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귀향’ 영화를 보다
[Essay Garden] ‘귀향’ 영화를 보다
  • 최미자<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6.04.0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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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이고 중심가 패션벨리(Fashion Valley) 상가에 있는 AMC 극장으로 나들이를 갔다. 매일 읽는 신문 기사와 한국 식당 앞의 광고를 보고 영화를 보러갔다. 늘 빼곡한 일상이지만, 중요한 일은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해 10여 장소에서 3월25일 개봉된 위안부 할머니들의 영화 ‘귀향’이라는 제목이 궁금했다.

몇년 전부터 한국 영화가 조금씩 서양인들에게 소개되고 있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또 조국을 떠나 타국에 사는 우리에게도 이런 큰 재미가 어디 있는가. 주중에 찾아간 극장은 겨우 대여섯명 앉아있어 썰렁했다. 우린 십여분 늦게 들어갔기에 두번 보기로 작정하며 자리에 앉았다.

일본 정치인의 못된 짓들을 긴 세월 우리가 떠들어 봤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를 생각해본다. 비록 역사가 짧은 일본이지만, 얼마나 많은 책을 만들어 그들의 문화를 미국과 서양에 알리고 있는지 나는 이곳에 살아오며 놀라고 있다. 잘못된 위안부 역사가 어디 협상할 일인가. 일본은 무조건 정신적 물질적 보상을 영원히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세계인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널리 바로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 ‘귀향’ 영화처럼 종합예술로, 그림이나 책을 통한 문학의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

영화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보니 이웃 두개 홀에서 배트맨 영화를 상영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보고 우르르 나와서 부러웠다. 나는 복도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사람이라면 어린 처녀들에게 어찌 그토록 잔혹하게 할 수가 있을까.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어서인지 난 눈물도 흐르지 않았지만, 숨이 막히는 경험을 했다.

영화 마지막 화면을 가득히 채운, 제작 후원금을 마련해준 7만5,270명의 이름들이 내 가슴 속으로 찡하게 울려온다. 일일이 읽을 수 없어 그분들이 누군지는 몰라도 새삼스레 우리가 사는 고마운 세상을 느끼게 해주었다. 또 스크린에 떠있던 기가 막힌 그림들이다. 지금은 보물처럼 대한민국의 생생한 역사자료가 된 성노예 생활로 상처를 입은 할머니(Comfort Women= Sex Slave)들의 심리적 표현들이었다. 14년 동안 준비했다는 젊은 조정래 감독의 ‘귀향’은 아름다운 시골 풍경과 한국적인 음악으로 나를 고국의 진한 향수 속에 멈추게 했다.

아쉬움이라면, 시작할 때 진혼굿에 대한 설명이 영어 자막으로 있었더라면 서양 사람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죽은 혼을 달래는 위령제나 진혼굿은 서양에 없기 때문이다. 또, 두번째 줄의 영어 번역 자막이 스크린 아래로 가려져 읽을 수 없어 답답했다. 극장의 간부를 만나 이유를 물어보니 영화를 배포한 쪽에 시정을 요청해도 협조해주지 않으니 짜증난다고 말했다.

나는 한국말을 못하는 2세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아 느낌을 영어로 정리해보았다. 그 다음날은 상영 마지막 날이니 이른 아침부터 지인들에게 전화로도 한참 알렸다. 그런데 그날 밤에 미국인 지인들과 내 딸도 약속을 해 놓았는데, 확인하느라 오후에 알아보니 저녁 상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뜻밖이었다. 이유는 관객이 적어 ‘귀향’ 상영 장소가 ‘배트맨’을 상영하기 위한 세번째 홀로 빼앗긴 것이다. 턱없이 부족한 광고 탓이었다.

신문사의 수고에 비하면 아직 값이 저렴한 종이신문도 읽지 않고, 한나절 또는 온종일 골프 치는 일에는 열광하면서도 거의 문화생활에는 무관심하고 투자도 하지 않는 대부분의 한국동포들이다. 미국에 들어오는 우리 한국산 자동차를 사거나 한국산 영화를 봐주는 일이야말로 애국하는 일이 아닐까. 지난날 나라를 빼앗겼던 우리 부모세대의 서러움을 요즈음 사람들과 젊은이들은 얼마나 배우면서 자각하고 있을까.

위안부 할머니들이시여, 당신들은 힘이 없는 나라일 때 강제로 납치되었던 어린 처녀들이었습니다. 또 부모님과 형제들을 도우려고 공장에 가서 돈을 벌며 공부를 시켜준다는 꼬임에 넘어갔던 착한 효녀들이셨습니다. 동물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고도 끈기있게 살아나 역사를 증언해주신 분들이여, 영화 속의 나비처럼 빼앗긴 혼이라도 날마다 우리 고국을 찾아와 따뜻한 위안을 받으시고 통곡의 한을 푸시옵소서.

최미자의 미주문학서재 http://mijumunhak.net/mij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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