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아와 어린 학생들을 사랑했던 캐나다의 세계적인 수의학자, 국가보훈처 선정 올해 3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1919년 3·1 만세운동 현장을 사진으로 남긴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리는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가 한국에 온 지 100년을 맞아 ‘스코필드 박사 내한 100주년기념사업회(의장 정운찬)’가 출범한다.
2월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행사에는 기념사업회 의장인 정운찬 전 국무총리, 이항 기념사업회 본부장(서울대 교수), 김재현 사무총장, 그리고 스코필드 박사의 외증손자인 콜 크로포드(Cole Crawford)씨 등이 참가한다. 이날 행사는 기자간담회(오전 11시 프레스센터 19층)와 축하연 및 출범식(오후 7시 프레스센터 20층)으로 구성된다.
스코필드 박사는 1916년 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의 권유로 20대 중반의 나이로 아내와 함께 한국에 와서 세균학과 위생학을 강의했다. 그는 빠르게 한국어를 배워 한국에 온 지 1년 만에 ‘선교사 자격 획득 한국어시험’에 합격해 한국어로 의학 강의를 진행할 정도였으며, ‘석호필’이라는 자신의 한국어 이름도 만든,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에 앞선 원조 ‘석호필’이다.
또 1920년 3·1운동 견문록 ‘꺼지지 않는 불꽃’을 발행했으며, 1920년 당시 유관순, 어윤희 등이 갇혀 있던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하고 수감자에 대한 고문 여부를 확인한 뒤 하세가와 총독을 방문해 일본의 비인도적 만행 중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에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글을 쓰고 교육 장려활동을 했다. 1970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별세해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