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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문단] 향수병
유효기간 지난 국산약도 못버리고... 몸살땐 김치찌개 생각 간절
2017년 06월 10일 (토) 09:27:06 이종설 카타르한상회장 wk@worldkorean.net

   
▲ 이종설 신임 카타르한상회장
약을 보관하는 책상 서랍을 우연히 열어보니 하얀 플라스틱 병이 눈에 뛴다. 한국산 소독약이다.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맞아보니 아무 냄새도 없다. 책상 속에서 몇 년을 묵어서인지 알코올 기운이 다 날아갔다.  내 책상 속에는 유효기간이 지난 감기약 두통약 아스피린 비타민류 영양제 무좀약 피부연고에 후시딘 등이 넘쳐난다. 모두 유효기간이 지난 약품들이다.

몇 달 전에 이 약들을 모두 버려버릴까 생각하다가, 그래도 한국에서 온 귀한 물건인데 하는 생각에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놓아두었다.  이런 폐품 하나 마음대로 버리지 못하고 사는 내게 스스로 짜증이 난다. 아끼는 마음도 좋지만 민감한 의약품이라 유효기간 지나 상한 것을 사용하면 부작용으로 큰일 나는데,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고 안달을 치는 나 자신이 싫어진다.

이 정도의 약들이야 이 나라에서도 얼마든지 구할 수가 있는데 그놈의 국산이 뭐라고 유효기간이 지나도 버리지 않는 궁상을 떠는가? 갑자기 할머니 생각이 난다. 할머니 돌아가신 후 할머니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할머니 옷장 속에 며느리 딸들이 해드린 새 옷들이 꽤 많았는데, 노인네가 늘 허름한 옷만 입고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아껴봐야 헛 거다. 좋은 것이 있으면 먼저 입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 때깔도 난다”고 말씀하셨던 할머니. 딸 며느리들이 할머니 돌아가신 후에 수근거리던 소리가 아직도 내 귀에 살아있다. 결국 할머니 아끼시던 새 옷들을 저승에 가서 입으시라고 훨훨 불태워 드렸다.

차를 사도 일제를 사면 중고로 팔 때 제값을 받을 수 있어 훨씬 이익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꼭 국산차를 사게된다. 몇 년 쓰다 훌훌 털어 버리고 갈 차라면 인도 차가 싸고 좋은데, 왜 어정쩡하게 국산차를 사서는 후회를 하는지....

국제화 시대에 해외에 나와 있으면서까지 국산품 애용을 생각하면 국제적 감각이 떨어진다고 해야 할 것인데, 지난 겨울 몸살감기가 왔을 때만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온다.  이 나라 겨울 날씨는 그렇게 춥지 않아서 우리나라 늦가을 날보다 약간 춥고, 우리나라 서리 내릴 때 정도의 기온이 가장 추운 날이다.

그러다 보니 이 나라 집들은 난방 시설이 전혀 없다. 어느 날 몸살감기가 아주 심하게 왔다. 얼마나 몸살이 심한지 옛날에 다쳤던 부분들이 모두 욱씬 쑤셔대는 아주 심한 몸살이었다.  약방에서 약을 지어다 먹었건만 차도가 없이 점점 더 심하게 아프기만 했다. 그저 따끈한 아랫목에 등대고 누워 있으면 딱 좋으련만, 이 나라에는 그런 난방 시설이 없었다.

그렇게 한 사나흘 혼자서 끙끙 대다 불현듯 무언가 먹어야 살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먹고 싶은 것이 한국음식이었다. 얼큰 시큼한 김치찌개가 먹고 싶기도 해서, 냉장고를 뒤져보니 도무지 눈에 안 띈다.

아래 싱크대를 열어보니 신라면 봉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신라면 봉지를 뜯어서 냄새를 맡아 보니, 라면이 산패되어 기름 상한 냄새가 났다. 하기야 이 놈이 지난 여름 내내 그 뜨거운 부엌 찬장에서 묵었으니.  그것도 기름에 튀긴 라면인데 산패를 했어도 한참 했겠지. 연일 40도 50도를 오르락내리락거리는 카타르 기온에, 그것도 환기도 안 되는 부엌 싱크대 밑에서 유효기간이 1년이나 더 지나면서 오죽이나 변질이 됐을까?

그래도 난 한국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서, 물을 넉넉히 잡아서 그 라면을 푹 끊였다. 계란도 깨어서 넣었다. 그리고는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마셔 버렸다. 그리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침대 속에 기어들어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언제 아팠는가 싶게 몸이 개운했다. 라면 덕분인가? 그렇다면 부정하려해도 할 수가 없이,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이다. 약을 먹어도 안 듣던 몸살이 신라면 하나 끓여 먹고 거뜬하게 나았으니....

평소엔 가리지 않고 아무나라 음식이나 잘 먹었으나, 몸이 약해지니 먹고 싶은 게 한식이었다. 정신이 약해져서일 것이다. 그래 난 이 국제화 시대에 배냇병신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수 없는 한국 사람이다. 타향살이 이국에서 몸살감기에 걸렸거나 향수병에 걸려 울적한 기분이 들 땐 그저 얼큰한 라면이나 김치찌개가 최고의 치료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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