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당한 서구, 프로젝트 제76호 열차 <나의 한반도>
유괴당한 서구, 프로젝트 제76호 열차 <나의 한반도>
  • 김운하(본지 해외편집위원)
  • 승인 2015.05.04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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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운하 본지 해외편집위원(오스트리아).

최근 <유로진>(Eurozine)에 소개된 조나단 보우필드Jonathan Boufield)의 <유괴당한 서구(西歐)>(The Kidnapped West)는 참 재미있고 유익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크로아티아 출신 중-동구문화지리사 연구가로 이름이 알려지고 있는 보우필드의 이 에세이는, 발틱 3국에서 폴란드, 체코, 우크라이나, 발칸반도의 국가들에 이르는 중-동구권 작가들이 세계 제2차 대전 종전 70주년을 앞두고 느끼는 그들 나라의 정치, 지리, 심리적 정체의식을 다룬 것으로, 광복70주년과 분단70주년을 맞는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토론의 주제를 준다.

중-동구권(이하부터는 중구로 표기)하면, 먼저 우리들의 뇌리에 떠오르는 것들이 있겠다. 25년전 까지는 소련연방이나 공산권이었다는 것, 그들의 민족사 이래로 끓임 없는 외세의 침략과 속박을 당한 약소국들이라는 것, 세르비아와 코소보간의 분리 동란이 있었던 것 등으로, 한반도와 많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지금은 또한 38선과 같이, 동서 우크라이나의 분단과 대치상태가 세계 제3차 대전발발의 위험으로 되어 있는 상황도, 남북분단의 우리의 상황과도 같다고 할 수 있겠다.

보우필드는 1984년, 거의 30년 전, 체코의 저명 소설가 미란 쿤데라(Milan Kundera)가 <중구의 비극>(The Tragedy of Central Europe)이란 제목의 에세이를 통해 제조한 유명한 담론 <유괴당한 서구>를 서곡으로 소개했다.

하벨(Havel), 프로하스카(Prohaska), 자이페르트(Seifert)등과 함께 유명한 1969년 <프라하의 봄>을 불러일으킨 작가인 쿤데라는 <중구의 비극>을 통해 “중앙 유럽이 외계인들인 비잔틴, 볼셰비키들에 의해 ‘유괴당한 서구(西歐)’로 구성됐을 뿐만 아니라, 유럽대륙의 나머지 부분들은 무엇을 잃은 가를 분명히 알고 있지만, 너무나 깊은 타락의 상태로 되어 있다”고 갈파, 냉전시대 동서 양진영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1968년 체코의 반소(反蘇), 반 공산정권 반대시위를 탱크로 진압한 소련군의 프라하 침공이후 반체제 작가로 탄압받다가 1975년 프랑스로 망명했던 쿤데라는, 파리에서 유럽문화의 운명이 냉전분단의 “나쁜 쪽”에 붙잡혀 있음을 계속 경고했다.

그는 1972년 소련에서 추방당해 미국시민이 돼 나중에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이 되는 조셉 브로드스키(Joseph Brodsky)와 함께 소비에트문화와 그 추락에 관한 예언으로 미국에 까지 널리 알려졌다.

쿤데라의 <유괴당한 서구>이후 30년, 중구는 많이 변했다. 거의 모든 국가들이 유럽연합과 나토(NATO) 속으로 돌아 왔다. 중구라는 어휘는 오늘날 별로 사용되는 일이 없다시피 됐다. 그러나 과연 없어진 것인가? 보우필드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는 중구라는 어휘가 반소의 울부짖음이나 문화소속의 ‘뒤 안뜰’이라는 데서는 소용없게 됐지만, 쿤데라에 의하여 전달된 문화적인 전후관계는 상황이 변화됐다는 이유만으로 필요한 만큼 없어진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헝가리작가 기을기 콘라드(Gyoergy Konrad)는 “중구가 소비에트가 아니고 자유자본주의도 아닌 ‘사회 민주적 공간’을 건설할 유럽대륙의 위대한 마지막 기회를 대표하는 것 이었다”고 주장했다. “비록 이것은 ‘유토피아’ 이지만, 다시 방문해 볼 가치가 있는 지역”이라고 강조했다.

보우필드는 폴란드의 체스라브 밀로스(Zeslaw Milosz), 오스트리아의 피터 한드케(Peter Handke), 헝가리의 피터 에스터하지(Peter Eszterhazy), 체코의 토마스 즈메스카(Thomas Zmeskal), 크로아티아의 밀리엔코 에르고비치(Miljenko Jergovic) 등 중구 저명작가들의 중구관(中歐觀)을 그의 긴 에세이를 통해 흥미롭게 부연했다.

여기서 나의 중요 관심을, 지면의 사정으로, 우크라이나 현대작가 유리 안드루크호비취(Yuri Andrukhovych)의 언행에 국한 할 수밖에 없음을 안타까이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시적이고 드라마적인 관련 작품들의 한 조각과 간결한 언급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중구 작가들의 마음의 진솔한 한 조각을 맛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위로를 걸어 본다.

1960년 우크라이나 이바노-프랑키브스크에서 출생, 소설, 시, 수필창작가로 <안제루스 중구문학상> 등 중요한 문학상들을 수상한 유리는, 폴란드 작가 안드르제이 스타시욱(Andrzej Stasiuk)과 함께 2000년도에 <모야 에브로파>(Moja Europa: 나의 유럽)를 공저, 1989년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의 세대에게 ‘중구의 의미’를 재고할 것을 시도했다.

<나의 유럽>은 극히 정치성을 배제한 시적, 서정적, 자서전적인 고백서이다. 하지만, 어디가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심리적으로, 실제적으로 중구인지를 밝혀준 명작으로 중구지성인들 누구나가 읽고야 마는 애독서가 됐다.

두 사람은 말한다. “러시아와 게르만 사이에서의 생애의 실재는 중구의 역사적 양상의 표지판이다. 중구인 들은 이 두 곳에서 일어나는 경고의 진동을 역사적으로 항상 두려워 해 왔다. 게르만인 들이 오던, 러시아인 들이 오던, 중구인 들의 죽음은 감옥사이거나 집단수용소사거나 집단사의 연장이거나 간의 사건들 이었다···.”

유리는 수년전 어쩌면 중구의 마지막 지평선이 될지 모르는 우크라이나를 두고 기획된 의미심장한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포탸 76>(Potyah 76: 제76호 열차)이다. 이것은 중구라는 개념을 한 국제열차의 형식으로 표시한 것이다. 열차의 각 객차를 시, 산문, 논픽션 칸으로 연결하여 중구를 묘사한 열차이다.

<제76호 열차>는 발틱 해에 있는 그단스크(Gdansk)항구에서 중앙 유럽을 지나 동쪽 흑해의 바르나(Varna)까지 달린다. 물론 우크라이나를 관통하는 열차다. 보우필드가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의 한 카페에서 유리를 만났을 때, 우크라이나 최대인기작가인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공산주의 붕괴 후 제 76호 열차의 승객수가 떨어 졌어요. 연장 길은 짧아지고 또 짧아 졌어요. 이 열차의 마지막 장면은 더 이상 이익을 내지 못해 폐기처분되기 직전, 폴란드 국경마을 프리제미슬(Przemysl)에서 남 우크라이나 도시 체르니븟시(Chernivtsi)까지 달리는 장면이지요. 아마 이 열차는 곧 폐기처분되어 서부 우크라이나 어느 곳 철로 옆으로 내 버려져 고물이 될지 모르는 장면을 연상하는 거지요.”

해방 70주년, 분단 70주년을 맞은 우리들의 <나의 한 반도>, 안녕하신지요?

하나의 민족, 하나의 강토에서 5천년 살아 온 우리들의 ‘한반도’는 지금 어디에 있나? 한반도에 대한 우리들의 역사적, 정치 지정학적, 심리적인 정체의식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한다. 홍익인간, 동방예의지국, 아침의 고요한 나라라는 본래적 정체의식은 살아 있는 것인가? 하나의 땅, 하나의 민족이라는 것은 실제상으로, 지도상으로, 국제법상으로나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인가?

중구라는 어휘처럼 한반도라는 어휘도 살아지는 국토의 이미지 인지도 모른다. 중구와 같이 우리의 강토에 여러 형태의 죽음을 주어 온, 동, 서, 남 3면의 바다와 북의 대륙에서 오는 진동에 우리의 마음도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처럼 동서분단이 선택 없는 미래로 강조되고 있는 거와 같이, 한반도의 남북분단도 다른 선택이 없는 한민족의 미래로 강요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제76호 열차>는 우리들에게도 없는 것이 아닐 것이다. 한민족의 <제70호 해방열차>에 연결되어 있는 헌법,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정치, 제도, 정당, 자유, 자주 등 객차들은 아직도 달릴 수 있을만한 것들인지?

우리들의 <제70호 통일열차>는? 그 객차들은 아직도 잘 달리고 있는 것인가? 어느 철로 변에 버려져 있는 것은 아닌지? ‘나의 한반도’를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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