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아르헨티나 침묵의 시위와 전망
[해외기고] 아르헨티나 침묵의 시위와 전망
  • 박채순<정치학 박사, 존에프케네디 대학>
  • 승인 2015.02.23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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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채순<정치학 박사·존에프케네디 대학, 국립 라플라타 대학교 KF 객원 교수>
2월18일 오후 6시30분부터 아르헨티나 국회 앞 광장에서 대통령궁 앞 5월의광장에 이르는 도로에 수많은 시민들이 운집했다. 가끔 천둥을 동반한 폭우 속에도 시민들은 우산을 받쳐 들거나 아예 쏟아지는 비를 흠뻑 맞으면서도 국회광장에서 5월의광장까지 1.5km를 행진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시 경찰 추산 40여만명, 연방경찰 추산 5만명의 시위대가 1월19일, 그의 자택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고 알베르토 니스만(Alberto Nisman) 검사의 사망 30일을 기해, 그를 애도하고 크리스티나정부에 침묵으로 항의하는 행진이었다. 이날의 시위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카피탈뿐만아니라 지방도시인 꼬르도바, 마르델플라타, 멘도사와 로사리오 등 전국의 대도시에서 동시에 이뤄졌다.

워싱턴, 파리, 뉴욕, 런던, 시드니, 마드리드 등의 주요도시에서도 아르헨티나 관련자들이 함께했다는 외신보도가 나왔으며, 세계에서 25만건의 트윗이 이 침묵의 시위를 언급했다고 전해졌다.

크리스티나 대통령과 유력 대선주자인 여당의 다니엘시 올리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지사는 이 시위 전에 핵발전소 건설을 축하하는 행사에 참여했고, 크리스티나는 그의 62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남쪽지방으로 가버렸다. 그러나 이 시위대에는 니스만 검사의 가족과 야당 대선주자들인 세르히오 마사, 마우리시오 마끄리, 훌리오 코보스, 산즈와 카리오 등이 선두에 서서 ‘정의와 진실’을 주창하는 침묵의 시위에 함께 했다.

▲ 니스만 검사를 추모하는 침묵의시위[사진출처=LA NACION / Santiago Filipuzzi]

시위대가 거리로 나선 이유는

1994년 7월18일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파스테우르길에 위치한 아르헨티나 유대인상조회(AMIA: Asociación Mutual Israelita Argentina) 건물에 폭발물을 실은 차량이 들이닥쳐 건물을 폭파하여, 85명이 사망하고 300여명이 다친 사고가 있었다.

이 사건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완전히 해결을 못하고 있는 가운데, 2004년부터 이 사건조사에 참여한 알베르토 니스만(Alberto Nisman) 특별검사가 이란의 배후 아래 레바논 무장 세력인 헤즈볼라가 테러를 저질렀다고 발표하고 이란당국자들을 인터폴을 통해 수배했다.

더구나 니스만 검사는 페르난데스 대통령과 외무부 장관 엑토르티 메르만이 이란과의 관계정상화로 석유를 확보하려고, 이란당국자들에 대한 인터폴 수배령 철회를 시도하는 등 조사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내용을 담은 300여쪽 가까운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했고, 국회하원위원회(la Comisión de Legislación Penal de la Cámara de Diputados)의 비공개청문회를 하루 앞둔, 2015년 1월18일 푸에르토 마데로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시체로 발견됐다.


결과적으로 이 의심스런 죽음 앞에 자살이냐 타살이냐가 문제가 됐다. 이 사건을 담당한 비비아나 페인 검사가 니스만 검사의 사망에 타인이 개입한 정황을 찾지 못했다는 부검 결과 등을 토대로 자살로 인정하였으나, 그 후에 많은 논란이 있었다.

여기에 그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 등에 대한 체포영장 초안을 작성한 내용이 알려지기도 했다. 그 후 정부쪽 주장과 그 주장에 맞선 불리한 증언이 나오는 등 공방이 계속되어, 결국 시민들이 정부의 조치에 의심을 갖고 정의와 진실을 외치는 침묵의 시위를, 엄청난 시민이 참여하여 실시한 것이다.

향후전망

대의민주주의제도 하의 정부에서 국민은 그들의 의사를 투표를 통해서 표시한다. 그러나 국민의 위임을 받은 정부가 그들의 의사와 다른 방향으로 가거나 나쁜 정책을 구사할 때는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의 의사를 표현한다. 국민소환, 시위 등을 통해서 집권권력이나 대기업 등 거대한 힘의 집단에 반대의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위는 공론장을 통한 공화주의와 연관된 민주주의 제도 하의 국민의 의사 표시로 보아야할 것이다. 한국에서도 군사독재 시절의 각종 데모와 2002년 미군장갑차에 깔려 사망한 미선, 효선의 죽음에 대하여 미국에 항의하고 희생자를 추모한 촛불시위,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한 반대 촛불시위와 2008년 광우병 쇠고기수입에 반대했던 이명박 정부시대의 촛불시위가 그런 예다. 대도시의 광장에서 이뤄지는 이러한 시위는 민주주의 제도의국 가에서 공론장을 만들고 시민들의 여론을 환기시킨다.


아르헨티나에서도 수차례의 다양한 시위가 있었다. 특히 일찍부터 5월 광장에서 5월의광장 어머니회 등 인권단체가 실시한 은시위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졌다. 특히 2001년 시민들이 5월의광장에 모여 실시했던 냄비시위(Cacelorazo)는 당시 델라루아 대통령이 임기의 반만을 채우고 물러났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비록 이번의 아르헨티나 우산 속 침묵의 시위가 정부의 표현처럼 ‘정권을 전복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었을지라도, 정부에게 ‘정의와 진실’을 요구하고, 국민 스스로 힘을 모아 언제든지 정부를 감시하고 그들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또 하나의 역사적인 시민들의 민주적인 시위로 기록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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