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 청소년 연수 참가기] 조국의 동서남북 땅 끝 밟기
[재외동포 청소년 연수 참가기] 조국의 동서남북 땅 끝 밟기
  • 이예본<중국 요녕성 영구주말한글학교 중등부 3학년>
  • 승인 2016.08.08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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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 경험하고, 전세계 재외국민 친구들 사귄 소중한 경험

“처음으로 전국 방송 타는 가슴 설레는 경험”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을 방문했다. 2016 재외동포 청소년 교류사업(OKF)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재외동포재단은 ‘땅은 좁지만 마음이 넓은 민족’으로서의 ‘글로벌 코리안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취지로 행사를 열었다. 7월 11일 인천공항 땅을 밟았다.

다음 날 나는 OKF에 참여하는 친구들과 함께 전세버스를 타고 행사 개최지인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으로 가는 동안 장거리 이동에 지루하지 않도록 영화 ‘명량’을 상영했다. 내 뒷자리에 일본에서 온 친구도 있었지만, 같은 한국인이라는 생각에 일본과 조선이 싸우는 영화내용 때문에 불편한 생각은 없었다.

▲ 부산 해운대에서.

부산에 행사장에서 팀을 지정받고 OKF 티셔츠를 받았다. 우리는 앞으로 활동하게 될 지역별로 나눠 앉았고 게임을 하면서 친해졌다. 둘째 날 개회식을 하고 시티투어를 했다. 해운대도 처음 가보고 부산 지하철도 타봤다. 무척 많이 걸어서 힘들었지만 재밌는 하루였다.

우리 팀은 안산으로 가서 농촌 체험도 하고 한국 학교 아이들과 학교 체험과 K-culture를 체험하며 홈스테이도 했다. 지역에서의 체험 후 모두 서울 광화문에 모여 아리랑 플래시몹을 했다. 600여명 정도 되는 인원이 모두 오른손은 태극기를, 왼손에는 출신 국가의 국기를 들고 하나 된 마음으로 춤을 췄다.

▲ 안산 동산고등학교에서.

광화문에서는 외국 교과서 중 한국에 대해 언급된 부분이 크게 전시되고 있었다. 그 중 내가 제출한 자료가 전시됐는데 게시판 하단에 ‘자료제공자 중국 이예본’이라는 글귀가 있어서 마음 뿌듯했고, 그것이 계기가 돼 YTN 방송 인터뷰도 해서 처음으로 전국 방송을 타는 가슴 설레는 경험을 했다. 할머니, 엄마와 동생이 함께 텔레비전 심야뉴스를 통해 내가 한 인터뷰를 봤다고 했다.

▲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역사 교과서 전시물(왼쪽)과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한 컷.
▲ DMZ 자선거 평화 대행진에서 단체 기념촬영.

이어 우리 팀은 한국 북쪽 끝인 DMZ에서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자전거 대행진을 했다. 지난겨울 방학 때 임진각을 다녀갔는데 이렇게 6개월 만에 다시 오게 될 줄은 몰랐다. 다른 언어, 다른 문화를 갖고 있어도 ‘한국’이라는 하나의 연결고리로 이어져 함께 생활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참 감동적이었다. 마지막 헤어질 때 서로 연락처를 알려주고 안아주며 눈물로 이별을 장식했다.

온 몸에 전율을 느끼게 한 독립기념관

OKF 참가자들과 인천공항에서 헤어지고, 공항으로 마중 나온 외할머니와 엄마를 만나 부모님의 고향인 강릉으로 내려왔다. 여독이 채 풀리기도 전에 나는 한국역사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천안에 가서 ‘독립기념관’을 방문했다. 천안은 지리적으로도 통일한국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독립기념관에서 비싼 입장료를 받을 줄 알았는데 국민들에게 무료관람을 시켜준다는 것을 현장에 도착해서 알았다. 나는 대한민국 정부에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전시관에 들어서기 전에 반가웠던 것은 심양에서 봤던 삼학사비가 세워져 있었고, 아직 가보지는 않았지만 중국 ‘집안’에 있는 광개토대왕비가 세워져 있었다. 4면을 돌아가면서 한자를 읽어 보았다. 친절하게도 전시관 안에는 광개토대왕비의 각 면마다 한글요약이 돼있어서 좋았다. 처음에 나는 독립기념관은 단순히 한국의 독립에 관한 내용만 전시돼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생각은 아주 빗나갔다. 독립기념관에는 1관부터 7관까지 고조선부터 대한독립까지 많은 내용이 전시돼 있었다.

▲ 천안 독립기념관에 세워진 광개토왕비릉비 앞에서.

제1전시관 ‘겨레의 뿌리’라는 주제는 선사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우리 민족의 뛰어난 문화유산과 국난 극복사였다. 나는 국난이 있을 때마다 나라를 위해 싸운 장수들과 백성의 편리함을 위해 한글, 측우기, 자격루 등을 발명한 위인들이 정말 존경스러웠다. 또 23전 23승 무패의 신화를 기록하신 이순신장군의 거북선 모형을 볼 때 온 몸에 전율을 느꼈다.

제2전시관 ‘겨레의 시련’이라는 주제는 1860년대부터 1940년대, 개항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였다. 이곳에서 나는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내가 중국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중국역사는 동북공정에 의해 왜곡된 역사다. 나는 또다시 혼돈이 오지 않게 진실된 역사를 배우고 싶다. 나는 조선 최초의 우편배달부를 보았고 전차 모형을 타보았다.

제3전시관 ‘나라 지키기’는 의병전쟁과 애국계몽운동으로 대표되는 구한말의 국권 회복운동을 주제로 전시하고 있다. 나라를 지키고자하는 사람들이 주리 틀기, 공중전, 해전, 상자고문 등 끔찍한 고문을 받는 장면을 보고 소름이 돋았고 일본군 ‘위안소’ 재현 모형을 보고 눈물이 났다. 제암리 학살사건에서 불탄 사람과 건물 재가 유리바닥 밑에 재현돼 있었는데 정말 끔찍했고 비참했다.

제4전시관 ‘겨레의 함성’은 우리 민족 최대의 항일독립운동인 3·1운동을 주제로 전시하고 있다. 나는 한복 입고 태극기를 휘날리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사람들의 모형 옆에 서서 같이 태극기를 흔들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1919년 2월1일 만주 지역에서 선포한 육탄혈전불사를 주장한 ‘무오독립선언’에 관한 자료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제5전시관 ‘나라 되찾기’는 일제강점기 조국을 되찾기 위해 국내외 각지에서 전개된 항일무장투쟁을 주제로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 학생 비밀단체 성진회의 비밀회의 장면과 광주 형무소 앞 시위장면 등의 모형이 생생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피난민이 타는 초라한 배가 전시돼 있었는데 배에 타보니 배가 기우뚱 거리며 소리가 구슬프게 퍼졌다. 배에 탄 나와 동생이 자연스레 엄숙해지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국광복군이 숲속에서 일본군과 싸우는 긴박한 장면의 모형이 있었는데 나도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나무 뒤에 숨어있으니 절로 긴장감이 생겼다.

▲ 발해 역사를 설명한 전시관에서.

제6전시관 ‘새나라 세우기’는 일제강점기 민족문화 수호운동과 민중의 항일운동,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을 주제로 전시하고 있다. 나는 동생과 태극기를 들고 백범 김구 등 독립투사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한용운 윤동주 등 시인은 종이를 방패로 펜을 무기로 대신하고 칠흑 같은 밤중에 빛나는 새벽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후세에 길이 남을 시를 쓰셨다.

제7전시관 ‘함께하는 독립운동’은 일제강점기에 조국광복을 위해 국내외에서 전개된 다양한 항일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체험전시관이다. 그 당시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항일투쟁에 참여했다. 입체4D영상관에서 감동적인 영상도 봤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중에 신기하게도 나는 통일 골든벨 KBS 본선팀의 리허설 현장을 볼 수 있었다. 광복절기념으로 방영될 예정인 통일골든벨을 촬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 세계 각국에서 예선을 거친 학생들 100명이 모인 자리였다. 동북3성에서 예선전에 나와 대각선 자리에 앉았던 대련국제학교 전창렬 학생이 그 자리에 있었다. 참 반가웠다.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지만 적극적인 성격을 소유한 우리 엄마는 그 학생이 동북3성 대표라는 것을 알고 직접 찾아가서 파이팅을 해 줬다. 촬영스텝 분들이 장비를 정리하는 동안 나는 골든벨을 울리는 사진을 찍었다. 언젠가 나도 본선에 출전해 골든벨을 울리고 싶었다.

울렁도 같은 울릉도 탐방… 가슴 벅차게 하는 독도

대한민국의 동서남북의 땅 끝 마지막 남은 코스로 울릉도와 독도를 향했다. 마침 할머니 댁이 강릉이어서 강릉 항에서 출발해 먼저 울릉도로 갔다. 갈 때 파도가 잔잔했지만 나는 멀미를 심하게 했다. 울릉도에 도착해 오후에 버스를 타고 관광할 때 구불구불한 산길과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마다 속의 울렁거림이 가시지 않아 힘들었다. 나는 울릉도의 이름을 ‘울렁도’라고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 울릉도 전망대에서.

다음날 독도로 가는 길은 설레었다. 얼마나 이 시간을 기다렸던가! 울릉도에 45년을 살았다는 관광가이드에게 독도에 오를 수 있을지를 여쭈었는데 독도는 날씨가 워낙 까다로워서 울릉도에 그렇게 오래 살아도 내일 상황은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다. 다행히도 우리 일행은 독도의 날씨가 좋아 접안에 성공했다. 나는 한국의 동쪽 끝에 도착해 벅찬 기분이 온 몸을 가득 채웠다. 그 동안 TV에서만 보던 독도를 실제로 밟았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실탄이 장전되어 있는 총을 들고 우리나라의 신성한 땅 독도를 지키는 독도 경비대 아저씨들이 멋지고 자랑스러웠다. 경비대 아저씨한테 사인도 받고 사진도 같이 찍었다. 하지만 독도 정상까지 오르고 싶었는데 시간도 짧게 주고 통제를 해 못 올라갔다. 또 ‘한반도 바위’를 못 본 것이 정말 아쉬웠고 ‘한국령’이라고 쓰여 있는 바위도 못 봐서 아쉬웠다.

▲ 독도에서.

‘독도는 우리 땅’을 다시 한 번 속으로 외치며 승선했다. 1년 365일 중에 50여 차례 만 접안이 가능한 변화무쌍한 지역인데 우리가 독도 땅을 밟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2016년 여름, ‘대한민국의 동서남북의 땅 끝 밟기’라는 대장정을 경험한 감동적인 방학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와 민족에 대해 한걸음 더 다가 갈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고, 애국심을 키우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재외국민 친구들을 사귀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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