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春秋] 만성풍우(滿城風雨)
[대륙春秋] 만성풍우(滿城風雨)
  • 팽철호 국민대학교 중국학부 중어중문전공 교수
  • 승인 2018.06.08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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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좋지 않은 소문이 분분하다

북송(北宋)시대에 반대림(潘大臨)이라는 사람과 그의 친구 사일(謝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사일이 반대림에게 편지를 보내어 최근에 지은 좋은 작품이 있느냐고 물었다. 문인들끼리 주고받는 독특한 문안편지에 반대림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답신을 보냈다.

“가을이 되니 온갖 풍경과 사물들 하나하나가 멋진 작품이 될 듯하오만, 속된 기운에 뒤덮여버리는 것이 안타깝소. 어제는 정갈한 마음으로 누웠다가 숲을 뒤흔드는 비바람 소리를 듣고서 마침내 일어나 벽에다 ‘滿城風雨近重陽(만성풍우근중양), 중양절이 가까운 시절에 온 고을에 비바람 소리’라고 쓰기 시작했소. 그런데 그 때 마침 세금 받는 사람이 찾아오는 통에 기분을 잡치고 말았소. 그래서 이 구 밖에 쓰지 못했으니 이것이라도 보내드리오.”

절구가 되려고 해도 최소 네 구는 되어야 하는데, 겨우 한 구밖에 안 되는 미완성작 중의 미완성 작품이지만 중양절(음력 9월9일) 전의 빗소리와 바람소리의 기세를 핍진하게 잘 표현한 구절이라고 평가된다. 그리하여 이 구가 사람들 사이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급기야 이 구의 일곱 자 중 ‘滿城風雨(만성풍우)’ 넉 자는 독립되어 성어로 쓰이게 되었다.

성어로 쓰일 때의 ‘滿城風雨(만성풍우)’의 뜻은 이 구를 지은 반대림이 스스로 해설한 본래의 뜻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온통 비바람 소리만 크게 들린다’라는 본래의 뜻과는 달리 ‘온갖 좋지 않은 소문이 분분하다’ 또는 ‘어떤 일로 인심이 흉흉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추해보면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비가 아니고서는 천지간에 비바람 소리가 요란하면 기분이 좋은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대개는 소란스럽고 불안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것은 어떤 불길한 일로 말미암아 온갖 희한한 소문이 떠돌고 인심이 흉흉한 사회분위기의 느낌과도 상통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滿城風雨(만성풍우)’라는 성어의 의미는 그 기원이 되는 의미와 전혀 무관한 것만도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림은 호북성(湖北省) 황강(黃岡) 사람으로 자가 빈로(邠老)인 북송시대의 사람이나 그의 생졸년은 분명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시를 잘 써서 <가산집(柯山集)>이라는 문집도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 시구와 관련하여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반대림이 세상을 먼저 떠나자 사일이 외톨이로 남은 이 시구를 사용하여 반대림을 추모하는 칠언절구를 썼다는 것이다.

滿城風雨近重陽(만성풍우근중양, 중양절이 가까운 시절에 온 고을에 비바람 소리 들리니)
無奈黃花惱意香(무내황화뇌의향, 애끓는 저 국화의 향기를 어쩔 수 없네)
雪浪翻天迷赤壁(설랑번천미적벽, 눈보라가 하늘을 휘감아 돌아 적벽도 흐릿할 때)
令人西望憶潘郞(영인서망억반랑, 서쪽을 바라보고 반대림을 추억하게 하누나)

친구의 작품이 온전한 형태가 되지 못하고 한 구만 외톨이로 남아 있는 것이 안타까워 그 구를 사용하여 시를 만들어준 듯하다. 

팽철호 국민대학교 중국학부 중어중문전공 교수
팽철호 국민대학교 중국학부 중어중문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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