김치 클럽’의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 내의 마이너리티, 마오리 등 힘들어 하는 학생과 한인 학생들의 상담도 맡는다. 또 병원을 찾는 한국 독거노인들에게 통역을 해준다. 그는 “아이들이 크면 할머니만 남겨두고 다른 나라로 가기 때문에 의외로 한인사회에 독거노인이 많다”면서 안타까워했다.

한인사회뿐만 아니라 뉴질랜드 현지의 공증과 수색영장을 담당하는 치안판사를 7년간 해왔다. 작년에는 1년 반의 준비를 마치고 ‘한글학교 기부재단’을 설립해 30년 간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던 한글학교를 제대로 서포트 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다지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는 사이 주류사회에서도 인정받아 키위은행 CEO와 웰링턴 시장으로부터 Local Hero Medal을 받고, New Zealanders of the Year Award의 Semi-Finalists들 중의 한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영국 왕실의 Queen's Service Medal을 받았다. Queen's Service Medal은 영국의 명예시스템으로 자신의 직업과 관계된 일이 아닌 무료 커뮤니티 봉사를 오랫동안 했음을 인정하고 치하하는 의미로 주는 상이다. 비밀추천을 받으면 총리와 장관, 국회의원들이 모여 의논하고, 여기서 결정되면 다시 영국 왕실로 보내져 승인받게 된다. 영국의 기사 작위 앞에 Sir를 붙일 수 있듯, 이 메달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이름 뒤에 QSM을 붙일 수 있는 영예로운 상이다. 그는 “젊은 나이에 QSM을 받은 것은 앞으로 더 봉사하라는 뜻으로 알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현지에 살면서 정확한 구성원으로서 오피니언을 만들어가야 우리가 어떤 의견을 내세웠을 때 정부가 한국이나 북한을 대하는 관점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도 차세대에게 가치있는 현지 구성원으로의 삶을 보여줘야 한다고 멘토링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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