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 복수국적 논란, ‘홍준표법’이 원흉(?)
선천적 복수국적 논란, ‘홍준표법’이 원흉(?)
  • 고영민 기자
  • 승인 2014.10.06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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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지령 100호 기념 정책토론회… “선천적 복수국적, 한인2세 발목 잡고 있어”
개악 논란 도마에 오른 ‘홍준표 법’… 정부 관계자 “형평성·국민정서 고려해야”

“한국 가자고 비자를 받으러 갔더니 비자는 주지 않고 대신 여권을 만들어야 한다고 해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선천적으로 한국인이기 때문에 미국 여권이 아니라 한국 여권으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뉴욕한인식품협회 이종식 회장이 본지 정책토론회에서 울분을 터뜨렸다. 그는 뉴욕총영사관에서 당한 황당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의 아들은 1989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는 아들이 모국 한국을 알았으면 싶었다. 한국어도 익히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연세대 어학원 입학수속을 밟았고, 인천행 비행기표도 샀다.

하지만 뉴욕한국총영사관에서 한국입국 비자를 신청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아들이 시민권자이지만 ‘선천적 한국인’이어서 한국여권으로 입국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회장이 미국시민권을 받기 20일 전에 아들이 태어난 게 문제였다. 태어날 때 부모의 국적에 따라 아들의 국적도 결정되는 우리의 ‘혈통주의’ 국적법 때문이었다.

그럼 여권을 만드는데 얼마나 걸리느냐고 묻자 최소 3개월이 걸린다는 답을 받았다. 당장 어학원이 개학하는데 빨리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묻자 영사관측은 없다는 대답이었다. 결국 그의 아들은 한국행을 포기했다. 모국 사랑으로 모국행을 시도했으나 선천적 국적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에서 태어난 2세들 가운데 선천적 국적자들이 적지 않다. 부모가 한국국적인 상태에서 태어난 자녀들이다. 이들은 한국과 미국국적을 동시에 갖는 ‘선천적 복수국적자’다. 미국은 부모의 국적과 관계없이 아이가 출생한 지역에 따라 국적을 정하는 ‘속지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나, 대한민국은 ‘속인주의(혈통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국적법에 따르면, 선천적 복수국적자인 김 모 씨의 자녀는 만 18세가 되는 해의 3월31일 이전까지 국적이탈신고를 할 수 있지만, 이 기간이 지난 경우는 병역의무를 반드시 해소해야만 한국국적을 이탈할 수 있다. 병역의무 이행의 유무에 따라 국적이탈의 자격 조건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선천적 복수국적에 대한 논란은 혈통주의라는 헌법적 원리를 떠나 결국 ‘병역문제’에 그 핵심이 있어 보인다.

▲ 월드코리안신문, 김성곤 국회의원실, 한국이민법학회 등은 10월6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선천적 복수국적, 무엇이 문제인가?’란 주제로 월드코리안신문 지령 100호 기념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사례별로 온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미국에서 취업하려는 한인2세들이 자신도 모른 채 부여된 선천적 복수국적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 재미동포사회의 일반적인 의견인 듯하다. 또, 병역제도를 포함한 한국의 국적법에 대한 홍보부족으로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한인가정의 자녀들이 미국 주류사회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특히, 원정출산에 의한 국적 이탈을 제한하고자 2005년 개정된 국적법, 이른바 ‘홍준표 법’이 개정 취지와는 달리 한인2세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시 홍준표 국회의원이 발의해 개정된 국적법은 원정출산자, 즉 ‘직계존속이 외국에서 영주할 목적 없이 체류한 상태에서 출생한 자’는 18세가 되는 해 3월말 이전이라도 병역이 해소된 경우에만 국적이탈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원정출산에 대한 범위가 명확하지 않기에 애꿎은 한인2세들이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 재미동포들의 항변이다.

▲ 전종준 워싱턴 로펌 대표 변호사.

월드코리안신문, 새정치민주연합 김성곤 국회의원, 한국이민법학회, 전미주 선천적 복수국적법 개정추진위원회, (사)한민족평화통일연대 등은 10월6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선천적 복수국적,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월드코리안신문 지령 100호를 기념하는 취지로 마련된 이날 토론회에서 전종준 워싱턴 로펌 대표 변호사는 ‘해외 한인 2세 공직 진출 막는 한국 국적법’이란 주제를 발표하며, “가수 유승준 논란 와중에 편법적 병역기피와 원정출산을 막고자 ‘홍준표 법안’이 통과됐으나, 선천적 해외동포 2세에게까지 엉뚱하게 확대·적용돼 한인2세의 미 주류사회 공직 진출에 불이익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전 변호사에 따르면, 미 사관학교 입학이나 공직에 진출할 때 제일 먼저 신원조회를 하는데 복수국적을 갖고 있거나 가진 적이 있냐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는 “선천적 복수국적자는 국적이탈을 하든, 하지 않든 신원조회에서 ‘현재 복수국적을 갖고 있거나 혹은 가진 적이 있다’는 것에 표시를 해야 하며 이로 인해 지속적인 신분확인이나 주요 보직 발령 및 진급상의 보이지 않는 장벽 등 사실상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고 주장했다.

선천적 복수국적 문제와 관련, 지금까지 네 번의 헌법소원을 제기해 온 전 변호사는 케냐국적이 자동말소 돼 대통령 출마에 아무 지장을 받지 않았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사례를 들며 △해외거주 선천적 복수국적자들에게 사전적·개별적 (국적선택) 통지절차 명시 △후천적 외국국적자의 한국국적 자동 상실 규정을 선천적 복수국적자에게도 적용(원정출산 방지 차원에서 ‘출생 당시 부모 중 한 사람이 영주목적으로 외국국적이나 영주권을 가져야 한다’는 단서) 등을 제안했다.

‘홍준표 법’과 관련해 “1998년 개정된 대통령 시행령 16조에 의하면 대한민국 호적에 입적된 남자들의 경우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국적이탈이 가능하도록 했고, 호적에 올리지 않은 선천적 복수국적자는 병역의무와 무관했다”며, “홍준표 법안 등으로 삭제된 1998년 대통령 시행령을 새롭게 입법화하는 것이 선천적 복수국적의 대안이며, 글로벌 시대에 맞는 국적법이다”고 강조했다.

▲ 김성곤 국회의원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김영진 전미주 선천적 복수국적법 개정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선천적 복수국적 논란은 대다수 국가와 달리 모병제가 아닌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나타나는 복잡한 단면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선천적 복수국적이 병역문제에 초점이 맞춰지면 병역의무가 없는 여자의 경우에는 사실상 무의미한 법이다”며,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출생신고를 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별한다든지, 정부의 홍보부족과 개인적 정보부족으로 18세 때 국적 선택기회를 놓쳐버린 해당자들에게 별도의 국적 선택기회를 제공하는 부칙을 마련하는 등 보다 현실적인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오히려 복수국적 확대 원하는 재외동포들이 더 많다”
“혈통주의, 근본적 검토… 장기 거주하는 외국인 처우는?”

하지만, 법무부와 병무청 관계자들은 전종준 변호사의 주장과는 사뭇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토론에 나선 정부 관계자들의 공통된 주장은 병역부담 평등의 원칙과 국민정서를 고려한 신중한 접근이었다. 김진성 법무부 국적과 사무관은 “국민의 의무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병역이며, 홍준표 의원이 발의한 개정 국적법은 병역기피를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추진된 것”이라고 전제한 뒤, “18세의 3월이 지났더라도 병역의무를 이행하거나 제2국민역으로 편입 또는 병역면제를 받음으로써 병역문제를 해소한 때에는 자유롭게 국적을 이탈할 수 있고, 입영의무 등이 해소되는 만38세 이후에도 국적이탈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사진 왼쪽부터 김진성 법무부 국적과 사무관, 이연우 병무청 자원관리과 사무관, 차규근 법무법인 공존 대표, 김영진 전미주 선천적 복수국적법 개정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이어 김 사무관은 “극히 소수에 불과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 일반국민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지 의문스러운 점도 있다”며, “국적 이탈 후 국내에 입국해 활동하는 경우가 많은 점으로 볼 때 각종 권리는 누리면서 병역의무는 저버리는 사례가 계속적으로 발생할 우려가 있음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또한, “재외동포 대부분이 복수국적 확대를 원하지만 이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며,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한국국적 자동 상실 제도는 오히려 재외국민의 국적취득 기회를 조기 차단시키는 부정적 측면이 있고, 민족적 유대가 강한 국민정서에도 맞지 않는 정책이다”고 덧붙였다.

이연우 병무청 자원관리과 사무관과 김태화 입영동원국장도 ‘홍준표 법’ 이전부터 병역의무자에 대한 국적이탈 제한이라는 기본 골격은 꾸준히 유지돼 왔다며, 병역의무 부과의 형평성 차원에서 일정범위 내에서 국적이탈의 자유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반면, ‘법무법인 공존’의 차규근 대표는 “혈통주의 원칙이 세계화에 따른 이주가 많이 이뤄진 지금의 시점에도 여전히 고수돼야 하는지 근본적인 검토를 한 번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다른 한편으론 비록 대한민국 국적은 없지만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 장기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에 대한 처우, 그리고 장기거주 외국인들에게서 태어나는 아이들의 국적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도 함께 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 석동현 한국이민법학회 회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사회자로 나선 김성곤 국회의원은 “선천적 복수국적자인 한인2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불합리하고 억울한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병역관리 측면에서 형평성에 맞게 조율해야 하는 점도 이해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석동현 한국이민법학회장은 “선천적 복수국적자에 대한 모든 논의의 초점은 병역에 있을 수밖에 없으며, 문제는 국적이탈을 자유롭게 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데에 있다”며, “그 해법을 국적법 자체에서 찾는 것보단 병역제도에서 찾는 것이 현명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토론에 참여한 외교부의 영사지원팀 관계자는 해외 우수인재(각 분야 전문가) 등 특별귀화대상자를 선정하는 ‘국적심의위원회’처럼 별도의 기구를 마련함으로써 선천적 복수국적 문제 등 재외동포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즉, 불가피하게 국적을 이탈하지 못한 한인2세들이 거주국에서 생활하는 데에 불이익을 겪지 않도록 국적이탈 허가 등을 검토하는 기능을 갖춘 심의기관의 설립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재미동포들은 선천적 복수국적을 포기하는 데에 국적 상실신고서, 결혼증명서 번역, 자녀 출생증명서 번역, 자녀의 국적 이탈 신청서를 함께 제출해야 하고 그 결과를 얻는 데에 약 1년 정도가 소요되는  등 절차의 까다로움을 지적하면서 병무청·법무부·외교부 등의 관계기관들이 미국에 직접 가서 조사해 현지 실태를 제대로 파악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정책토론회에서는 김성곤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이종환 월드코리안신문 대표, 정광일 새정치민주연합 세계한인민주회의 사무총장, 석동현 한국이민법학회 회장, 양창영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 등을 비롯해 세계한인의날과 세계한인회장대회에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재외동포 30여명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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