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신문, '위안부 강제연행 인정'한 과거기사 취소해 논란
아사히신문, '위안부 강제연행 인정'한 과거기사 취소해 논란
  • 이종환 기자
  • 승인 2014.08.08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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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연행 없었나?...일본정부나 구 일본군 기록에서 찾아낼 수 있을까?

아사히신문이 “위안부를 강제연행했다”는 과거 기사를 취소해 논란을 빚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8월5일 “ ‘제주도에서 연행’, 증언 뒷받침 못해 거짓으로 판단”이라는 타이틀로 기존보도기사를 취소한다고 알렸다.

신문은 “일본 식민지였던 조선에서 전쟁중 위안부로 삼기 위해 폭력을 사용해 강제로 여성을 끌고 갔다는 내용의 저서를 내고, 집회에서 증언한 남성이 있었다. 아사히신문은 1980년대에서 90년대 초에 기사들에서 이 남성을 다뤘지만, 증언이 거짓이라는 지적이 있었다”고 밝히며, 이를 재취재한 결과 허위라고 판단해 취소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신문에 따르면 문제의 남성은 요시다(吉田淸治)씨다. 그는 자신의 저서 등에서 야마구치현 노무보국회 시모노세키지부 동원부장으로 일용노동자들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은 요시다씨의 증언으로 모두 16회의 기사를 내보냈다고 한다. 1982년 9월2일 오사카본부판 사회면에 첫 기사를 내보냈다.그가 오사카에서 강연하며 “제주도에서 200명의 젊은 조선인여성을 잡아들였다”고 한 내용을 보도한 것. 이 기사를 작성안 오사카본부 사회부기자(66세)는 “강연에서의 얘기 내용이 구체적이고 상세해서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90년대 초에는 다른 신문사도 집회  등에서 증언하는 요시다씨를 기사로 다뤘다.

하지만 1992년 4월30일 산케이신문은 조간에서 제주도에서 사실을 조사한 결과 요시다씨의 증언에 의문이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다. 다른 주간지도 요시다씨의 증언이 ‘창작의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산케이신문 보도 후 아사히신문 동경본부 사회부 기자(53)가 데스크의 지시를 받아 요시다씨와 만나 증언을 뒷받침할 관계자나 자료를 제공할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했다.

97년 3월31일 특집기사 취재때 동경본부의 사회부기자(57)는 요시다씨를 만나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허위가 아니냐는 보도가 있다는 점을 전화로 묻자 “체험한 그대로를 적었다”고 답했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도 취재를 했으나 요시다씨의 증언이 허위라는 확증이 없었기 때문에 ‘진위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그후부터 아사히신문은 요시다씨를 더 이상 기사로 다루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자민당의 아베신조 총재(현 총리)가 2011년 11월 일본기자클럽 주최 당대표 토론회에서 “아사히신문의 오보로 인해서 요시다 같은 사기꾼이 쓴 책이 마치 사실처럼 일본내에 나돌아 문제가 크다”고 발언했다. 이를 바탕으로 일부 신문과 잡지가 아사히신문 비판을 반복했다.

이에 따라 아사히신문은 올해 4-5월 제주도에서 70대 후반에서 90대 나이에 이르는 인사 40명의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강제연행했다는 요시다씨의 기술을 뒷받침할 만한 증언은 얻을 수 없었다. 건어물 제조공장에서 수십명의 여성을 끌고갔다고 하는 북서면 마을에서도 어물을 다루는 공장은 마을에서 하나밖에 없었다. 경영을 맡아온 사람(작고)의 아들은 “캔을 만들고 있다. 여종업원이 끌려갔다는 얘기를 아버지로부터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요시다씨의 저서를 근거로 해서 제주도를 조사한 한국정신대연구소 전 연구원인 강정숙씨는 “여러곳에서 여러 노인들의 얘기를 들었으나 요시다씨의 증언 내용과 같은 것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요시다씨는 저서에서 “1943년 5월 군의 동원명령으로 제주도에 갔고, 명령서에 적힌 내용이 부인(작고)의 일기에 남아 있다”고 썼다. 하지만 이번에 요시다씨의 장남(64)한테 취재한 바, 부인은 일기를 적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했다. 요시다씨는 2000년 7월 사망했다고 한다.

요시다씨는 1993년 5월 요시미(吉見義明) 주오대 교수와 면담할 때 “(강제연행했다)는 일시와 장소를 바꾼 경우도 있었다”면서 동원명령서 내용이 적힌 일기를 제시하는 것도 거절했다고 한다. 전시중 조선반도의 동원 문제를 연구한 소토무라(外村大) 동경대 교수는 요시다씨가 소속했다는 노무보국회는 후생성과 내무성의 지시로 만들어진 조직이라면서 “지휘계통으로 봐서 군이 동원명령을 내는 것도, 직원이 직접 조선으로 파견되는 것도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요시다씨는 강제연행했다는 1943년 5월당시 제주도는 육군부대 본부가 군정을 펴고 있었다고 설명했으나 이 점에 대해서도 나가이(永井和) 교토대교수(일본근현대사)는 일본군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에 육군이 대부대를 집결한 것은 1945년 4월 이후부터라고 지적, “기술 내용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같은 내용을 소개한 뒤 아사히신문은 ‘독자여러분께’라는 글을 덧붙여“요시다씨가 제주도에서 위안부를 강제연행했다는 증언은 거짓이라고 판단해 (과거 관련) 기사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신문은 당시 거짓 증언을 꿰뚫어보지 못했다. 제주도를 재취재했으나 증언을 뒷받침할 얘기를 듣지 못했다. 학자들을 상대로 한 취재에서도 증언의 핵심부분에 대해 모순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기사 취소를 공식화했다.

아사히신문의 돌연한 기사 취소로 인해 종군위안부 강제연행에 대한 논란이 다시 점화될 전망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이 아닌 강제연행자의 증언이나, 이를 뒷받침할 일본정부나 구일본군의 공식 자료가 절실한 시점이다.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서 이를 증명할 내용의 자료가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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