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 볼로네세] 절대권력 로마 황제를 막아 선 사람
[볼로냐, 볼로네세] 절대권력 로마 황제를 막아 선 사람
  • 한도현(볼로냐 대학교 정치학과 교환교수)
  • 승인 2015.10.05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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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의 성 암브로죠(Sant’Ambrogio) 성당은 1600년 역사를 자랑한다. 한 때 로마의 수도였던 밀라노의 핵심 성당이다. 이 성당의 그림 하나가 이 성당의 역사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이 그림은 성당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있는 데뽀지찌오네(deposizione) 까펠라(cappella 소 성당)에 있다.

데뽀지찌오네란 죽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내린다는 뜻이다. 기독교 예술에서 이 장면은 아주 널리 채택되는 주제이다. 보통 이런 이름을 가진 곳에는 그리스도의 시체를 둘러싸고 마리아와 제자들이 애통해하는 그림이나 조각이 있게 마련이다.

아니면 피에타처럼 마리아가 예수의 시신을 안고 깊은 슬픔에 잠겨있는 모습의 그림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 소 성당에서는 전혀 색다른 그림이 걸려있다. 그림의 제목은 ‘성당 문에서 암브로죠가 떼오도죠 황제를 막다’이다.

볼로냐 출신 화가 까밀로 쁘로까치니(Camillo Procaccini, 1551-1629)의 작품이다. 떼오도죠(Teodosio, 테오도시오스, 347~395) 황제가 이 성당에 들어오려고 하는데 암브로죠 주교가 단호하게 그 길을 가로막고 있다. 화가 반 다이크도 이 주제를 그렸다. 반 다이크의 그림은 종교적 분위기가 훨씬 강하다.

그에 반해 볼로냐 출신 화가 의 이 그림은 종교적 색채가 아주 약하다. 그는 황제의 힘을 부각시키고 황제를 그림의 중심에 배치했다. 황제의 오른쪽 어깨로부터 등허리를 감아서 온 내려온 진홍색 옷이 황제를 돋보이게 한다.


진홍색 옷과 검은색 상의를 입는 황제는 감상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림의 제목으로 볼 때 주인공은 암브르죠 주교여야 하는데 구도와 색채에서는 황제가 주인공이다. 황제는 주교를 향해 오른팔을 높이 쳐들고 길을 비키라고 외친다.

높이 쳐든 오른팔에는 황제의 권위가 물씬 풍긴다. 황제의 강건한 오른 팔이 장군의 팔뚝처럼 아주 볼륨감 있게 그려져 있다. 허리춤에 얹은 왼손도 절대 권력 황제의 자신감이 묻어난다. 길을 비키라고 호통치는 황제를 막아 선 주교의 모습은 기골이 장대한 황제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주교의 흰옷도 주교를 약하게 보이도록 한다. 주교 뒤에 선 사제들은 손에 아무 무기도 없다. 황제의 병사들은 칼집에 손을 대고 있다. 황제의 명령만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림 속 황제는 혼자서도 주교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에 들어가려고 한 계단 위에 내디딘 그의 발을 보라, 그의 튼튼한 다리를 보라. 주교를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암브르죠 주교는 죽기를 각오하고 길을 막는다. 교황과 황제의 권력투쟁이 연상될지도 모른다. 이것은 피상적 이해이다. 암브르죠는 교황이 아니다. 죽음을 두려워 않는 충직한 행정관 출신이다.

밀라노의 행정관으로서 선정을 베풀어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밀라노 교회의 주교를 정하는 자리에서 졸지에 주교로 선임됐다. 교회내 파벌 싸움을 조정하려던 그는 양 집단에 의해 주교로 추대됐다.

암브로죠는 자신이 성직자도 아니고 세례도 받지 않았으므로 한사코 사양했다. 그렇지만 결국 주민들의 뜻에 떠밀려 주교가 됐다. 주교가 되면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헌납하여 빈민들을 위해 사용했다.

주교로서 그는 주민들 편에서 참 목자의 삶을 실천했다. 옳은 길을 위해 헌신하는 참 지도자였다. 바로 그런 사람이었기에 죽기를 각오하고 황제 권력 앞에 맞설 수 있었다. 그는 죽기를 각오하고 황제가 390년에 데살로니카에서 주민 7000 여 명을 학살한 죄를 강력히 추궁했다. 교회 출입을 금지했다.

볼로냐 출신 화가가 바로 이 장면을 리얼하게 그린 것이다. 암브로죠(Ambrigio)는 우리에게 암브로시우스(Ambrosius, 340-397)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어거스틴의 스승이다.

어거스틴은 한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그 분의 입을 통해 주님은 나를 오류로부터 구원하셨다. 나는 세례의 은총을 그 분에게 받기로 했다.” 길 잃은 청년 한 명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던 자상한 목자는 살육을 자행한 황제 앞에서는 물러서지 않았다.


필자소개

한도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볼로냐 대학교 정치학과 교환교수, 코이카 지구촌 새마을운동 전문위원, Korean Histories 편집위원(Leiden Univ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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