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영남 민주평통 중국 청도협의회장
[인터뷰] 이영남 민주평통 중국 청도협의회장
  • 청도=김인현 기자
  • 승인 2016.02.1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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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는 타고난 생명의 일부분"…4대째 장신구업 종사
▲ 이영남 민주평통 중국 청도협의회장

“어렸을 때부터 봉사는 타고난 생명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 탓인지 그동안 정말 바쁘게 살아온 것 같고, 이제는 3 부자라고 하죠? 돈, 시간, 취미가 있는 완전한 부자가 되고 싶지만 또 그리 쉽지는 않네요.”

이영남(72)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중국 청도협의회장의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3개의 직책을 맡아왔다. 청도한인회장과 청도적십자한중의료단장까지. 지난 1월22일 한인회장직을 후임 하덕만 회장에게 물려줬지만 아직 2개가 남아있다.

“의료단은 한중친선협회 중국지회장을 하고 있던 2010년부터 맡았는데, 초대 단장인 김성진 박사라고 계세요. 세계보건기구 결핵 담당 고문도 하셨고 농촌 무료봉사단체도 조직했던 분인데 당시 82살 되신 분이 내 손을 붙잡고 ‘열심히 해주시고 좋은 분에게 넘겨달라’고 하시는데 거절할 수가 없더라구요.”

의료단은 매년 자선음악회를 해 기금을 모으고 또 기부를 받아 중국 내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 구조사업을 하고 있다. 현재까지 모두 180여명이 수술을 통해 새 생명을 선사받았다. 그는 이를 지금까지 가장 보람있는 일로 꼽았다.

“그런데 운이 좋아 우리랑 연결이 되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숨져가는 게 가장 안타까워요. 기부금은 한정이 돼있으니까요.”

그가 한인회장을 맡게 됐던 이유도 비슷하다. 전임 김동국 회장이 3차례나 “한인회를 위해 봉사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기 때문이다.

“한인회장을 맡으면서 임기 2년 동안 어떻게 봉사하는 게 좋을까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재정을 보니 계속 적자가 났더라고요. 그래서 임원단과 함께 절약하고 투명하고 정의롭게 운영하자고 결의했고, 그 결과 이번에 29만위안(5,300여만원)을 후임 집행부에 물려줄 수 있었죠.”

그는 이와 함께 재임 2년 동안 한인회가 교민들의 구심점이 돼가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했다. 집행부가 연락을 받고 멀리까지 가서 돌아가신 분의 시신을 수습하고 화장까지 하는 등 자기 일처럼 나서다 보니 “길거리에 누가 쓰러져 있다”는 등 그동안 오지 않던 연락들이 한인회로 오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평통 청도협의회장은 지난해 7월부터 맡게 됐어요. 앞으로 여생은 통일 염원을 이루는 데 기여하고 싶네요.”

산동성 일대 61명의 자문위원들을 이끌고 있는 그는 “자문위원들이 연태, 위해 등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어 서로 만나려면 힘이 들지만 요즘은 많이 결집하고 있습니다. 북한 핵실험 규탄대회라도 하고 싶지만 중국 정서상 그러지도 못하고 속만 태우고 있습니다. 1인시위라도 하고 싶어 피켓도 만들어놨는데, 자칫 한인사회에 누가 될까봐 중국이 대북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지 지켜보고 있습니다”고 했다.

그는 1998년 청도로 건너와 장신구 사업을 해왔다. 한국에서 일할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생산한 장신구를 주로 미국에 수출한다. 장신구 사업은 그의 3대째 가업이다. 외항선을 탔던 그의 할아버지가 기항했던 프랑스 항구에서 진주 세공하는 것을 보고 다음에 프랑스에 들렀을 때 아예 배에서 내려 1년 동안 장신구 만드는 것을 배워왔다고 한다. 한때 한인 밀집지역인 청도 성양구에만 1,000개가 넘던 장신구 회사가 현재 170여개만 남은데서 보듯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의 회사는 할아버지대부터 내려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급 제품을 생산해 아직까지 견실하게 운영되고 있다.

“처음 청도에 왔을 땐 인프라가 하나도 안돼 있었어요.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고, 비만 오면 길이 진창이 돼 장화가 필수품이었죠. 그런데 밖에 벗어놓은 장화를 누가 들고 가버리는 바람에 숙소 머리맡에 두고 자야 했을 정도였어요.”

그는 3년 전 사실상 현업에서 은퇴하고 그의 두 아들이 두 공장을 하나씩 맡아 운영하고 있다. 4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중국의 경기 침체와 인건비 상승, 각종 규제로 고민이 많다고 했다.

“이제 중국도 사업하기 척박한 땅이 돼버렸어요. 지금 아들들이 공장을 인도 등으로 옮기는 방안을 미국 바이어들과 논의하고 있습니다.”

그는 18년 동안의 중국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 중국에 진출하려는 이들에게 “현재 중국이 인프라도 구축이 잘 돼있고 살기에도 편하지만 생각대로 되는 나라가 아니니 절대 중국을 가볍게 생각하고 오지는 말라”고 충고한다.

“미국인들은 중국에 진출하기 전에 5년을 연구하고, 일본은 3년을 연구하고 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실패하는 회사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인 가운데는 여행 왔다가, 혹은 사업차 와서 보고 다음날 계약하는 이들도 있어요. 그러면 거의 실패합니다. 충분히 연구하고 준비해서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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