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만평(三江漫評)-62] 수목장
[삼강만평(三江漫評)-62] 수목장
  • 정인갑<중국 전 청화대 교수>
  • 승인 2015.03.02 0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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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를 화장한 후 골회를 나무뿌리에 묻는 장례 방법을 수목장이라고 한다. 한국은 화장 장례를 보편적으로 행한지 약 30년간이며 최근부터는 수목장이 성행할 조짐이다. 어느 포럼에 참가하니 강연 주제가 수목장이었다. 한 40대 초반의 y군이 수목장 사업을 시작했으며 이 업종이 대단히 유망하여 앞으로 엄청난 돈을 벌 것이라고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중국의 화장문화는 한국보다 100년 이상 앞섰으며 화장문화의 산전수전을 다 겪어보았다. 필자도 직접 보고 들은 것이 많은바 화장문화, 특히 수목장에 관하여 일가견을 말해 보고자 한다.

1974~5년 중국 전역에는 소근장(小靳莊)을 따라 배우는 바람이 불었다. 소근장은 천진시 교외의 한 농촌 마을인데 모택동의 부인 강청이 그곳에서 낡은 습관을 타파하고 혁명전통을 계승하며 새로운 생활방식을 창도하는 시험을 하여 큰 ‘성과’를 이룩하였다. 그 경험을 전국으로 보급시킨 것이 이른바 ‘소근장을 따라배우는 운동’이었다.

그 운동의 한 내용이 장례문화의 개혁이다. 우선 이미 있는 묘소를 다 파헤쳐버렸다. 해골을 많이는 땅 속 깊이 묻어버리거나 강물에 던져버렸다. 다음은 시체를 강제로 화장하는 것이다. 화장을 하지 않으면 혁명화에 역행한다며 투쟁하므로 누구나 할 수 없이 화장을 하여야 했다. 말하자면 중국은 1975년부터 거의 100%가 시체를 화장하였다.

어떤 사람은 화장을 도저히 수긍할 수 없어 운명한 후 소문을 내지 않고 시체를 밭에다 묻었다. 물론 무덤의 표식이 나게 하면 안 된다. 수십 년이 지나 묻은 일을 관장한 사람이 없어진 후 밭에 묻은 시체의 위치를 알 수 없게 되어 여러 군데를 파서야 겨우 해골을 찾을 수 있었다. 그사이 제사를 지낸 곳에서는 다른 사람의 시체가 나왔으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필자 마을의 조선족 중에 이런 일이 있었다. 지원군으로 6·25전쟁에 참가하고 돌아오니 부친은 이미 세상을 떠났으며 벙어리 어머니가 산소를 알려주었다. 15년간 꼬박꼬박 성묘를 하며 열심히 제사를 지냈다. 어머니가 사망하여 몇 해 지난 후 합장하고자 부친의 무덤을 파보니 웬 종발노친의 신발이 나왔다. 이 일로 그는 평생을 한탄하며 살아야 했다.

유교문화는 혈연문화이며 가족주의이다. 자기 선친의 묘지라며 성묘하고 제사지낸 곳이 다른 사람의 묘지라면 말이 아니다. 전쟁 등의 원인으로 이런 일이 생기는 것도 원통한데 태평성세에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선택한 곳이 고압전선대의 밑이다. 그곳에 묻으면 위치를 착각할 우려가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선택한 곳이다. 많은 사람이 같은 생각을 품고 그곳을 주목하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전선대 밑을 파니 이미 시체가 있어 그 옆의 여러 군데를 반복 파고서야 선친의 시체를 겨우 묻을 수 있었다. 또한 수십 년이 지나니 같은 전선대의 밑에서 성묘하는 사람이 여럿이 나타난다. 역시 묻을만한 자리가 아님을 인식하게 된다.

농촌은 시체를 자류지에 묻거나(역시 표식이 나면 안 된다) 가택 앞뒤의 나무 밑에 묻는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인구유동이 심해지며 다른 사람이 살던 집에 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역시 남의 조상을 묻은 밭이나 나무 밑에 자기 선친의 시체를 묻게 되며 위의 고압전선대 밑에 묻은 것과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결국 화장하는 수밖에 없었으나 골회를 어떻게 하는가가 문제이다. 한 도시에 하나밖에 없는 화장터의 납골당에 보관하자니 해마다 보관비를 내야하고 먼 길을 몇 번씩 왕복하는데 여간 시끄러운 일이 아니다. 집에 보관하자니 좀 벌레가 생기기도 하며 밤에 부스럭 소리가 나기도 하여 아이들이 무섭다고 야단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생긴 것이 수목장이다. 걸핏 보기에는 이상적인 장례 방법인 것 같다. 자기 선친 골회의 영양을 흡수하여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나니 말이다. 그러나 몇 십 년 행해보니 그렇지도 않다. 도시의 수목장은 지정된 공동묘지에 해야 하는데 청명이나 추석에 성묘가면 여러 집, 심지어 수십 집 사람이 한 나무 밑에 술을 붓는다. 한 나무를 많은 사람에게 팔아먹은 셈이다.

한국인구 5천만에 평균 수명이 70세이면 70년에 5천만이 죽는다. 수목장묘지가 100개, 한 묘지에 나무가 1천 그루라고 해도 모두 수목장하면 70년에 그루당 평균 500명의 골회를 묻게 된다. 말이 아니다. 하여 중국에서는 수목장의 인기가 전혀 없을 정도로 되었다.

그러므로 노인들은 운명할 때 “나의 골회를 강이나 바다에 던져라”라는 유언을 남기기 일쑤이다. 지금 중국 대부분 가문은 선친의 골회를 혹은 화장하자마자, 혹은 화장한 후 1~2년간 보관하였다가 강이나 바다 물에 뿌린다. 한국의 수목장 사업가가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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