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열의 동북아物語] 인도출신 허황후와 인천(仁川)
[유주열의 동북아物語] 인도출신 허황후와 인천(仁川)
  •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전 나고야총영사)
  • 승인 2018.07.23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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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중반 중국(唐)에서는 안록산의 난이 일어난다. 안록산은 황제 현종의 총애를 두고 양국충과 경쟁하였으나 양귀비의 지원을 받은 양국충에게 밀려 멀리 변방(지금의 베이징)의 절도사로 쫓겨난다.

안록산은 황제에 대한 불만으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이라 성공하리라 믿은 것은 아니고 양국충을 끼고 있는 황제에 대한 경고용이었다. 그러나 당시 조정에 대한 민심의 이반으로 반란은 수도 장안까지 미치게 되었다.

현종은 황실의 가족과 환관 양국충 그리고 양귀비와 함께 장안을 떠나 지금의 사천성인 파촉으로 피난길(蒙塵)에 나섰다. 황제 일행이 마외역에 다다르자 병사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두 양씨의 처단을 요구했다. 현종이 머뭇거리자 병사들은 양국충을 불시 체포 처형하였다. 놀란 현종은 양귀비를 목매어 자결케 하여 병사들을 달랬다.

황제 일행과 함께 피난길에 오른 외국 사절 중에는 신라의 아찬 허기(許奇)가 있었다. 허기는 가야국 허황후(許皇后)의 23세손으로 신라 사절로 장안에 파견되어 있다가 난을 맞은 것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허황후는 인도 아유타 왕국의 허황옥 공주로 16세(서기 48년)때 가야에 와서 김수로왕과 결혼하여 아들 10명을 두었다고 한다. 장남은 김씨, 차남은 허씨로 하고 나머지 아들은 불가에 귀의토록 하였다.

허기는 피난길의 위험을 무릅쓰고 현종을 지근에서 호종하였다. 장안으로 환도한 현종은 감사의 표시로 허기에게 황제의 성 이씨를 사성(賜姓)하였다. 허기는 이허기(李許奇)가 되었다. 신라의 경덕왕은 귀국한 허기의 외교활동을 치하하여 소성(邵城)을 다스리는 소성후의 작위를 주어 세습케 하였다. 소성의 옛 이름은 미추홀이다.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 주몽은 동부여에서 성장 결혼하여 첫 아들 유리를 낳았으나 동부여 왕자들의 시기로 졸본부여로 쫓겨 온다. 주몽의 인물됨을 알아 본 졸본부여 왕은 자신의 딸 소서노와 정략결혼 시키고 고구려의 건국을 도와준다. 주몽은 소서노와 사이에서 비류와 온조 두 아들을 두었다.

소서노는 장남 비류가 주몽을 이어 고구려의 2대 왕이 될 것으로 원했으나 주몽은 동부여에 두고 온 장남 유리를 불러 태자로 삼는다. 실망한 소서노는 두 아들과 함께 남하 한강유역에 도착한다. 비류와 온조가 한강이 바라보이는 부아악(負兒岳 지금의 북한산)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고 도읍지를 찾는다.

비류는 바다가 있는 미추홀을 고집하고 온조는 남한산과 한강사이의 하남(지금의 송파구)을 선택한다. 온조는 자신을 따라 온 10명의 신하와 함께 나라를 건국하여 ‘십제(十濟)’라고 이름 지었다. 비류는 십제를 제압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하고 비류의 신하들이 온조에 귀순하였다. 온조는 크게 기뻐하고 ‘백성이 모두 즐거이 따랐다(百姓濟海樂從)’하여 나라이름을 ‘백제(百濟)’라고 고쳐 불렀다. 기원전 18년이다.

백제 건국 500년 후 고구려의 장수왕이 한강 북쪽 아차산에 진을 치고 백제의 왕성(지금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을 점령하자 백제는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긴다. 백제 땅인 미추홀은 고구려 영토가 되어 매소홀로 지명이 바뀐다. 그 후 6세기 신라의 진흥왕이 한강유역을 빼앗아 매소흘을 소성으로 바꾼다.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건국된다. 소성은 신라의 경우 먼 변방이었지만 고려에 와서는 수도 개성과 가까워 강화도와 함께 해상무역의 거점이 된다. 이허기의 10세 손 이허겸은 고려 왕실과 인연을 맺어 최고 문벌이 된다. 그의 외손녀 셋이 현종의 비(妃)가 되고 그의 손자 이자연의 세 딸도 문종의 비가 되었다. 세 딸의 이름은 인예(仁睿), 인경(仁敬), 인절(仁節)이었다.

문종은 처가인 소성을 경원부(慶源府)로 부르도록 한다. 집안의 경사를 인정한 것이다. 이자연의 손자 이자겸의 딸은 예종의 비가 되어 인종을 낳았다. 인종은 어머니(순덕왕후)의 고향을 인주(仁州)로 승격시킨다. 문종의 비였던 세 할머니들의 인(仁)자를 땄는지 모른다. 역사에 처음으로 인주가 등장한다. 이허기 후손은 당시 지명에 따라 경원이씨 또는 인주이씨(지금은 인천이씨)로 불리어지고 있다.

조선시대로 내려와 태종은 행정구역을 개편하였다. 고려시대에 황실과 관련되면 큰 도시격인 ‘주(州)’로 승격시킨 것을 시정하였다. 지금의 부천도 수주(樹州)라는 이름을 가졌다. ‘아! 강낭콩 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 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의 ‘논개’ 시를 지은 변영로 시인은 고향 부천의 옛 이름 ‘수주’를 자신의 호로 삼았다.

태종은 1413년 고려 시대 주(州)의 3점을 떼 내어 천(川)으로, 또는 산(山)으로 고치도록 했다. 지금부터 605년 전 인주가 인천으로 바뀌었다. 지금의 과천(果川) 금천(衿川 지금의 서울시 금천구)도 같은 해 과주 금주에서 격하되었다. 그러나 태종의 손자 세조는 왕비 윤씨의 친정이 있는 인천을 도호부로 다시 승격시킨다. 인천도호부는 현감이 다스리는 과천 및 금천과 달리 종3품의 부사가 수령(守令)이 되었다. 인천의 별칭으로 불리는 제물포는 본래 인천도호부내의 작은 포구로 1882년 일본과의 조약으로 유명해졌다.

허황후의 후손들이 오늘의 인천 발전에 큰 힘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Look West!' 인천은 또 한 번의 도약을 위해 중국을 넘어 세계 5강으로 부상하고 있는 인도를 향하고 있는 것은 같다. 허황후의 고향 인도가 인천에 손짓하고 있다.

필자소개
한중투자교역협회(KOITAC) 자문대사, 한일협력위원회(KJCC) 사무총장. 전 한국외교협회(KCFR) 이사, 전 한국무역협회(KITA) 자문위원, 전 주나고야총영사, 전주베이징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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