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의 우리詩論-3] 유현서의 ‘나의 사랑 단종’
[김필영의 우리詩論-3] 유현서의 ‘나의 사랑 단종’
  • 김필영(한국현대시인협회 사무총장)
  • 승인 2018.07.07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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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주는 한국 현대시를 선정··· 시와 함께 읽는 시평

평생 기억에 남는 시가 있다. 하지만 그런 시를 찾기가 쉽지 않다. 특히 감동을 주는 시를 찾아내기란 짚단에서 바늘 찾기와 같을 수도 있다. 필자는 2014년 가을부터 감동시를 찾아내는 작업에 들어갔다. 시를 찾아 감상 평론도 썼다. 다음은 그가 찾아낸 주옥같은 한국 현대시와 그의 평론이다. 본지는 해외한인사회의 우리 문학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김필영의 우리시론'이라는 타이틀로 시와 평을 소개한다.<편집자>

나의 사랑 단종

눈물로 맑힌 당신의 청령포에 와 있습니다.
한걸음 한걸음이 천리길이지요 마음의 곤룡포는 백마를 타고 태백산으로 오르셨나요

용안을 적시던 눈물은 강물높이를 한층 더 부추기고요 흐르는 물길은 수천수만의 낭떠러지를 폭포수로 내칩니다

그때 물수제비를 뜨던 조약돌도 여전히 붉은 피를 흘리나요
발을 뗄 때마다 돌덩이들이 일어나 내 가슴을 때립니다 쇠지팡이를 의지한 노송 한그루가 당신을 따라 점점 이울어집니다

노산대에서만이 한양하늘이 그리웠겠습니까
어린 소나무들만이 당신의 백성이었겠습니까

관음송 발치에서 당신처럼 앉아 옷고름을 풀어헤칩니다 당신의 눈물을 고요히 받아보나 아린 문장만이 내 빈 젖을 빨 뿐

나는 당신의 아내 당신의 어머니 당신의 애인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당신을 싣고 서울로 향합니다.

(유현서 시, 나의 사랑 단종)

비애를 삼켜 속으로 우는 모성적 울음의 빛깔

울음에도 빛깔이 있는가? 유명을 달리한 대상에 대하여 애통해하는 모습은 그 대상의 삶과 죽음에 이르게 된 상황에 따라서 다르고, 그 대상과 어떠한 관계인가에 따라서 다르다. 슬픔 앞에 냉정하지 않고 애통해하는 모습은 애처로운 아름다움이다. 울음의 빛깔도 남성의 울음과 여성의 울음이 다르다. 유현서 시인의 시를 통해 모성적 울음의 빛깔을 들여다본다. 

제목에서 화자가 사랑하는 자로 지칭한 인물은 조선의 제 6대 왕, 단종(端宗)이다. 단종은 1441년 출생하여 1448년 왕세손에 책봉되고, 1450년 아버지 문종이 단명하자, 1452년 12세의 나이에 왕으로 즉위하였으나 1455년에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1457년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 되어 강원도 영월 청령포에 유배됐다가 17세 소년의 나이에 권력투쟁의 희생양으로 사사(賜死)됐다.

모든 행간에 속울음이 들어있다. 첫 행에 “눈물로 맑힌 당신의 청령포에 와 있다”고 밝힌 청령포는 지리적으로 남쪽은 층암절벽으로 막혀 있고 동·북·서쪽은 남한강 상류의 지류인 서강(西江)이 곡류하고 있어 배로 강을 건너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지형이다. 숙부인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의 왕위를 찬탈한 후, 한양에서 멀고 먼 청령포에 격리시키고, 동서로 삼백 척에, 남북 사백구십 척, 금표를 세워 통행을 제한했다고 하니, 곤룡포를 숙부에게 빼앗기고 평복을 입은 해맑은 모습의 소년이 비좁은 방안에 밀랍인형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본 화자는 흐르는 눈물로 눈이 맑게 될 만큼 속울음을 울고 있음을 가늠케 한다. 

지금도 배를 타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청령포를 휘돌아 감는 강물을, “용안을 적시던 눈물은 강물높이를 한층 더 부추긴다”는 ‘눈물의 양’은 첫 연에 ‘눈을 맑히던’ 화자의 눈물이 아니다.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아내인 정순왕후(定順王后)와 한양의 영도교(永渡橋)에서 생이별하고, 청령포 금표(禁標) 안에서 강가를 서성이며 무수한 눈물을 흘렸을 단종의 슬픔의 양만큼의 눈물이다. 그 눈물에 높아진 강물이 “흐르는 물길은 수천수만의 낭떠러지를 폭포수로 내친다”는 묘사는 무한의 눈물과 동의어인 ‘어머니의 눈물’과 울부짖음을 에둘러서 표현한 것으로 한과 설움이 낭떠러지 폭포수로 곤두박질침을 은유하고 있다. 

3~4연의 장면은 화자가 소년의 마음으로 청령포 영내를 거닐며 느껴진 마음을 표현한 행간으로, 소년이 “물수제비를 뜨던 조약돌”을 강물에 던져보며, “발을 뗄 때마다 돌덩이들이 일어나 내 가슴을 때”라는 아픔을 통감한다. “쇠 지팡이를 의지한 노송 한그루가 당신을 따라 점점 이울어진” 모습에서 노산대에 올라 아내를 그리던 어린 신랑의 마음과 정순왕후의 무덤가에 동쪽으로 기울어진 소나무를 떠올리며 애달픈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시의 결구에 이르러 화자는 “관음송 발치에서 당신처럼 앉아 옷고름을 풀어 헤치며” 단종의 눈물을 고요히 받아보지만 현실과 역사의 간극은 아린 문장만이 내 빈 젖을 빨리는 것처럼 단종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하는 한 여인의 존재임을 고백한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아내, 당신의 어머니, 당신의 애인”이란 묘사에서 결코 단종을 잊지 않고 사랑할 것임을, 결코 단종을 청령포에 버려두지 않고, 단종이 돌아갈 수 없었던 한양을 향하여 단종을 싣고 돌아갈 것임을, 모성(母性)적 눈물로 약속하고 있다.

[필자 약력]
* 한국현대시인협회 사무총장(2017~8)
* 한국시문학문인회 차기회장(2019~2020)
* 시집 & 평론집: ‘나를 다리다’, ‘응’, ‘詩로 빚은 우리 한식’, ‘그대 가슴에 흐르는 시’
* SUN IL FCS(푸드서비스 디자인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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