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사랑 그리고 아름다운 이별
[Essay Garden] 사랑 그리고 아름다운 이별
  • 최미자 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8.04.26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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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이고 교포사회의 행사마다 기부금을 자주 내놓는 분이 있다. 우연히 나는 약 오십년 전에 있었던 그분의 연애스캔들 이야기를 듣고 놀란 적이 있었다.

고인 글로리아는 10살에 아버지를 따라 이민 와 라호야에서 자랐고 UCSD를 졸업했다. 청년 임 군은 서울 대학 출신이지만 당시 미국에서 내놓을 만한 직장인도 아니고 키가 자그마한 유학생이었다. 이 청년을 부모님은 딸이 좋아하는데도 사윗감으로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딸 글로리아는 미래의 될성부른 한 사나이를 알아보았는지 부모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임 청년도 이민 오면 대부분 영어가 부족하여 한국에서 가져온 좋은 학력과 달리 밑바닥부터 배우며 살아가야 하는 한국의 지성인들처럼 처음에는 그렇게 열심히 일하며 고생했다.

보조개가 파인 깜직한 처녀 글로리아와 1970년 외로운 결혼식을 올리고, 샌디에이고 북쪽 앤스니타스에 집을 마련했다. 그렇게 부부가 결혼하고 8년이 되어서야 장인어른을 떳떳하게 집으로 초대했다고 한다. 임 청년은 그동안 사업가와 부동산 투자가로 변신했고, 아내는 샌디에이고 오션사이드 교육 구에서 1973년부터 교사로 일했다.

장례식에서 딸 루시는 추모사에서 집의 수영장에서 한 시간이나 끈기 있게 수영하던 엄마를 기억했다. 어머니 성품은 달콤하면서도 엄격했고 쉬지 않는 열정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 분이란다. 무척 예술을 사랑하며 모차르트를 좋아해 피아노를 잘 쳤다고. 특히 시를 잘 쓰고 여기저기 발표했으며 고인이 20년간 은퇴할 때까지 아이들을 퍽이나 사랑하는 교육자였다.

2000년 발렌타인 날에 남편에게 바친 시를 장례식 프로그램에서 읽으며 고인은 훗날 불치병을 예견이라도 한 듯하다. 그녀의 시 ‘하나의 마음(One Heart)’이라는 영어로 쓰인 시는 내가 문학적으로 해석하기엔 어렵지만 차원 높은 부부의 깊은 사랑을 느끼게 한다. 1986년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은 고인은 다양한 재능을 겸비한 지성인이라서 그의 짧은 생애가 참 슬프다.

남편은 훌륭한 아내가 있었기에 오늘의 영예가 있었다며 추모사를 시작했다. 평소에 침착하고 거의 감정을 나타내지 않던 그는 추모사를 읽으며 목이 메여 말을 거의 못했다. 보통 장례식에서 조문객들의 마음은 타인의 죽음이라 그런지 실감이 나지 않곤 했는데, 그날은 우리가족도 나처럼 훌쩍거렸다. 오래 전에 소문으로 부인 글로리아가 요양원에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전혀 믿기지 않았다. 활동하는 한창의 나이에 치매라니...

한동안은 집에서 아내를 돌보다 입원까지 했던 남편이었다. 십년 동안 요양원을 찾아가 얼굴을 보며 밥을 떠먹이며 허약해진 아내를 영영 보내는 마음은 얼마나 허망할까. 요즈음 세상은 성적으로 추악했던 남자들을 폭로하는 ‘미투(Me Too)’ 운동이 벌어지고 있기에 그가 더욱 남다르게 보인다. 결혼하여 죽음까지 일편단심 남편사랑을 받고 떠나는 한 여인의 장례식이 꼭 슬프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두해만 더 가면 금혼식을 올릴 부부가 아니던가.

장례식장에는 이곳 유지들이 꽤 모였다. 200여명 의자가 부족하여 수십 여분이 로비에 서 있었다. 근조 화환도 약 30여개가 양쪽으로 즐비하게 서있다. 로비에 나오니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들로 어두운 분위기가 사라지며 반가워 서로 손을 붙잡고 안부도 나누었다.

한국인 부부 동반 모임인 비둘기 회에서 글로리아랑 함께 여행도 했고, 집으로 초청해주어 춤추며 놀았노라고 한 지인은 지난날을 회상했다. 여러 개의 화환들은 벌써 옮겨져 관이 지나가는 슬픈 꽃길이 되어 산자락에 누워있다. 천국에서 그녀가 편히 잠들기를 기원한다. 남편은 조의금을 정중히 사절했고 조문객들에게 한식 뷔페로 푸짐하게 대접했다.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이 담긴 그날의 장례식 정경은 마치 영화장면 같았다.

필자소개
미국 샌디에고 30년 거주 수필가
저서 세번째 수필집 ‘날아라 부겐빌리아 꽃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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