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21세기 한국의 새로운 사대교린(四大交隣)을 꿈꾸며
[해외기고] 21세기 한국의 새로운 사대교린(四大交隣)을 꿈꾸며
  • 김원일<모스크바대 정치학박사>
  • 승인 2015.10.04 2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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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교린(事大交隣)은 조선시대의 대외정책의 기본 방침이었다. ‘사대교린’은 글자 그대로 큰 나라인 중국은 섬기고 그밖에 일본, 여진, 유구 등 조선의 주변국가들과는 우호하고 교류한다는 의미이다.

조선은 중국에서 한족 중심의 강력한 통일왕조인 명나라의 등장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성립된 국가이다. 개국 초기에 중국과는 사대외교를 통해서 평화관계를 맺고 태종, 세종대의 왜구소탕과 대마도 정벌 그리고 여진족을 한반도 북쪽지역에서 구축하면서 국가가 안정궤도에 들어선다. 이렇듯이 조선 초기 사대교린 정책은 동북아 국제정세에 대한 합리적 판단과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하는 자주적인 외교정책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중국에 대한 사대정책에 큰 어려움이 닥쳐오게 된다. 중국대륙에 조선의 사대정책의 대상이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바뀌어 가는 큰 정치적 격변기가 닥쳐 온 것이다.

당시 조선은 사대의 대상을 명나라과 청나라 중에 어디로 할 것인가에 대한 탁상공론 속에서 명·청 교체기라는 중국 대륙의 정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병자호란을 겪게 됐다 전쟁 패배 이후 중국과는 청나라에 대한 사대관계의 지속 그리고 일본과는 조선 통신사로 상징되는 교린정책의 수행을 통해서 가까스로 다시 평화기를 맞이한다.

조선은 19세기말에 이른바 서세동점의 제국주의 시대라는 새로운 역사적 현실에 맞닥뜨리게 됐다. 아편 전쟁 패배 이후 쇠락하기 시작한 청나라와 명치유신을 거치면서 욱일승천하기 시작한 일본의 변화를 제대로 감지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꾸준히 유라시아 대륙 동쪽으로 영토를 넓혀 오던 러시아와 서부개척을 마무리하고 태평양 너머로 세력 확장을 꾀하던 미국 등 한반도에 새롭게 진출하기 시작한 열강들의 침략적 의도도 파악하지 못한다.

19세기 말에는 조선조 500여년 동안 이어져 왔던 중국에 대한 사대 그리고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가와의 교린관계라는 대외정책에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변화가 요구됐다. 당시 조선이 독립을 유지하고, 필요했던 국가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미·중·일·러 주변 4대 강국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고 독립적이고 균형 잡힌 외교관계를 맺어 나가면서 국가적 활로를 찾아나갔어야만 했다.

하지만 조선의 지도층은 기존 사대주의적 외교 관행대로 조선을 도와줄(?) 보다 강하고 우호적인 새로운 사대의 대상을 찾아서 친청, 친일, 친미, 친러파로 분열하고 우왕좌왕하며 국가개혁을 위한 소중한 시간들을 허비하고 만다. 결국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에 의해 국가가 식민지화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됐다.

해방 이후 한국의 건국과 국가발전에 미국의 공헌이 절대적이었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도 한국의 대외국제관계는 미국중심주의에 깊게 편향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마치 조선이 중국의 명나라와 청나라에 사대정책을 통하여 보호받고 교류했듯이 한국은 미국 중심의 외교관계를 맺어오며 국가의 유지와 발전을 꾀해 왔다.

그러나 중국 중심의 사대교린 정책이 19세기말 새롭게 변화된 동북아정세 속에서 조선의 독립과 안전을 보장해 주지 못한 것처럼 미국중심의 관성화된 한국의 대외정책이 21세기의 국제관계 속에서 한국의 안전과 국가발전을 지속적으로 보장해 주리라고 기대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안이한 생각이다.

지금 시기는 미국의 절대적이던 힘의 약화,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의 군사화, 중국의 미국 패권에 대한 도전, 러시아의 미국과의 대립과 동북아로의 진출로 특징 지워진다. 이러한 동북아를 둘러싼 국제관계의 변화는 한국에게 미국중심의 기존 외교정책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점차적으로 미국에 대한 외교적 의존만으로는 한국의 국익이 보장 받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지역에는 현대 국제사회의 격언 그대로 ‘미국의 개입 없이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지만, 동시에 미국의 개입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19세기말, 조선은 중국 중심의 유교이데올로기와 사대교린이라는 대외정책의 관성에 젖어서 급격히 밀려드는 동북아 국제관계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당시 조선은 자주적인 대외관계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국력이 약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때와 다르게 현재 한국의 국력은 의지와 노력여하에 따라서 주변 4대 강대국들과의 관계를 주도적으로 조율하고, 국익을 창출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있다고 평가 할 수 있다. 변화된 동북아정세에 걸맞는 자주적인 균형외교를 향한 한국의 의지는 이전 정부들의 ‘한반도 동북아 허브론’, ‘자원외교론’ 그리고 현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정책 선언 등으로 표방되기도 했다.

아쉽게도 역대 한국정부의 실제적인 균형외교 정책수행 의지는 그리 컸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균형외교론을 내놓곤 했지만 이의 실현을 위한 실제적인 정책 수행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제부터라도 한국정부가 미국에 경도된 사대교린(事大交隣) 정책이 아니라 주변 4대강국과 고르게 교류하고 협력하는 그런 의미의 신(新)사대교린(四大交隣) 정책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해 본다.

필자소개
김원일 모스크바대 정치학박사, 전 모스크바한인회장, 16기 민주평통 모스크바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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