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만주벌판에서 떠올린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의미
[기고] 만주벌판에서 떠올린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의미
  • 소유정(중국 심양시 제24중)
  • 승인 2018.08.2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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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생전에 외할머니께서는 ‘너희 증조할아버지는 만주의 독립투사였다’고 늘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동북삼성에서 벌어졌던 항일투쟁에 대해 평소 관심을 갖고 있었다.

월드코리안신문사에서 주최하는 ‘2018년 중국 동북삼성 항일 독립운동 유적지 답사’에 참여하게 됐다. 전체 일정은 5박6일이었는데, 그 둘째 날에 둘러보았던 항일 유적지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중국 길림성 통화현 광화진 광화촌! 광화촌의 지명은 ‘빛(光)’과 ‘꽃(華)’으로부터 유래했다고 한다. 예부터 광화촌의 풍광이 빼어났던 것 같다. 지금도 광화촌의 풍광은 여느 마을보다 빼어나다. 나지막한 산, 드넓은 들판, 갖가지 야생초,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합니하(哈泥河)가 어우러져 마치 관광지에 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100년 전 이곳에는 신흥무관학교가 있었다. 일제에 불만을 품은 조국의 청년들이 압록강을 건너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군사 훈련을 받았다. 아마 지금의 평화로운 분위기와 전혀 달랐을 것이다. 실제로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100년 전 이곳에서는 정말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열여덟 삶에서 서른 살까지 학생들이 백 명 가까이 입학했다. (중략) 우리들은 군대 전술을 공부했고 총기를 가지고 훈련받았다. 그렇지만 가장 엄격하게 요구되었던 것은 산을 재빨리 올라갈 수 있는 능력이었다. (중략) 그 날을 위하여 나는 방과 후에 국사를 열심히 파고들었다. (중략) 새벽 6시 기상 나팔소리에 전교생이 연병장에 나가 체조를 하고 아침식사 후 애국가, 독립군용진가 등을 불렀다.”

김산의 구술을 토대로 님웨일즈가 발간한 『아리랑』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신흥무관학교의 단상이다. 아침에 일어나 체조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낮에는 총을 들고 산을 누비고, 저녁에는 역사 공부를 했다. 열여덟 살이면 내 또래인데 그들은 왜 이곳으로 와서 총을 들었을까? 만약 그때 내가 살았더라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신흥무관학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마음먹었다. 신흥무관학교 설립과 운영은 여러 독립운동가가 함께 이룩한 것이지만,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이회영(李會榮)과 그 형제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회영 일가는 조상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한 명문가였다. 이회영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제가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자 국외에 독립운동기지를 건립하고자 마음먹었다.

그리고 1910년 형제들의 동의를 구하고 만주로 향했다. 이때 처분한 재산이 600억인데 그것을 전부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했다. 신흥무관학교도 이 자금으로 설립하여 10여 년 간 3,0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졸업생 대부분은 항일무장투쟁을 주도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6형제 중 다섯째인 이시영만 살아 돌아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다. 심지어 가장 부유했던 둘째 이석영은 중국 상해에서 굶어죽었다.

이회영 일가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솔직히 모르겠다. 이회영 일가는 흩어져 스러졌고, 신흥무관학교에는 남아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설명을 듣지 않으면 그곳이 신흥무관학교였다는 사실을 알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혼란스럽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라!’ 이 말이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답사에서 신흥무관학교 터를 둘러보고 얻은 것이 있다. 이회영 일가가 자신들의 모든 것을 내던졌기에 그것을 잊지 않고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같은 거창한 표현은 떠나,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들을 더욱 사랑하고 배려하려 한다. 우선 이렇게 하다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무슨 의미인지 점차 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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